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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1호] 오랜 세월 틈새에 끼어든 낯선 '고요함' 심례문화예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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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중심지는 번잡했다. 필시 전통 5일장이 서는 날이라 생각했다. 일상적으로 열리는 장은 5일 간격으로 어김없이 몸집이 불어난다. 3일과 8일이 들어가는 날이다. 삼례읍은 전형적인 시골 읍소재지 풍모를 갖췄다.
전통 5일장이 서 북적거리는 읍 중심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과거 삼례역사를 리모델링해 만든 ‘세계막사발미술관’을 만나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곧바로 삼례문화예술촌이다.
전통 5일장이 서 북적거리는 읍 중심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과거 삼례역사를 리모델링해 만든 ‘세계막사발미술관’을 만나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곧바로 삼례문화예술촌이다.
예술촌 정문 앞은 거친 맨땅 주차장이다. 그곳에 ‘삼삼오오’ 게스트하우스가 예술촌과 대칭을 이루며 서 있다. 그 사이에는 슬로푸드식당 ‘새참수레2호점’이 최근에 문을 열었다. 둘러볼 곳과 잠잘 곳, 먹을 곳이 모두 한 공간 안에서 제구실을 한다. 예술촌과 담을 사이에 두고 바로 이웃한 삼례성당이, 폴폴 날아갈 것만 같은 전체 풍광을 지긋이 눌러 준다. 1936년에 익산 창인동성당이 관할하는 공소로 설치했다가 1951년, 본당으로 승격했다. 본당 붉은 벽돌 건물은 1955년 8월에 완공한 건물이다. 단단한 벽돌 사이로 세월이 스며들어 눈에 보이지 않는 틈새를 막아 짱짱하다.
성당 맞은편 길 건너에는 완주군이 추진하는 책 마을 사업이 모습을 드러냈다. 완주군은 이미 2011년부터 책 마을 조성계획을 수립했다. 예술촌 안에 있는 책박물관과 책 공방도 이 계획 안에 있었고 2단계로 책마을 문화센터를 조성 중이다. 카페를 겸한 대형 중고서점인 북하우스와 한국학문헌아카이브, 주민문화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올해 9월 개관을 목표로 한다. 이곳 역시 ‘후정창고’를 리노베이션 했다. 북하우스 주 출입구 처마에는 어린왕자로 짐작되는 노랑머리 소년이 다소곳이 올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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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읍은 만경강 상류다. 덕분에 비옥한 토지를 가졌고, 그 때문에 일제강점기에는 멀지 않은 군산, 익산과 더불어 양곡 수탈의 중심지였다. 삼례문화예술촌을 조성한 그 공간은 바로 수탈을 위해 지은 ‘삼례양곡창고’ 자리다. 일제강점기 대지주 시라세이가 1926년 설립한 이엽사농장 창고로 추정한다. 이 창고에서 삼례역은 무척 가깝다. 1914년 영업을 개시한 삼례역을 통해 군산으로 양곡을 보내거나, 얼마 떨어지지 않은 비비정마을까지 들어왔던 바닷물을 이용해 배로 양곡을 가져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삼례양곡창고를 2010년까지 계속 사용하다가 더는 필요 없어지면서 완주군에서 매입했다. 이후 2013년 6월 5일, 삼례문화예술촌으로 문을 열었다. 창고로 사용하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VM아트미술관, 디자인박물관, 책박물관, 책공방북아트센터, 김상림목공소, 문화카페 ‘오스’로 활용한다. 완주군민이 아닐 경우 성인 2천 원의 입장료가 있다.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안내소 겸 세미나실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축물로 추정한다. 사람이 계속 거주했고 지금은 안내 사무실 겸 강연과 세미나가 가능한 공간으로 쓴다.
그 건물 맞은편에는 VM(비주얼 미디어)아트미술관이 들어섰다. 다행스럽게도 5월 31일까지로 계획한 열두 번째 기획전시 ‘Space of Silence’ 작품 철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상화 작가의 ‘이너드림-서산동’이라는 수제스크린에 담아낸 영상작품은 오랜 시간 발길을 붙들어 맸다. 들어갈 때는 아무도 보지 못했는데, 나오는 길에 관계자로부터 입장권 검사를 받았다.
아무도 없는 디자인박물관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텅 빈 공간의 무게에 짓눌리는 느낌이다. 모습을 드러낸 내부의 트러스, 모던한 전시공간이 만들어 내는 대비가 강한 인상을 줄 뿐이었다.
