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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5호] 독자는 언젠가는 작가가 된다
나의 새 책 《새벽 2시, 페소아를 만나다》가 나온 지 보름여 지난 즈음,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도 자신의 생애 첫 책을 냈다. 내 책이 나온 것도 기쁜 일이지만, 책을 통해 벗이 되고, 그리고 함께 책을 읽고 쓰며 우정을 키워 가던 친구가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룬 것 또한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그가 생애 처음으로 쓴 책 제목은 《나는 오십에 작가가 되기로 했다》이다. 말 그대로 “인생 2모작 시대 나오작 프로젝트 대공개”를 모토로 내걸었다. 사실 이 책에는 책과 글쓰기와 씨름해 온 자신의 실제 경험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을 좋아하고 글도 써 보고 싶지만 바쁜 직장생활, 이런저런 일상사들, 그리고 무엇보다 “감히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책을 쓸 수 있을까?” 하고 지레 겁을 먹고 독자로만 머물던 사람들에게 그처럼 평범한 이들도 책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걸 작가 자신이 산 체험담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말 그대로 평범한 직장인의 독서 글쓰기 분투기다. 그는 지금까지 글쓰기와 거의 무관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지만 용기와 끈기, 인내와 노력으로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내는 결실을 맺은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대전 백북스 강연회에서 처음 그를 만났고, 그가 따로 연락을 해 와서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이 책의 서문에도 스스로 밝혔지만, 마흔 넘은 이들이 겪는 소위 사추기를 겪는 중이었고, 그는 무언가 새로운 목표와 의미가 필요한 시기였다. 나는 그와 함께 책 읽기를 했고, 그의 글쓰기에 관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을 도와주기도 했다. 같이 읽고 쓰기를 하면서 무엇보다 내가 놀란 건 그의 실행력이었다. 그는 바쁜 와중에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읽고 쓰는 소위 “런치 스페셜” 타임을 만들었고, 퇴근 후에는 마치 입시생처럼 독서실에 틀어박혀 읽기 쓰기 전투(?)를 멈추지 않고 계속할 정도였던 것이다. 척추관협착증으로 고생할 때도, 인후두염으로 병원을 들락거리면서도 그는 결코 읽고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듯 나 역시 사회적인 의무에 더 큰 몫을 부여해 왔다. 내가 꿈꾸는 것들보다는 내가 책임져야 할 일들에 쫓겨 살아온 것이다. 나보다는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내가 속한 조직이 항상 삶의 최우선 순위에 있었다. 의무를 중시하는 스토아철학자들이 본다면 훌륭해 보일 수도 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내게 주어진 의무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대견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거기엔 나 자신의 실존의 몫은 커다랗게 빠져 있는 듯했다. 다행히도 그렇게 흔들리던 나의 내면을 붙잡아 준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나는 다시 책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히도, 그의 사추기의 방황은 술이나 기타 등등 요상한 곳이 아닌 고상한(?) 책과 글쓰기에서 멈추었다. 책 속에서 자신의 방황의 이유를 발견하고, 내면을 새롭게 이해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책이 주는 기쁨을 재발견한 것이었다. 물론 그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좌절과 침체, 포기해 버리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는 그 모든 과정을 이 책 속에, ‘초보작가의 좌충우돌 분투기’에 담았고, 그런 좌충우돌 과정에서 읽고 느끼고 깨달았던 것들을 ‘초보작가의 독서 편력기’에 담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팁으로 마지막 장에선 자기처럼 평범한 초보 독자 초보 글쟁이들을 위해 자신이 온몸으로 겪고 깨달은 독서 글쓰기 비법(?)을 담아 놓았다. 그래서 그는 서문에 이렇게 써 놓았다.
“나는 움베르토 에코나 류경무 시인처럼 나이 오십에 작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지천명’의 일원이 되고 싶다. 그래서 아주 평범한, 아니 평범하다 못해 빈 곳 투성이인 나 같은 사람도 작가가 된 것을 보고, 보다 많은 사람이 작가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길 기대한다.”
그래, 요즘은 수명 백 세 시대라고 하고, 마흔이 넘으면 누구나 인생 2모작, 시대의 2모작을 무엇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들을 하게 된다. 물론 2모작 시기에 꼭 프로페셔널한 작가가 되란 법은 없다. 지금까지 하던 일과는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고,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닐 수도 있다. 다만, 다른 일을 하면서도 최병관 작가처럼, 독서와 글쓰기를 짬짬이 병행하다 보면 언젠가는 책을 쓰는 사람, 혹은 적어도 한 권 쯤은 내 인생의 책으로 만드는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 짧고 허망한 인생길에서 한 권의 책이라도 남긴다는 것은! 하긴 요즘은 1인 1책 운동도 한다고 들었다. 일부러 퇴근시간을 짬내 글쓰기 수업을 듣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꿈을 가진 모든 이에게 “나도 그럼 할 수 있겠네?” 하는 진짜배기 용기를 줄 것이다.
내가 최 선생님, 아니 이제는 최병관 작가라고 불러야 할 분에게 처음부터 계속 강조했고,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산문은 누구나 열심히 연습만 하면 탁월한 문장가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우리 최병관 작가도 이것을 굳게 믿었고, 그 믿음대로 열심히 실천했다. 나는 그 과정을 곁에서 모두 지켜보았고, 그의 성실하고 또 겸손한 태도에 많이 감동 받기도 했다.
제목은 ‘오십에 작가가 되기로 했다’이지만, 서른, 마흔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할 수도 있다. 지금 당신의 나이가 어떻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육십에 작가가 되면 또 어떠랴. 중요한 건 결심이고, 목표를 확고하게 부여잡는 것이고,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나 핑계를 대지 말고 입닥치고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내가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런 실행력이다.).
그리고 책이 나온 후, 이왕에 책을 통한 이런 만남을 좀 더 확장해 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대전에서 일종의 북클럽을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매달 단 한 권을 정해 제대로 읽고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모여 즐겁게 책수다를 하며 독서토론을 하는 것. 만일 책과 독서에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읽기에 도전해 보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월간 토마토를 통해 연락해 주시기를. ..
글 그림 김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