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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4호] 바를람 샬라모프, 20세기의 도스토예프스키...
작가들은 대개 이런저런 자전적인 경험을 토대로 거기에 상상력을 발휘한 허구를 덧붙여 소설을 쓰곤한다. 개중엔 오직 자전적인 체험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소설화한 작가도 있다. 예를 들어 《단순한 열정》을 쓴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 같은 작가. 아니 에르노는 다큐 소설의 전범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유부남 외교관과의 불륜의 사랑,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한 작품들 일체를 온전히 자신의 실제 삶의 체험을 재료로 소설이라는 형식 속에 기록했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든 간에 보통 경험을 뛰어넘는, 아주 예외적인 경험을 하고 그것을 글쓰기로 기록한 작가들이 있다. 이를테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형수였다. 청년 시절 짜르 황제에 대해 날을 세우다가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그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시베리아 유형생활에서 살아남은 후에 그 경험을 보고한 《죽음의 집의 기록》이란 소설을 썼다. 그 소설엔 도스토예프스키가 겪었던 시베리아 유형생활의 죽음과도 같은 생활이 너무나 생생하고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러시아에서는 그 나라의 역사적 경험 탓인지 일종의 ‘수용소 문학’ 장르에 속하는 유명한 작품들이 여럿 있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만 하더라도 시베리아 노동수용소의 경험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작품이 아니던가?
또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수용소에서 겪은 참상을 기록한 책들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형생활을 고발하고 기록한 《이것이 인간인가》를 쓴 프리모 레비를 필두로 안네 프랑크의 《일기》, 빅토르 프랑클의 《밤과 안개》, 엘리 비젤의 《밤》 등 나치즘의 잔혹성을 고발하는 작품들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위대한 시인 파울 첼란은 가스실 처형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남긴 했지만, 결국 그 고통의 기억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한 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수용소 문학의 최고 정점, 그리고 그 끔찍하고 참혹한 경험의 끝판왕은 따로 있다. 바로 《콜리마 이야기》를 쓴 바를람 샬라모프다. 그는 솔제니친을 포함해 그 이전까지 나왔던 모든 수용소 문학이 고개 숙이고 절을 해야 할 작가라고 인정받는데, 오늘날엔 20세기의 도스토예프스키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런 위상을 가진 문학작품이지만,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지난 2015년에야 처음으로 완역되어 소개되었다. 다른 많은 작품들처럼, 이 작품도 한국에는 너무 늦게서야 도착한 셈이다.
콜리마는 스탈린 시대, 혹한이 지배하는 북동 시베리아 지역, 정확하게는 북극권에 더 가까운 러시아 극동지역에 있던 구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 이름이다. 그곳은 1년 중 9개월이 혹한의 겨울이다. 한 겨울엔 기온이 영하 60~70도까지 떨어진다! 스탈린 시대 소련 곳곳에 있던 강제노동수용소 가운데 최악이라고 할 장소. 매년 수감자의 3분의 1 또는 그 이상이 숨져 적게 잡아도 총 3백만 명 가량이 목숨을 잃은 걸로 알려진 끔찍한 수용소다.
있던 강제노동수용소 가운데 최악이라고 할 장소. 매년 수감자의 3분의 1 또는 그 이상이 숨져 적게 잡아도 총 3백만 명 가량이 목숨을 잃은 걸로 알려진 끔찍한 수용소다.
