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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5호] 호서문학회 연혁과 한국 문학사 재정립의 필요성
대전문학관은 지난 7월 14일부터 오는 10월 31일까지 《호서문학》 소개전인 ‘여기와 거기, 기록의 결’을 개최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1952년 창간호를 발간한 후 2017년 7월 말 현재 59호를 발간하며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한국 최장수 종합 문학잡지 《호서문학》을 조명하기 위한 기획전이다.
필자는 지금 ‘대전문학 600년사’를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새로 정리하고 있어, 자료를 수집할 목적으로 지난 2017년 7월 22일 토요일 오후에 대전문학관을 방문해 기획전시실에 전시된 호서문학회 관련 자료를 관람하고 돌아왔다.
호서문학회는 충북 제천에 있는 저수지인 의림지(義林池) 서쪽에 분포하는 호서지방, 즉 충청도를 배경으로 창립된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최장수 문학회다. 이제 까지 호서문학회는 정훈 시인을 비롯해 한성기·박용래·권선근 등 몇몇 작가들이 문학활동을 통한 화합과 계몽을 위해 1951년 11월 5일 대전극장 뒤 희망다방에 모여 발기인대회를 갖고, 11일 미국 공보원 강당에 50여 명의 회원이 모여 창립행사를 개최하고 정훈 시인을 초대 회장으로 선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좌)호서민중대학 교지인 《호서학보》 창간호 표지
(우)《호서학보》에 게재된 호서문학회 광고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문학계에서는 문총 구국대가 조직되어 종군활동과 반공활동을 전개했는데 초대 대전지부장을 정훈 선생이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정훈 선생이 앞장서, 대전의 문인들과 피난 차 서울에서 내려왔던 중앙 문인들의 참여 하에 호서문학회가 창립되었다.
그런데 해방 후 대전에서 최초로 설립한 사립대학인 호서민중대학 설립자인 소정(素汀) 정훈(丁薰 본명 丁甲秀, 1911~1992) 시인이 호서민중대학 개교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49년 12월 12일 발간한 교지인 《호서학보(湖西學報)》 창간호에 게재된 호서문학회 광고에 의하면, 호서문학회는 기존에 알려졌던 1951년 11월 5일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 이전인 1949년경 시인 정훈(丁薰)·시인 한성기(韓性祺, 1923~1984)·시인 박용래(朴龍來, 1925~1980), 소설가 권선근(權善根, 1926~1989) 등이 이미 호서문학회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호서문학회는 한국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52년 9월 1일 회원들의 작품을 모아 종합문학잡지인《호서문학(湖西文學)》 창간호를 발간했다. 4·6배판 크기(188×257㎜)에 30쪽 분량으로, 시·콩트·소설 등 20여 편의 작품을 실었다. 그 후 지금까지 《호서문학》은 한동안 책을 내지 못한 때도 있었지만 호서문학회는 지속되어 현존하는 종합문학동인회로 국내 최장수 동인회임을 자부한다.
대전문학관이 건립되고 수많은 문학 자료들을 수집하면서 찾아 나선 것이 《호서문학》 창간호였다. 우촌(愚村) 박헌오(朴憲晤, 68세) 시조시인이 확인해 본 결과, 우리 고장의 귀중한 향토 자료들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수집하여 향토사 자료로 제공해 오고 있는 김영한 선생이 소장 자료 일부를 충남대학교 도서관에 보관시킨 덩어리 속에 《호서문학》 창간호가 섞여 있었다. 대전문학관은 김영한 선생의 승낙을 받고 충남대학교 도서관과 협의하여 잠자고 있었던 《호서문학》 창간호를 빌려다가 복제본을 만들었다.
《호서문학》 창간호 표지
대전문학관에서 최근 호서문학 소개전을 기획하는 동안 또 하나의 소중한 자료가 얼굴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바로 《호서학보》이다.
오래전부터 정훈 선생의 자제인 정병선으로부터 《호서학보》라는 소중한 책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대전문학관 박헌호 전 관장의 누이동생이 이삿짐을 챙기다가 시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소중한 자료이니 보관하라’고 주신 책 보따리 하나가 있다고 내주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호서학보》였다.
