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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단순히 피자만 파는 곳은 아닙니다
이곳은 단순히 피자만 파는 곳이 아닙니다
선화동 '콘테타스'
플리마켓은 때때로 좋은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한다. 두 사람과는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에 처음 만났다. 레스토랑 ‘콘체타스(Concetta’s)’를 운영하는 Connie Saieva 씨와 최영규 부부다. 월간토마토에 관심을 보인 두 사람과 나눈 짧은 대화가 꽤 유익했다. 지역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고민하는 이들과 좀 더 대화해 보고 싶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콘체타스는 채광이 잘 드는 곳에 있었다. 벽난로가 있는 단란한 가정집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안내받고 앉은 4인석 테이블에는 치즈와 빵, 살라미 등이 먹음직스럽게 세팅돼있었다. 따뜻한 환대가 마음을 훈훈하게 데웠다.
이야기가 담긴 공간
두 사람은 인터뷰 내내 밝은 얼굴로 도시를 이야기하고 가끔 농담을 건넸다. 변화하는 도시와 그에 대한 생각을 말할 때는 한껏 진중해졌다. 콘체타스는 올해 3월에 오픈했다. 이탈리안 피자와 토로네를 전문으로 판매한다. 토로네는 이탈리아의 대표 간식 중 하나다. 녹인 꿀과 설탕에 계란 흰자를 섞고 그 안에 구운 견과류와 말린 과일을 넣어 굳힌 후 먹는다. 이탈리아에서는 크리스마스 기간에 특히 더 많이 먹는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레스토랑을 운영하기 전까지는 강사로 일하며 영어를 가르쳤다. 부산을 비롯해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직장 생활했다. 한국에서 만나 연을 이어 오다가 결혼 후 대전으로 왔다. 최영규 씨의 고향이 대전인 영향이 컸다. 코로나19가 국내에 터진 2019년, Connie 씨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고향인 캐나다에 잠시 돌아가야 했다. 그 시기에 겪은 일들이 그녀가 레스토랑을 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어머니가 위독하셔서 저는 잠시 캐나다에 있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유산을 일부 물려받았는데, 2년 반 가까이 그 돈을 건들지 못했어요. 상심이 컸거든요. 어느 날, 남편이랑 같이 길을 걷다가 이 건물을 보게 됐어요. 그때 남편이 이곳에 레스토랑을 여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어요. 저는 항상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어 했거든요. 공간을 살펴보니 마음에 무척 들더라고요. 옥상도 있고, 창문도 많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도 가까웠어요. 그래서 도전하기로 했죠.”
Connie 씨는 어머니가 물려준 유산으로 콘체타스를 열었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만든 공간인 만큼,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동시에 어머니를 기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제 국적은 캐나다지만 부모님은 모두 이탈리아 사람이에요. 그래서 두 분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죠.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을 받으면 편의상 캐나다라고 대답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캐나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이탈리아계 캐나다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뿌리를 굳이 감추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이탈리아의 문화를 한국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특히 한국과 이탈리아는 비슷한 점이 많아서 더 잘 통할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택한 게 피자다. 여기에 20년 가까이 만들어 온 토로네와 어머니에게서 배운 오렌지 샐러드까지 함께 선보인다. 상호도 자신의 이탈리아 이름으로 했다. 18년을 한국에서 살아온 Connie 씨에게도, 대전이 고향인 최영규 씨에게도 이곳은 새로운 도전이다. 절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두 사람은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콘체타스가 두 사람에게 가진 의미는 이외에도 더 있다. Connie 씨는 타고난 강사다. 가르치는 일에 대한 열정이 크다. 정치학을 전공한 그녀가 한국에 와서 강사를 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Connie 씨는 콘체타스를 통해 더 넓은 범위의 교육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사가 수강생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수업이 아닌,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상호소통하며 쉽고 편안하게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자 한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두 사람에게는 대전이 어떤 도시일지 궁금해졌다. 그들에게도 대전은 재미없는 도시일까? 최영규 씨와 Connie 씨는 도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Connie 씨는 대전이라는 도시의 특성을 언급하며 생각을 밝혔다.
“대전이 일명 ‘노잼’이라는 말은 저도 많이 들어 봤어요. 문화가 없다는 말도 들어봤고요. 하지만 도시가 재미있고 재미없는 걸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독서를 정말 좋아해요. 독서가 삶의 낙 중 하나일 정도로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독서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일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독서가 나쁜 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대전도 마찬가지예요. 대전은 연구원 거주 비율이 높은 곳이죠. 공부와 연구에 오랜 시간을 쏟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요. 그 연구원들에게 갑자기 벽화를 그리거나 춤을 추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화려하고 재미있는 것만이 문화가 될 수는 없어요. 도시만의 특징이 있고, 그걸 재미라는 기준으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그래서 Connie 씨는 최근 도시가 맞이한 변화가 씁쓸하다. 울퉁불퉁하게 난 길과 여러 나라의 양식이 섞인 건축물, 오랜 세월의 흔적을 담은 역사적 공간 등이 그녀에게는 도시의 문화 그 자체다. 이런 유산이 재개발 등 다양한 이유로 사라지고 획일화된 모습으로 바뀌는 중이다.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도 ‘부유한 선진국에서 온 특권층의 말’처럼 들릴까 봐 섣불리 입을 열기가 어렵다.
최영규 씨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도시를 재미없게 만드는 건 도시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전을 자꾸 재미가 없는 도시로 생각하기 때문에 정말 재미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변화하지 않을 거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콘체타스를 숨통이 트이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 단순히 음식만 먹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고, 문화와 문화가 만나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도시와 문화에 대해, 사람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시가 유지될 방법은 융합과 화합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이 중요한 시대지만, 인구는 증가할 거고 한국에도 더 많은 사람이 올 거예요. 대전도 마찬가지죠. 모두가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세상은 현재 기후위기, 전쟁, 식량난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했어요. 이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각자를 포용하고 나아갈 수 있을지 생각할 때예요.” Connie 씨의 말이다.
글 사진 하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