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1호] 도시가 민낯을 드러낸 자리

도시가 민낯을 드러낸 자리 
서구 정림동 명암마을
정림동과 가수원동을 연결하는 가수원교, 늦은 밤 이 다리를 건널 때면 낮보다 환하게 불을 밝힌 도안동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파트 불빛을 물결 위에 담은 채 고요히 흐르는 갑천을 바라보며 밤에도 환하게 불을 밝힌 저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누구일지 상상해 본다. 자연스레 그 맞은편, 천을 따라 형성된 명암마을은 숨을 죽이고 자취를 감춘다. 명암마을이 모습을 드러내는 건 초라한 아파트 단지의 민낯을 조명하는 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아침부터다.
승용차가 줄지어 있는 
거리를 걷는 이가 없다

가수원교 아래에 자리한 명암마을로 향하는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조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넓은 대로를 무작정 달린다면 다리 아래 조용히 흐르고 있는 마을을 스쳐 지나갈지도 모른다. 정림동에서 가수원동으로 향하는 다리 입
구에는 鳴岩마을(명암마을·울바위)이라고 적힌 비석이 놓여 있다. 비석 옆으로 나 있는 좁은 도로가 바로 마을 입구다.
명암마을은 갈마동에서부터 정림동까지 이어지는 월평공원의 마지막 지점에 자리한다. 입구를 지나 천천히 갑천을 따라 마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물건이 한가득 담긴 자루와 오래된 고물이 쌓여 있는 플라스틱 수집소다. 정림자원 플라스틱 수집소라는 빛바랜 이름표를 내건 가게 입구에 친절하게도 명암마을과 정수원으로 향하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점심 식사 후 잠시 담배 한 대를 태우는 어르신에게 마을회관이 자리 한 곳을 물었다. 이 마을에서 20년 정도 살았다는 어르신은 공장 너머에 경로당이 있다는 대답을 남기곤 돌아갔다.
경로당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승용차가 줄을 지어 있었지만 거리를 걷는 이는 없었다. 사람은 없는데 이 많은 승용차는 누구를 태워 나르는지 궁금해질 때쯤 마을의 오래된 집들과는 시간이 맞아 보이지 않는 공간들이 보였다. 식품회사와 가구회사 이름을 내건 공장이 주택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인기척 없는 공장 맞은편, 명암마을에서 나고 살았다는 구태복 할아버지가 아담한 주택의 텃밭에서 이른 봄부터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할아버지 손에는 말라비틀어진 가지가 한 다발 들려 있었다. 겨우내 건조한 바람에 생기를 빼앗긴 가지들은 이제 뜨거운 불길 속에 던져질 순간을 기다리는 듯했다.
“공장이 여기 들어 온 지는 4~5년 됐나? 여기서 일을 해도 주민이랑 왕래는 없지. 마을 안까지 들어오나.”​

바위에서 우는 소리가 나더니
화장터가 들어왔다

명암경로당에는 점심 식사를 마친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있었다. 슬쩍 바닥이 뜨뜻한 경로당에 궁둥이를 붙였다. 다른 마을과 비슷하게 이곳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들은 없었다. 결혼을 기점으로 마을에 정을 붙이기 시작했거나, 이곳으로 이사 와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낸 이가 전부였다. 아파트 단지처럼 이사를 오고 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간간이 마을에 새로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내는 듯했다.
“경로당 옆에 새로 지은 집에는 사람 들어왔나? 거기도 할머니 들어온 것 같던데, 밖에 나오지를 않아. 빨래는 널어놨드만.”
경로당 바로 옆에 자리한, 인적의 온기가 아직 만연하지 않은 흰 건물을 가리키며 어머니들은 새로운 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갔다. 현재 마을에는 20가구 정도가 있지만 거주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주민 모두가 서로를 잘 알고 지내는 것 같았다.
“이 마을 이름이 세개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울바위였어. 그래서 지금 마을 이름이 명암마을인 거야. 옛날에 전설이 있었는데 산밑에 황새바위가 하나 있었어. 고려 적에 그 바위에서 우는 소리가 나곤 했대. 그래서 마을 이름이 울바위가 됐지. 근데 글쎄, 그 자리에 화장터가 들어왔잖아. 맨날 사람 우는 소리가 나니까. 아, 그 전설이 맞나 보다 하는 거지.”
충북 보은에서 시집와 이곳에 자리 잡은 김 씨 할머니는 전설의 고향 줄거리를 이야기하듯 마을 이름에 얽힌 전설을 풀어냈다. 마을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를 묻자, 김 씨 할머니는 대뜸 남편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은 이 동네에서 나지 않아 더는 들려줄 전설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이제 우리 아저씨밖에 없어. 다 돌아가시고 우리 아저씨가 유일하지.”
노인정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자리한 집에서 열심히 텃밭을 가꾸던 할아버지가 남편분이냐고 묻자 할머니는 신기하다는 말투로 “얼래, 어떻게 만났데”라며 감탄했다. 조금 전 발을 들여놓은 외부인이 한 가족을 만날 정도로 명암마을은 그리 크지 않았다.​

