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 경제 도시 대전, 부끄럽습니다

편집장 편지

일류 경제 도시 대전, 부끄럽습니다


독자 여러분, 추석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코로나19 상황이 우리 삶 전반에 정말 많은 영향을 미치긴 한 모양입니다. 무언가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저만 그런가요? ‘관계 맺음’의 어려움이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관계 맺음’은 정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고 고찰과 사유를 동반하는 영역입니다. 핑곗김에 누워 간다고, 코로나19 상황이 만들어낸 단절이 삶에서 더욱 굳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얘기하는 관계라는 건 바로 옆에 있는 이웃이나 친구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공감’의 영역에 닿아 있습니다. 바로 눈에 보이고 숨결을 느낄 수 없어도 지구 위에서 함께 삶을 꾸려가는 모든 존재를 고려하는 관계 맺음입니다. 이에 관한 깊이 있는 인식과 성찰이 올바른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돕습니다. 이는 우리가 동물적 본능에 사로잡혀 지구를 망칠 수도 있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고 믿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을 통해 ‘홀로 있음’을 경험하고 그것이 주는 안락함으로 ‘관계’를 망각한 채 살아가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습니다.
여하튼, 큰 명절이 다가오면 괜스레 설레고 들뜨던 기분이 있었던 거 같은데, 어느 순간, 요식행위처럼 해치워버리는 이벤트로 전락한 기분이 듭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늘 해왔던 익숙한 무엇 정도요. 더는 감동이 없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목 늘어난 티셔츠 같은 존재요. 
이런 현상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닙니다. 추석은 곡식이 여물고 수확하는 계절을 맞아 가족과 이웃이 그 결실을 함께 나누며 추운 겨울을 잘 날 수 있다는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던 의식이었지요. 하지만, 지금 누가 그런 것 따위에 신경이나 쓰나요? 올해 벼농사가 얼마나 잘 되었는지, 밭작물과 과실은 열매를 튼실하게 맺었는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런 건, 그냥 대형마트에 가면 늘 있는 거잖아요.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아버리는 건 우리 주변에 정말 많잖아요. 본래 이런 문화라는 게, 이런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고요. 형식을 만들어 낸 내용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면 더욱 그렇지요. 추석이나 설과 같은 우리 고유 명절이 지닌 내용은 아직 유효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내용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잊어가는 듯해 안타까울 뿐입니다. 내용이 사라지면 안 되는 상황에서 형식만 남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니 말입니다. 이건 철저하게 앞선 세대의 잘못 아닐까요? 특정 세대를 겨냥한 말은 아닙니다. 누구나 앞선 세대가 되니까요.
명절이 끝나고 오래 미뤄두었던 계룡문고에 갔습니다. 책으로 가득한 넓은 서점에 들어가면 가을철 황금 들녘을 보는 것만큼이나 묘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텅 빈 황금 들녘을 바라볼 때는 상실감이나 헛헛함 같은 건 밀려오지 않는데,  텅 빈 서점에 덩그러니 있으니 그렇지 않더군요. 책 표지에 적힌 저자 이름을 하나하나 읽으며 괜스레 미안함이 밀려와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농부가 추위가 가시기 전부터 농토에 나와 뜨거운 여름을 지나며 농작물을 가꾸며 기울이는 애씀만큼이나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들였을 저자와 출판, 인쇄 관계자의 노고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민선 8기를 맞이한 대전시는 ‘일류 경제 도시 대전!’이라는 구호를 외칩니다. 여기저기 현수막으로 많이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이 문구를 볼 때마다 왜 그리도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인문학 도시’, ‘문화 도시’, ‘혁신 도시’라는 말도 한없이 식상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조차도 아련하게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결실의 계절, 거둠의 계절 가을을 맞이해 우리 ‘기본’을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 도시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앞선 세대인 우리가 만들어줘야 할 환경은 무엇일까요?
태양 빛을 가득 받으며 흙에서 자라는 농작물과 다양한 식물을 손으로 만져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메뚜기와 개미, 벌, 지렁이, 땅강아지를 만나 인사하고 좋은 책 속에 파묻혀 세상을 배워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그리도 힘든 걸까요?
정작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일이 ‘일류 경제 도시’일까요? 정말 그러면 행복할까요? 누가요?

2022년 9월 18일
편집장 이용원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