샬라모프는 겨우 스물두살 때이던 1929년, 모스크바 법대생이던 시절에 처음으로 체포되어 ‘솔로프키 수용소’라는 곳에서 3년간 강제 중노동을 하는 형을 선고받았다. 체포된 이유는 그가 ‘레닌의 유언을 수행하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0월 혁명 10주년에 맞추어 데모를 했고, 〈레닌의 유언〉을 인쇄하여 배포하려 한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혁명을 제대로 실천하자고 한 사람을 혁명정권이 체포한 것이었다. 그는 1937년에 트로츠키파로 몰려 다시 체포된 후 그 지독한 ‘콜리마 수용소’에 갇힌 채 무려 17년이란 세월동안 고초를 겪었다. 그곳 생활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처참한지, 샬라모프는 그곳을 “화덕이 없는 아우슈비츠”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그는 그 책에서 “죽고자 하는 의지를 잃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할 때가 있다”라고 썼다. 죽고 싶어도 죽을 힘조차 없는 상태에 처하게 되는 인간 상태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는 또 “거기에는 우리가 알아서는 안 되고, 보아서도 안 되며, 보았다면 죽는 것이 나은, 그런 일이 아주 많다”고 쓰고 있다. 사실, 샬라모프가 콜리마에서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샬라모프는 오랜 기간 겪은 육체적 고통의 후유증 때문인지 말년에는 시력과 청력을 잃고 운동조정 능력 상실을 동반하는 발작, 뇌졸중 같은 동시다발적인 질병의 고통을 겪은 끝에 1982년, 정신병 환자 요양소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화산 아래서》를 쓴 맬컴 라우리는 허먼 멜빌의 항해 소설을 동경하여 직접 배를 타는 선원생활을 하고 그 경험을 소설로 썼지만, 그런 맬컴 라우리조차 샬라모프가 겪은 최악의 고통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위대한 걸작 문학을 못 쓰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겪고 싶지 않을 것이다. 프리모 레비나 파울 첼란, 솔제니친, 도스토예프스키가 겪었던 종류의 고통도 결코 겪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두말하면 잔소리다. 작가들이란, 작품에 대한 헌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겪고 감내할 자세가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거기에도 인간적 한계는 있는 법이다. 작품을 위해 ‘취재’ 차원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할 수는 있지만, 기자스러운 취재와 실제 온몸으로 고통을 겪어 내는 것 사이엔 비교하기 어려운 커다란 차이가 있을 터이다.
물론 샬라모프나 프리모 레비가 겪었던 것과 같은 극한의 참혹함을 겪어야만 걸작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프루스트나 헨리 밀러, 아니 에르노, 찰스 부코스키, 잭 케루악이 겪었던 것과 같은 체험들은 불가피하게 겪지 않으면 안 되었던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경험이라기보다는, 스스로 걸어 들어갔던 한 생의 길에서 경험한, 쾌락과 고통이 뒤섞인 체험들이었고, 그들은 바로 거기서 자신의 탁월한 예술을 빚어 낸 것이었다.
나 또한 살아 오면서 이런저런 고통과 쾌락의 경험들을 겪었지만, 그들처럼 걸작을 써 내지 못했다면 그건 순전히 나의 무능력 탓일 뿐이다. 혹은 나의 문학 취향 탓일 수도 있으리라.
나는 그런 식으로 완전히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는 데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기 때문이다. 실은 아주 사소한 일상의 경험만으로도 얼마든지 걸작을 쓸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 건 역시 무능을 탓할 수밖에 없다. 남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경험을 갖는다는 건 작가 입장에서 남다른 아주 특별한 소재를 얻고, 또 그런 경험을 통해 생에 대한 깊은 인식을 얻게 된다는 점에선 행운이랄 수 있다. 또 독자 입장에서도 삶의 다양성이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삶과 세계의 이면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는 점에서 특별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유별난 체험을 한 작가와 작품들을 떠올리며 글을 써내려가다 보니 생각이 다른 곳으로 향한다. 세상엔 여전히 너무 많은 고통과 절망, 슬픔이 있다는 것, 인간의 고뇌와 고통, 상처와 불행은 끝날 줄을 모른다는 것, 쇼펜하우어 말처럼 이 지구가 금이 가서 부서져서 가루가 되는 그 순간까지 인간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이 내 마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인류가 일구어 온 많은 문학이 ‘고통과 슬픔의 박물지’ 같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