소문을 확인한 순간
의혹이 민낯을 드러냈다

“화장터가 여기 들어온 지는 수십 년 됐어. 처음에는 수도 공사한다고 길에다 관을 쭉 쌓아 놨더라고. 그런데 소문에 화장터가 들어온대,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기초 공사한 데를 가서 보니까 진짜 화장터인 거야. 우리는 몰랐어. 시에서
우리를 속이고 한 거지. 한동안 시에서 나온 사람이 마을에서 찬성하는 사람은 동그라미, 안 하는 사람은 가새표 한 종이를 들고 다니더라고. 사람들이 엄청 반대했지. 도안동 사람 와서 시위하고 막 그랬어. 기동대 와서 사람들 붙들려가고 심상치가 않더라고.”
이내 마을에 자리한 화장터인 정수원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입장에 따라 진실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겠지만, 마을 주민인 김 씨 할머니는 화장터가 들어오던 과정을 ‘시에서 우리를 속인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일이 으레 그렇듯
소문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의혹은 민낯을 드러냈다. 주민에게 우리 도시의 민낯은 냉혹한 현실보다 더 가난했다.
“나라에서 하는 건 못 이겨”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는 어르신들의 말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산 밑에 있다는 화장터로 향하기 위해 다시 갑천을 따라 걸었다. 한때는 많은 이가 나고 들었을 한밭장례식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기간 방치된 흔적이 보이는 장례식장에는 제법 큰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공원 조성사업으로 문을 닫는다, 그동안 장례식장을 이용해 주어 감사하다, 그리고 명암마을 주민에게 같은 감사를 드린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납골함이 쌓여 있다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것일까. 대전시는 월평공원(도솔산) 및 갑천습지 주변의 훼손된 자연환경을 복원하겠다는 이유로 명암마을 공원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여기에 기피시설인 화장시설과 이로 인한 주변 난개발로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이유도 보탰다. 마을에 생태숲, 자연학습, 편의시설 등을 갖춘 생태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대전시가 작년 12월에 공개한 사업내역서에 따르면 공원조성 사업을 위해 2005년부터 주민대표와 대화했다고 한다. 작년부터 토지보상을 추진했고 올해 안에는 잔여 토지보상과 공사비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마을에서 만난 주민 중 이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낸 이는 없었다.
제법 걸음을 옮기니 납골함 판매점이 눈에 띄었다. 판매점 앞에는 한때는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을 이들의 이름이 적힌 납골함이 중구난방으로 쌓여 있었다. 불량품을 버리기 아쉬워 모아 놓은 것인지, 가족이 찾아가지 않은 것인지 확실치 않았다. 누구의 것인지 알 길이 없었기에 불량품을 모아 놓은 것이기를 기도했다. 납골함 주변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확인하고 싶지 않은 검은 봉지가 무엇인가를 배에 가득 넣어 둔 채 함께 놓여 있었다.
납골함 판매점을 지나자 곧 화장터인 정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때마침 직원으로 보이는 무리가 ‘시민을 행복하게 대전을 살맛나게’ 만들겠다는 대전시 건물에서 나와 ‘대전광역시’라고 문구를 적어 넣은 승용차에 올라탔다. 다행히 화장터에서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직은 제법 세찬 바람 소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

글 사진 오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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