대전문학관에서 《호서학보》를 공개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충청투데이》 2017년 7월 27일자 18면 보도에 의하면, 《호서학보》는 150쪽으로 정훈 선생이 1945년 8월 25일 계룡의숙(鷄龍義塾)이란 교사를 확보하고 학생모집 광고를 낸 것을 시작으로 1948년 호서민중대학으로 설립인가를 받기까지 연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정훈 선생이 해방과 동시에 학교설립을 추진하고, 학교를 본거지로 삼아 문인들이 모여 문화운동, 문학활동을 시작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정훈 학장을 비롯한 지헌영, 김성수, 민병성 등 30여 명의 교수진 및 교직원과 1,2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명단과 주소지도 명기되어 있다. 이 책에는 교육방침, 논설, 문학작품 등이 게재되어 있다.
대전에는 《호서문학》이 출간되기 전, 향토시가회에서 발간한 충청권 최초의 문학잡지인 《향토》가 있었고, 동백시회에서 만든 충청권 최초의 순수 시문학지 《동백》이 있었지만 경비 문제, 사상적 갈등 문제 등으로 인해 종간된 상태였다.
해방 직후 1945년 10월 발간된 《향토》는 민족정서를 계발하고 문화운동을 일으키자는 취지에서 시작했고, 《동백》은 본격적인 문학의 장을 만들고자 1946년 2월 창간됐는데 두 잡지에 참여했던 핵심 인물들이 《호서문학》 창간에 앞장섰다.
2015년 2월 3일 현재 호서문학은 회원이 153명(시인 92명, 수필가 31명, 아동문학가 12명, 소설가 7명, 평론가 9명, 희곡작가 2명)에 달한다. 호서문학회에서는 반년간지 ‘호서문학’ 발간, 호서문학상 시상, 신인 작가와 작고 문인 발굴, 작고 동인 대표작 순례, 예술 산책, 월북-납북문인 연구, 작가 탐구, 외국문학 번역 소개, 한국문학 번역 소개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대전문학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호서문학회 발전에 남달리 크게 기여해 이제까지 호서문학상을 받은 문인들은 박희선·김대현·김영배·신정식·구상회·최송석·김용재·김수남·이진우·강돈묵·주근옥·정상순·홍순갑·신길우·장덕천·김영훈·이면우·송영숙·김미영 등이다. 한편 고 김학응 시인도 《호서문학》 주간을 맡아 호서문학회 발전에 많이 기여했다고 한다.
대전 문학계는 《호서학보》 발굴로 인해 호서문학회의 역사는 물론 대전 문학사와 한국 문학사를 새로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리고 대전 시민들은 한국의 현존하는 최장수 문학회인 호서문학회가 대전에 위치하고 있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호서문학회는 대전과 충남, 세종시 문인들을 중심으로 창립되어 지금까지 문학활동을 해 왔다. 그리고 현재까지 《한국 문학사》를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조동일·김윤식·권영민 교수, 고려대학교 국문과 정한숙 교수, 경희대국문과 김종회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 채호석 교수 등이 중앙 문단 위주로 기술하는 바람에 호서문학회는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소외된 측면이 적지 않다.
《호서문학》은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동인지로 1970년 제6호로 창간을 한 《충남문학(忠南文學)》과 1989년 대전이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충남과 분리될 때 다시 1호부터 시작한 《대전문학(大田文學)》의 실질적 뿌리이며 어버이가 되고 있다. 특히 《충남문학》은 《호서문학》제4집과 《호서문단(湖西文壇)》 제1집을 합해서 호수를 이어 갔으니 어쩔 수 없이 《호서문학》을 뿌리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남문학》과 《대전문학》은 한국문인협회 지회 체제로《호서문학》과는 특별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호서문학 60년사》(기획출판 오름, 2012.)
호서문학회의 연혁 재정립과 가치 재조명은 단순히 호서문학회 차원을 넘어 대전 지역 문학의 위상을 높이고 왜곡된 대전 문학사를 바로 세우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가 있다. 더 나아가서는 충청지역문학사와 한국 문학사를 새로 정립하는 데에도 크게 공헌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호서문학회(회장 송영숙)는 2017년 하반기 《호서문학》 60집 특집을 발간 예정으로, 이번 특집판에는 《호서학보》에 게재된 내용은 물론 호서문학회 역사에 대해 다시 조명하는 내용을 실을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인 대산(大山) 신상구(辛相龜, 67세) 국학박사가 지금 왜곡되고 편향된 기존의 대전 문학사를 올바로 새로 정립하기 위해 ‘대전문학 600년사’를 집필 중에 있는데, 《호서학보》 발굴 성과를 제대로 반영해 호서문학회의 연혁을 재정립해 새로 기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