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람들, 괴물이 깨어났어요~

동네 사람들, 괴물이 깨어났어요~

정치인 몇 명은 하룻저녁 식사비로 수백만 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동안 한쪽에서는 집세를, 병원비를 내지 못해 스스로 목숨 끊는 일이 벌어진다. 누군가는 물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건물을 짓고 쏟아지는 빗줄기를 감상하듯 바라보는 세상에서 어떤 이들은 감옥 같은 반지하 방에 갇혀 익사한다. 2022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더는 이 모든 일이 안타깝지 않다. 비참하다.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잠자는 괴물이었다. 그 괴물이 지닌 폭식성은 어마무시하다. 우리는 그런 괴물을 깨웠다. 잠에서 깨어난 괴물은 이 세상 모든 걸 비즈니스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정치조차도 비즈니스일 뿐이다. 수천 년 전부터 많은 사람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때론 그 때문에 목숨도 잃었던 ‘정치의 본질’ 따위는 무척 우스워졌다. 잠에서 깨어난 괴물은 그따위 사유 따위에 걸쭉한 가래침을 뱉으며 모욕한다.
이런 세상 속에서 여전히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라며 잘난 척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승자 독식이다. 자유로운 경쟁을 용인하고 이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전부 갖는 걸 사회적으로 동의한다. 흔히, 세상을 정글에 비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글에서는 약하면 정말 죽음을 맞이하지만 우리 인류는 사회(국가)를 구성하면서 정글에서 벗어났다. 우리가 잘난 척 할 수 있었던 근거다. 정글처럼 패했다는 이유로 사회 구성원이 죽도록 내버려 두면 그 사회는 유지할 수 없다. ‘소유’하고 싶은 개인의 욕망을 인정(혹은, 부추기고)하는 대신 사회는 전체 구성원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고도화하면서 소유의 욕망이 극으로 치닫고 이에 따라 다양한 사회 문제가 발생하면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을 구분하기도 어렵고 획일적인 정책으로 유효한 결과를 도출하기에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다. 현자들은 이런 세상을 향해,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일갈하지만 목소리에 힘이 전혀 실리지 않는다. 심지어 우습게 들린다.
어느 수준에서 국민이 권리를 위임한 국가는 이에 관한 법 제도를 정비하고 예산을 투입하면서 안전망을 구축해야 하지만 사회 구성원의 합의를 구하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최근 우리 사회에 핵심 이슈로 떠오른 ‘공정’에 관한 논쟁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선출했건 임용했건 간에 국가를 운영한 이들이 자기 업무를 개인적인 비즈니스로 대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욱더 최악으로 치닫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라는 사회적 합의가 점점 희미해진다. 괴물 짓이다. 폭식의 먹이 사슬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언제 떨어져 밟혀 죽을지 모른다.(는 일종의 공포증, 포비아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민중의 손으로 왕조를 무너뜨린 적이 없다. 우리 손으로 광복을 쟁취하고 승전국의 지위를 갖지 못했다. 광복 후 우리 손으로 미래를 상상하며 설계하지 못하고 미군정기를 겪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부역자를 제대로 처단하지 못하고 그들이 사회의 주류로 살아남는 걸 방치했다. 전두환과 누군가는 목숨 바치며 치열하게 싸워 직선제를 쟁취하고는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이래로, 우리 사회 정치계에서 벌어진 도무지 이해 못할 일들의 뿌리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우리는 괴물을 다시 잠재우거나 해치우기 위한 작전을 짜야 한다. 이를 위해 괴물이 깨어났다는 사실을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녀야 한다. 이번에는 무척 긴 싸움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22년 8월 25일
월간 토마토 편집장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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