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역사 동네의 씁쓸한 현실, 소제동이 변하고 있다

100년 역사 동네의 씁쓸한 현실,

소제동이 변하고 있다

2021년 여름, 소제동을 처음 방문했을 때 느낀 건 어수선함이었다. 신축 건물 근처에는 철거 후 수습이 덜 된 집터와 건축 자재가 어지럽게 있었다. 1970년대 지은 슬레이트 지붕 주택 사이로 툭 튀어나온 콘크리트 벽과 형형색색 지붕이 이질적이었다. 달콤한 디저트와 맛있는 음식을 파는 상가 바로 옆에 쓰레기 더미가 벽처럼 쌓인 풍경이 굉장히 기묘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소제동이 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시 찾은 소제동에서 옛날처럼 뿌리째 뽑힌 나무와 굴삭기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곳에 살던 주민과 북적이던 사람들이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소제동 개발이 한창 이뤄질 시기, SNS에 소제동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등장한 곳이 있다. 한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건물. 줄을 서서 대기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없다. 출입구 바닥에 가득 쌓인 요금 통지서를 보니 한동안 방치된 듯하다. 문손잡이 옆에는 여기저기서 날아온 안내장이 붙어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주변에는 새로운 가게가 생겨나는 중이다.


허울뿐인 도시재생 사업

소제동은 대전 원도심에 있는 오랜 역사를 품은 동네다. 대전역 동쪽 광장 바로 옆에 있는 이곳은 1905년, 대전역에 경부선 철도가 들어서며 호황기를 맞았다. 지금도 당시 철도 직원들이 머물던 철도관사촌이 동네 곳곳에 남았다. 한국전쟁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건물들이다. 얼마 남지 않은 원주민들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옛날을 회상한다. 지금 동네의 모습을 보면 그때가 꿈만 같다. 도시 개발로 남은 사람마저 떠나가는 상황이지만, 한평생 살아온 이곳을 도무지 떠날 수가 없어 여전히 남아있다. 

“옛날에는 여기가 잘 사는 동네였어요. 택시 기사에게 여기 가 달라고 하면 좋은 곳 산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참 개발한다고 철거할 때 돈을 준다고 했어요 시에서. 지금은 땅 값이 너무 많이 올라서 살 수도 없어. 그러더니 갑자기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재개발 하지 말라고, 카페랑 지어주겠다는데, 대전 사람인 줄 알았더니 서울 사람인 거예요. 근데 사람들이 많이 왔어요. 다들 줄을 서서 기다렸어요. 처음엔 좋았지 젊은 사람들이 오니까. 근데 땅값이 오르고 돈 없는 사람은 다 딴데로 갔지. 나는 여기서 60년 넘게 살았어요. 가게도 여기 있어요. 개발하는 건 좋다 이거예요, 이렇게는 못 사니까. 근데 땅값만 오르고 주민 삶은 그대로예요. 지금은 남은 사람이 별로 없지. 많이들 포기하고 떠나가고….” 소제동에서 60년 넘게 이발소를 운영한 이종완 씨의 말이다. 

산업화 이후 유성과 둔산, 신도안 등에 인프라가 몰리며 원도심은 차츰 힘을 잃어갔다. 소제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9년, 대전시는 소제동 일대를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했다. 재개발 소식에 작게나마 희망을 품었던 주민은 부동산 투기꾼들의 횡포로 한 번 더 몸살을 앓았다. 재개발 소식을 들은 외지인들이 개발 이후 비싼 값에 집을 팔아 이득을 남기기 위해 빈집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인 것이다. 그들은 보수 비용을 아끼고자 세입자를 들이지 않았고, 동네는 텅텅 비고 말았다. 후반에는 주민들마저 스스로 집을 팔고 떠났다. 그렇게 이곳은 10년 동안 방치됐다. 그사이 재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움직임은 있었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2017년, 한 민간 기업에서 근대도시의 문화유산을 간직한 소제동을 다시 한번 살려보겠다며 이곳에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의 주체는 지역도 주민도 아닌 서울의 외부 업체였다. 그들은 1900년대 초반부터 역사를 쌓아 온 소제동을 2010년대 후반에 혜성처럼 등장한 떠오르는 동네로 홍보하며 상업적 이미지를 강조했다. 소제동의 주택 일부를 매입해 카페와 음식점, 와인바 등으로 개조 후 유행에 편승했고, 사람들은 전국에서 찾아와 SNS를 통해 기꺼이 이미지를 소비했다. 언론은 이들의 활동을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소개하며 칭찬했다. 이미 그전부터 동네를 살리려는 지역 예술가들과 시민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아직 주민이 거주하는 낙후 지역을 흉물로 묘사하는 기사들과 SNS에 ‘대전에서 가봐야 할 곳’이라는 키워드를 달아 홍보에 앞장선 공공기관과 지자체는 이런 분위기에 더욱 불을 지폈다.

사람들이 몰리고 땅값이 오르자 건물 주인들은 임대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소제동에는 저소득층과 어르신들이 주로 살았고, 높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원주민들은 쫓겨나듯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일종의 도시재생이라며 수많은 찻집과 음식점 등이 들어선 지 5년이 지난 현재, 소제동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오가지만 매출은 예전보다 못한 곳도 많다. 