책박물관에서는 국민학교 시절 직접 사용했던 책부터 그 이전의 책까지 추억 돋게 만드는 책을 만날 수 있었다. 특별전시로 빅토리아 시대 그림책 3대 거장이라는 ‘랜돌프 칼데콧’의 작품 전시가 열렸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수첩을 꺼내기 귀찮아 스마트폰 카메라를 눌렀다가 관계자에게 된통 한 소리를 들었다. 곳곳에 촬영금지 표지판 있다.
책공방북아트센터에는 시간을 한참 뒤로 돌려야 하는 어떤 시점의 인쇄 관련 기계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놓여 있다. 묵직한 쇳덩어리와 어울리지 않는 정교함이 주는 느낌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한 차례 혼났던 기억이 있는지라 촬영 허가를 구했고 어떤 내용의 글을 쓸 것인지에 관한 질문에 답을 한 후에 소심하게 셔터를 눌러 댔다.
은 김상림목공소다. 직접 작품을 제작하는 작업 공간 옆에 달린 전시 공간에는 작품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우리 목수가 사용한 목공 도구를 볼 수 있다. 저 투박한 도구로 정교한 가구를 만들어 낸 장인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숨죽이게 만드는 에너지는 나무에서 뿜어져 나왔다. 가구라는 뚜렷한 형태로 변한 나무는 물론이고 변화 직전에 놓여 있는 나무도 마찬가지였다. 기계가 돌고 울끈불끈 힘줄이 튀어나오며 땀 냄새가 진동할 듯한 그 공간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마치 아무도 없는 성당에 들어선 듯했다. 사람이 둘이나 있었음에도 말이다.
평일 오전의 예술촌은 무척 고요했다. 공간 앞에 세워 둔 소와 로봇 태권V 등도 지루함에 축 늘어진 느낌을 줄 정도였다. 근처 유치원에서 나들이 나온 아이들과 선생님이 고요한 공간에 작은 흔들림을 주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들른 문화카페 ‘오스’마저도 없었다면 정말 힘들 뻔했다. 그곳에서 만난 웃는 모습이 무척 포근한 주인장과 생후 백일도 안 된 차우차우 한 마리가 어깨 위에 가득 올라 앉은 긴장을 한순간에 털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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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촌을 구성하는 각 공간은 개별적으로 혹은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한다. 월요일과 명절을 제외하고는 늘 문을 열어둔 채 방문객을 맞는다. 완벽하게 열린 공간이다. 수많은 에너지가 들락거리며 섞이고 공간 곳곳에 남아 흔적을 보여줄 만도 한데,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손님이 몰려들기 전, 잠이 덜 깬 듯한 시장에서도 비슷한 고요함을 만나지만 그것과는 분명 달랐다.
두 공간의 차이는 ‘일상성’이었다. 예술촌에서 만난 텅 빈 공간은 죽어 있었고 사람이 있는 공간은 열려 있으면서도 닫힌 듯한 불편함을 주었다. 문화카페 ‘오스’를 제외하곤 말이다. 갤러리나 극장처럼 외부인을 들이는 ‘시간’이 별도로 있는 공간이 아니라, 늘 열려 있는 공간이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삶’이 녹아 있어야 한다.
‘공간에 녹아드는 일상적인 삶이 지니는 강한 힘’을 생각하게 만든 삼례읍은 올해부터 본격적인 도지새생사업을 시작했다. 사업명은 ‘양식곳간 삼례격상’이다. 올해부터 2019년까지 4년간 국비 56억 원, 군비 24억 원, 모두 80억 원을 들인다. 국토부가 아니라 농림축산부의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을 통해 사업비를 확보했다.
이 예산으로 벌이는 도시재생사업 핵심은 주민 중심, 청년 중심, 지역 중심, 지역예술가 중심이다. 도시재생 사업 영역 밖에서도 인근 비비정마을과 만경강 등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개별사업도 활발하다. 다행스럽게도 완주와 삼례가 지닌 매력에 이끌려 청년과 예술가 등의 귀농 귀촌이 꾸준히 일어나는 동네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인적자원과 사업이 맞물려 예술촌과 주변 공간에 일상적인 삶이 녹아든다면, 휑한 광장 한편 벤치 앞에 줄지어 앉은 아이들의 쓸쓸함은 훨씬 덜할지도 모른다.
글 이용원 사진 이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