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쾌한 변화를 꿈꾸는 문화예술잡지 《월간 토마토》가 2009년 재정한 월간토마토문학상 단편소설 공모전 첫 번째 수상작품집
대전 지역 문화예술잡지 《월간 토마토》는 2009년부터 ‘예술가 지원 프로젝트’의 하나로 월간토마토문학상 단편소설공모전을 진행했다. ‘등단’ 제도가 작가의 권위를 부여하는 세태에서 조그만 잡지사에서 문학상 공모전을 여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총 7회의 공모전이 있었고, 총 여섯 편의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회를 거듭하며 응모작품 수도 200여 편을 훌쩍 넘었으며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패기 넘치는 작품들을 발굴해왔다. 《지극히 당연한 여섯》은 그 첫 번째 결실로 수상작품을 모은 단편소설집이다.
지극히 당연한 하나를 위해 싸워야 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여섯 소설
숫자 6은 자신을 제외한 약수의 합이 다시 또 6이 되는 완전수라고 한다. 토마토문학상의 여섯 소설들은 서로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다. 혼자가 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혼녀, 친했던 친구에게 왕따를 당하는 소녀, 한때는 잘나갔지만 지금은 백수에 가까운 영화감독, 다른 사람이 되길 꿈꾸는 프랑스 유학생, 적당히 속물적인 게스트하우스 사장, 부지런히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다가 사라져버린 한 집안의 가장. 다양한 삶을 그리는 여섯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각자의 위치에 살아내며 겪는 고민과 고뇌가 한데 모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극히 당연한 것이 지켜지지 않는 이 세상에 대해 때로 울분을 터뜨리며, 혹은 냉소하며, 그러다가 스스로를 조롱한다. 당연한 가족, 당연한 일터…… 그리고 당연한 나 자신. 당연한 하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부단히 투쟁해야만 한다. 이들은 그런 우리를 닮아 있다. 굳건히 삶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이 여섯 편의 단편소설에 담겨 있다.
박덕경의 〈오페라, 장례식, 그리고 거짓말〉은 사랑과 죽음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고독한 내면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진경은 남편의 외도로 갑자기 이혼하게 되고, 아직도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사랑이 식어 다시 돌아올 줄 알았던 전 남편의 새로 찾은 사랑은 굳건하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두 아이도 새 엄마의 친절한 보살핌에 자신을 잊어간다. 깊은 고독감 속에서 진경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반문한다.
한유의 〈맑은 하늘을 기다리며〉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학생들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순정은 이주, 나래, 미호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한때 나래와는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던 사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픈 날들이지만 순정은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나래에게도, 미호에게도 나름의 아픈 사정이 있다는 걸 알고 마음속으로 연민한다. 10대 소녀들이 지닌 순수한 감성이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맑은 문체로 그리고 있다.
김민지의 〈어떤 기시감〉은 이야기의 생동감 넘치는 전개가 매력적이 작품으로 ‘경우’라는 인물의 환상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한때 잘나가던 영화감독 경우는 최근에 일이 없어 거의 백수와 다름없다. 예인은 그런 그에게 늘 힘을 주는 뮤즈 같은 존재이다. 그녀의 격려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환상은 환상일 뿐, 예인은 멀기만 하며 항상 가까이 있던 애인 수연조차 그를 떠나고 만다. 모처럼 좋은 기회를 얻은 경우는 희망에 부풀지만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신유진의 〈검은빛의 도시〉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신자유주의의 문제, 자본주의의 모순 등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유학생 정은 클레르몽페랑에서 사는 히피들, 농성하는 불법 이민자들, 마약을 파는 아이들을 그녀는 동질감을 가지고 바라본다. 유학생 정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길 꿈꾼다. 그녀가 아는 두 명의 자크 중 한 사람은 그녀가 아르바이트하는 빵집의 단골 백인이고 한 사람은 아랍인 제빵사이다. 서로의 진짜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낯선 도시에서 온전히 혼자 존재하는 소설 속 인물의 잿빛 시선이 담담하다.
이우화의 〈김우식〉은 우리 사회의 엘리트주의와 허위의식을 꼬집으며, ‘김우식’이라는 인물을 통해 잘못된 사회 구조를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L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40대 사장은 김우식이라는 남자를 매니저로 뽑는다. 허위의식에 찬 게스트하우스 사장은 자신이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김우식은 ‘그런 거엔 관심 없습니다.’라고 무미건조하게 반응하며 사장이 구축해놓은 시스템을 조롱한다.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비판적 시선과 문제적 캐릭터 설정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염보라의 〈마그리트의 창〉은 초현실주의적인 장치들을 재치 있게 배치한 작품이다. 평소에 성실하고 순응적이기만 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화자인 딸은 과연 간판제작업과 원룸임대를 하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꽃게를 좋아한 것도 같고, 싫어한 것도 같고, 여름날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기도 하고, 혼자 일기를 쓰던 엉뚱한 아버지. 사라졌다고만 생각한 아버지가 원룸 202호에 나타나고, 어느 날 잃어버렸던 꽃게의 모습도 그 주변에서 마주치게 된다. 오해로 점철된 관계들 속에서 인간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 존재론적 질문이 묵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