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골목에는 옛날 어떤 시절에, 어린 아이들이 그렇게 무서워했던 망태 할아버지의 후예들이 출현했다. 어깨에 가벼운 재질의 대나무로 짜서 만든 커다란 망태를 짊어지고 커다란 집게로 종이를 콕콕 집어 등 뒤로 휙 집어 던지던 할아버지다. 물론 청년과 아저씨도 있었겠지만 할아버지가 입에 찰싹 달라붙는다. 망태 청년, 망태 아저씨, 둘 다 어색하다. 여하튼, 아이들은 그 집게에 찝혀 커다란 망태 안에 담길까 두려웠다. 그리고 어느날 홀연히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2
그러나 공포의 시간은 다시 찾아왔다. 망태 할아버지의 후예가 다시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연령대도 다양해진다는 점이다. 세력 확장세가 무척 급격하다. 망태 대신에 리어카에서 손수레까지 도구도 점점 더 다양해진다. 최근에는 유모차나 대형할인매장에서 볼 수 있는 카트도 등장했다. 간혹 대형 트럭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망태 할아버지 후예 범주에 넣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좀 있다. 움직이는 시간대와 동선 등이 겹치지 않도록 일종의 조율 시스템도 작동하는 듯하다.
#.3
몹시도 심한 바람과 함께 눈발이 휘날릴 때 망태할아버지 후예 중 한 분인, 할머니를 보았다. 불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줄무늬가 들어간 안전조끼를 입은 할머니는 등 뒤로 손수레를 끌며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휘적휘적 걸어갔다. 무척 늦은 시간이었다. 할머니의 앞길을 가로등이 밝혔다. 그 가로등은 처음부터 할머니를 위해 그 자리에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골목에서 할머니를 뒤따르는 것은 그림자밖에 없다.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정말 뒤를 따랐다. 가로등이 만들어 낸 그림자는 한낮의 태양이 만드는 것과 모양은 흡사했으나 달랐다. 그 다른 점을 찾기 전까지는 할머니가 어디로 가는지 도저히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감이 밀려왔다.
#.4
망태할아버지의 후예들은 한낮에도 도시 골목 곳곳을 다닌다. 그들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해 열려 있다. 같은 도시 안에서 일상적이며 습관적으로 바라보는 대상이 전혀 다르다. 분명한 건, 그들이 바라보는 건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곳을 너무 오랫동안 바라보면 생각도 확연하게 달라진다. 어느 순간, 접점을 찾을 수 없는 평행선을 내달리게 되고 궁극에는 인류를 둘로 갈라놓을 수도 있다.
#.5
용기를 내서 정체를 묻는 질문을 던지면, “집에 있으면 심심하니깐, 소일 삼아 나온다.”라는 믿기 어려운 답변을 하거나 “그건 물어서 뭐하느냐?”라며 퉁을 놓는다. 다행히도 지친 기색으로 골목 모퉁이에 앉아 숨을 돌리는 분에게서 힘들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옛날 어느 시점, 마지막 망태할아버지가 숨을 거두며 전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세상에 우리의 후예가 다시 출현한다면, 그건 다시 지옥의 문이 열렸다는 이야기여. 우리 선배와 동료들이 그 지옥의 문을 막기 위해 망태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주워 담아 쏟아부었는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지만 그렇다고 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다시 그 문이 열렸을 때는 지금 우리가 쏟아 넣은 쓰레기보다 훨씬 더 많은, 정말 상상도 못할 만큼의 쓰레기를 주워 담아 틀어 막아야 할 거야. 처음에는 그냥 종이 쪼가리와 유리병 같은 것들이지만 나중에는 더 소중한 것이 필요할지도 몰라. 그 상황이 오기 전에 정신 차리고 자신과 주위를 둘러보라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