“여기는 2021년에 문을 열었어요. 주말 매출은 작년과 비슷하고요, 평일은 조금 줄었어요. 초반에는 평일에도 재료 소진으로 일찍 문을 닫기도 했죠. 매출이 안 나온 가게들은 주인이 바뀌거나 없어진 걸로 알고 있어요. 가게마다 다르긴 해요. 어디는 2호점을 냈고, 어디는 아예 없어졌거든요.” 소제동 유명 음식점에서 일하는 직원의 말이다. 그는 가게에 관한 구체적 정보는 적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가게들도 비슷했다. 주인들은 구체적 수치는 알려주지 않았으나, 예전에 비해 매출 편차가 조금씩 커지는 걸 느낀다고 한다. 한 디저트 카페 주인은 임대로를 감당할 수 없는 곳은 진작 다 나가고, 감당이 가능한 곳들만 남아 운영 중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만큼의 인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SNS에 새로 올라오는 홍보글도 없어서요. 이미 있는 가게들에 가서 사진을 찍고 올리는 사람은 많죠. 이미 홍보를 안 해도 사람들이 갈 거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가 싶기도 하고….” 카페를 찾은 한 씨(24세)의 말이다. 한 씨는 소제동을 세 번째 찾는다고 말했다. 2021년에 한 번, 올해 두 번 왔다. 방문객의 눈으로 본 이곳은 무엇이든 빠르게 생기고 빠르게 없어지는 곳이다.   

언론에 등장한 일부 카페와 음식점도 현재 다양한 문제로 시끄럽다. 소제동에 있는 부동산 업체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소제동 일대 가게 중 몇 곳은 소유자가 바뀌었고 , 본래 10곳이 넘었던 운영 주체도 2022년 절반 이상 감소했다. 심지어 일부 점포에서는 불법 증축 및 리모델링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실제로 소제동 카페촌 일대의 점포 11곳 중 7개 점포의 ‘일반건축물대장’을 열람해본 결과 5곳에서 위반 사례가 확인됐다고 중도일보는 밝혔다.” (한세화, [소제동 철도관사촌 위기를 맞다] 관사촌일대 카페촌 출구전략 관측에 내부공사 불·위법 정황도, 중도일보, 2022-05-10)

그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원인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생겨난 곳에는 스스로에게 관대한 판매자와 우매한 소비자가 공존한다. 유행을 자신의 취향과 분위기로 바꿔 말하며 거품이 낀 이미지 자체를 소비하는 것이다. 속이 빈 공이 쉽게 찌그러지듯 이런 유행도 금방 식을 수밖에 없다. 터무니없이 높은 음식과 커피값은 이곳의 특징이 될 수는 있어도 손님을 지속해서 모으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국 어느 순간 손님의 발길이 끊기고 상가도 없어지면 남은 원주민들만 황폐한 동네를 껴안고 살아가야 한다.

“소제동이 핫하다고 해서 처음 와 봤어요. 음식이 맛있기는 한데, 이 맛에 이 가격이라면 두 번은 안 올 것 같아요.” 소제동의 유명 퓨전음식집을 방문한 이 씨(26세)의 말이다.


주민이 빠진 도시재생은 자본의 전략일 뿐

도시재생의 핵심은 주민참여다. 주민이 앞으로도 살아갈 공간이기에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개발할지 그들의 의견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제동의 도시재생 사업에는 주민이 없다. 죽어가는 마을을 살려서 주민에게 이득이 돌아가게 하고 싶었다면, 그 전에 주민들과 소통하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외부 업체 주장과는 달리 소제동은 이미 문화적 가치가 충분한 공간이었다. 문화와 주민, 공간을 배제하고 상업적 가치에만 집중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원주민들은 새로 생긴 건물을 지나 자기 집으로 들어간다. 알록달록 세련된 건물들 사이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본래 이곳의 주민이었는데도 말이다.

동네는 아직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날마다 다양한 문제로 소란스럽지만 많은 사람이 이 이야기를 모른다. 이곳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소제동은 그저 예쁜 카페와 신기한 음식점이 있는 SNS 속 핫플레이스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소제동과 같은 지역은 대전뿐만 아니라 곳곳에 있다. 그런 곳에는 대부분 낡고 오래된 건물이 많다. 소제동은 철도관사촌이라는 완벽한 마케팅 소재가 있었고, 역과 대학교 근처라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 이런 특징만을 바라보고 들어온 외부 민간업체들이 급속도로 상업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약자들을 보호할 장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돈이 없어 저렴하게 세 들어 살던 달동네 세입자가 어느 순간 비싸진 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쫓겨난다. 극빈곤층으로 내몰리는 세입자와 달리 자본가는 싼 가격으로 동네를 매입해 엄청난 수익을 걷은 후 ‘약발’이 떨어지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간다. 꽤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지금도 전국적으로 소제동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오래된 동네에 민간업체가 들어와 ‘-‘단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새로운 가게들을 앞장서 홍보한다. 지속성은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소제동이 핫플레이스로 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은 욕심과 자본이라는 거대한 세력에 너무 지친 모습이다.

“지금은 뭐 뒤쪽에 아파트도 들어온다고 하고 그냥 말을 말아요. 더 뭐라 하기도 그렇고. 누가 집을 산다고 하면 그냥 팔고 가 버리는 사람도 있어요.” 나무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마을 주민의 말이다. 

웃으며 이야기를 해 주던 주민들도 재개발 문제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침묵에서 쓸쓸한 무력감이 느껴졌다. 마을에도 무거운 정적이 감돈다.


글 사진 하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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