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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과 가치로 카페의 범람을 헤쳐 나가는
개성과 가치로 카페의 범람을 헤쳐 나가는
2022년 11월, 지인의 초대로 갔던 서울 카페쇼는 말 그대로 뜨거웠다. 672개의 참가업체와 커피업 종사자, 애호가 등 수많은 사람이 코엑스를 가득 메웠다. 마치 파도를 타듯 이리저리 떠밀리다 폐장 시간이 다 되어 빠져나왔다. 뉴스에서만 보던 한국 사람의 커피 사랑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카페 수에서도 볼 수 있다. 2022년 10월 말 기준 국세청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카페 수는 자그마치 92,879개다. 이는 치킨집, 편의점보다 많은 수치다. 숫자가 많아지니 경쟁은 치열해진다. 카페는 마케팅의 최전선이다. 예쁜 인테리어와 독특한 메뉴를 내세우는 것은 물론, 독특한 캐릭터와 굿즈를 앞세워 브랜드화하는 곳도 있다. 남들과 달라야 살아남는 시장이다.
단지한식제과연구소는 독특한 아이템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식제과다. 2022년 12월에 개업하며 개성주악을 출시했고 그로부터 한 달 뒤, 개성약과를 출시했다.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처럼 기본적인 카페 메뉴와 함께 벚꽃 차, 아카시아 차, 대추고(대추를 푹 고아 곱게 만든 것) 차 등 전통차를 곁들였다. 범상치 않은 메뉴다.
개성주악, 개성약과
단지 한식제과연구소가 판매하는 개성주악과 개성약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개성에서 온 병과다. 개성은 고려시대 수도였던 만큼 독특한 요리법이 발전했다.
개성주악의 의미는 조약돌처럼 작다는 뜻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조약돌을 닮았다. 동그란 공의 양극을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눌러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마치 시장에서 파는 도나쓰나 납작 복숭아 같기도 하다.
레시피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단지 한식제과연구소에서는 방앗간에서 찹쌀을 빻으며 시작한다.
찹쌀가루와 막걸리로 반죽한 뒤, 막걸리의 효모를 이용해 발효시킨다. 발효된 반죽을 분할해 성형한 뒤 낮은 온도의 기름부터 200도가 될 때 까지 서서히 튀겨낸다. 마지막 순간은 찰나에 타버릴 수 있다. “마지막 순간에는 손님을 볼 수도 없어요. 자칫 한 눈을 팔면 순식간에 타버리거든요.” 김민서 대표의 말이다.
다 튀긴 떡은 즙청 과정을 거친다. 불에 그을린 계피와 생강 등을 넣어 가미한 조청에 떡을 담가 조청을 먹이는 과정이다.
개성약과는 둥글게 생긴 약과와 다르게 네모나게 생겨 모약과라고도 부른다. 반죽을 여러 겹 겹쳐 결이 있는 게 특징이다.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아직 맛을 잡고 있다고 했다.
둘 다 개성에서는 유과나 약과처럼 흔한 병과인데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낯선 병과를 주메뉴로 내세운 것은 김대표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범람하는 카페에 차별점을 주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제가 병과를 좋아해요.”
좋아하는 일
흔하지 않은 메뉴를 제품으로 내놓기 위해 김대표는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했다. 병과를 취급하는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맛을 잡았다. 어느 정도 기준이 잡힌 뒤에도 지속해 맛을 봤고 시식단을 모집해 반응을 살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메뉴가 사라졌다.
“먹었을 때, 일단 제가 만족할 수 있어야 해요. 먹던 맛보다 더 나은 맛을 내야 하고요. 만족할 수 없으면 출시하지 않아요.” 개성약과의 출시가 늦은 이유다.
그의 말처럼 개성주악의 맛은 단순하지만 다채로웠다. 찐득한 조청 향 뒤로 생강 향이 치고 올라왔다.
좋아서 시작했던 병과지만 힘든 점도 많았다고 한다. 제일 힘든 점은 레시피의 변수가 많은 것이다. 찹쌀 수분량에 따라 막걸리의 양을 조절하는데, 정확한 계량을 바탕으로 하는 제과/제빵과 달리 수치화가 불가능하다. “레시피가 크게 의미가 없을 정도예요. 제일 힘들었던 점이기도 하고요. 레시피가 생겨서 따라서 하기 편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어요. 쉽지 않아 한식 병과를 하기로 한 걸 후회하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지속할 수 있던 것은 애정 덕분이다. 지금은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점이 오히려 재미있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완성도를 높이는 것뿐만 아니다. 다양한 맛을 개발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가게에 들어가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 병과의 모습과 다르게 딸기, 초콜릿이 올라간 주악을 볼 수 있다. 노력의 산물이다. “재료 각각의 맛을 분석해요. 그리고. 잘 어울릴 것 같은 재료를 찾죠. 특히 제철 음식을 쓰려고 노력해요.”
다양한 메뉴를 바탕으로 한식 병과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단지 한식제과연구소의 목표다.
“잘 안팔릴 걸 알면서도 최근에 대추고 주악을 냈어요. 저희가 대추고도 직접 만들거든요. 대추고를 알리고 싶었어요.”
범람하는 카페 속에서
“병과는 원래 잔칫날 귀인을 대접할 때 나오는 음식이었어요. 저는 이곳에 찾아주시는 분들을 귀인을 모신다고 생각하며 대합니다.”
방문하는 고객이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길 바라며 테이블 수를 최소화했다. 열 테이블이 채 되지 않았다. 수용력이 중요한 카페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손님들이 더 편안하게 느낄 수 있게 공간을 구성하며 가구도 맞춤 제작했고 그림도 직접 그렸다. 애정만큼 따뜻한 손길이 어린 공간이다.
대학 상권에 입지해 방학 때 비수기일 것이라는 우려와 다르게 많은 사람이 찾는다. 외국인 유학생이 찾기도 하고 외식조리과 학생이 따라 만들어 보고 그 맛이 안 난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며 손님들과 있던 일화를 들려줬다. 그때, 한 손님이 딸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꼭 이곳 주악을 먹고 싶어 한다며 주악을 포장해갔다.
인터뷰하는 내내 김민서 대표의 목소리에는 자부심과 뿌듯함이 묻어났다. 인터뷰를 마치고 바로 손님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그 목소리의 원천을 알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 카페는 말 그대로 범람하고 있다. 단지 한식제과연구소는 독특한 아이템과 본인의 가치를 앞세워 그 파랑을 헤쳐 나가고자 한다.
주소
대전 동구 백룡로(자양동) 11번길 54 1층 단지 한식제과연구소
연락처
0507-1494-5780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danzi_k_dessert
글 사진 정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