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손끝을 뻗어 확인하는 마음으로


눈을 감고 

손끝을 뻗어

확인하는 마음으로

아리아 갤러리 《마음을 담다展》


전형주 <고궁산책>

2022년 5월 1일부터 5월 31일 까지 아리아 갤러리에 전형주 작가 그림이 걸렸다. 전형주 작가 작품은 고요하다. 작가는 주로 1호, 2호 붓을 사용한다. 1호 붓은 지름이 1~2mm, 2호 붓은 1.8mm 정도다. 그의 그림은 큰 그림이 대부분인데 그나마 작은 그림이 30호 정도다. 30호가 90.9×60.6cm이니 캔버스 전체를 하나의 선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서도 대략 760번의 붓질이 필요하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진 하루 10시간씩 한 달 반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수만 번의 붓질로 그는 정원, 고궁을 그린다. 동일한 오브제를 조금씩 배치를 달리해서 그린다. 작가에게 있어 그림은 명상과 같을지도 모른다. 갤러리에 걸린 작품의 수가 작가의 삶 자체다. 

이번 전형주 작가 기획 전시엔 어린아이들도 함께 참여했다. 전형주 작가와 어린아이들의 컬래버 전시《마음을 담다展》에 다녀왔다.

아리아 갤러리와 전형주 작가

때로는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가 그림이 된다. 아리아 갤러리 박지선 대표는 전형주 작가의 그림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수만 번의 붓질하는 마음을 말이다. 반복이 때로는 용기를 준다. 고된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해 나갈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자신감을 가지게 한다.

"작년에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감정적, 환경적으로 모두 다 어려웠죠. 그러던 중 작년에 송태화 작가님과 어린아이들의 컬래버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어요. 작품을 만들기 위해 236개 타일을 하나하나 만들고 이어 붙이는 작업을 했어요. 그때는 홀로 갤러리를 운영했으니 혼자 갤러리에 남아 타일을 만들곤 했는데 그때 두려움이 자신감으로 변하더라고요. 단순 작업을 반복하면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얻는 힘이 있었어요."

박지선 대표가 말한 송태화 작가와 어린아이들의 컬래버 전시는 아리아 갤러리의 첫 기획전이기도 했다. 《2021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란 전시는 236개 타일 위에 송태화 작가가 그림을 그린 후 각 타일을 아이들에게 나눠 줬다. 아이들이 각자 꿈꾸는 모습을 타일에 그리게 한 후 다시 하나의 작품으로 이어 붙이는 작업이었다. 전형주 작가 작품을 보며 박지선 대표에게 물었다. 단순 반복 작업을 계속하면 마음이 지치진 않는지 묻는 질문에 오히려 힘듦과 어려운 마음을 캔버스에, 작품에 담으면서 고요해진다고 했다.

"실제 전형주 작가님을 만나 보면 온화하고 마음이 참 부드러우세요."

전형주 작가는 어릴적 청력을 잃었다. 작가에게 있어 세필화 작업은 대상에 닿고 싶은 염원이기도 하다. 그곳에 정말 그렇게 존재하는지 재확인하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아리아 갤러리도 일종의 세필화 작업과 닮은 면이 있다. 갤러리가 위치한 곳은 과거 대전극장거리라 불리던 곳이다. 이 거리엔 대전극장, 제일극장이 있었고 영화를 보고 즐기는 이들로 붐볐다. 그런 과거를 뒤로 하고 지금은 인터넷 도박장이나 성인오락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에 갤러리를 열면 다들 어려울 거라고 했어요. 여러 사업으로 살리려고 해도 못 살린 거리라고요. 하지만 저는 제가 제자리에 돌아온 거라고 생각해요. 원래 대전 문화가 있던 거리로 제가 돌아온 거라고요. 남들이 못 살렸다고 해도 제가 한번 이 거리를 바꿔 보자고 생각했죠."

아리아 갤러리는 서산에서 대전으로 장소를 옮겼다. 대전에 아는 작가도 별로 없었고 대전이 어떤 동네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이곳에 자리 잡은 이후, 아리아 갤러리는 끊임없이 이곳이 문화가 있던 거리임을 재확인하는 중이다.   

아이들과의 컬래버

"방문하신 분들이 그래요. 여기는 갤러리인데 미술관 같은 모습도 있다고요."

갤러리 한편엔 전형주 작가 작품과 함께 아이들 작품을 함께 전시했다. 건양대학교 부속 유치원 5~7세 어린이들의 그림이다. 각 125개의 작은 캔버스에 아이들의 마음을 담았다. 전시가 시작되고 주말에 아이들과 부모님이 함께 그림을 보러 오는 일이 많았다. 아이들이 갤러리에서 여러 체험을 할 수 있게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아이들이 마음에 드는 그림에 빨간 동그라미 스티커를 붙일 수 있게 했는데 갤러리 그림 옆에 붙은 빨간 스티커는 그림이 이미 팔렸다는 뜻이다. 컬래버 전시에 참여한 아이들은 자기 그림을 사고 작품 보증서까지 받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뽑기를 통해 뽑은 캡슐에 담긴 재료를 이용해 캡슐 꾸미기, 전형주 작가 그림 엽서에 편지를 써 보는 엽서 체험 그리고 직접 그린 그림을 컵에 프린팅하는 컵 만들기 체험까지 진행했다. "꼬마 아이들이 갤러리에 들어와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많지 않죠. 이번 기회를 통해 작품도 감상하고 자기 작품도 함께 즐기면서 갤러리에 대한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이런 경험이 쌓이면 나중에 갤러리와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겠죠."

그림은 안 사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사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한 번 사는 인생, 집에 그림 하나 정도는 두고 즐기면 좋잖아요" 라고 말하는 박지선 대표다. 카페에 음악이 있고 없는 것에 차이가 크듯 그림도 소유하는 즐거움이 크다. 나중엔 없으면 허전하다. 그러니 갤러리에 자주 와 그림을 보러 오는 손님이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언제 자신 마음에 닿는 그림을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아이들의 작품과 전형주 작가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었다

갤러리의 꿈

"갤러리를 운영하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죠. 그림과 함께 하는 즐거움이 있죠."

갤러리 운영은 쉽지 않다. 다른 문화 사업도 그렇듯 좋아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아리아 갤러리를 계속 운영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건 미술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지만 박지선 대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화가예요. 그래서 어릴 적엔 그림 보는 게 싫었어요. 아빠는 밤에 작업하고 낮에 자고 집에는 그림이 가득하고. 하지만 나중에 커서 알게 되었죠. 아버지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림을 얼마나 그려야 했고, 또 얼마나 팔아야 했는지 말이죠. 분명 그리고 싶은 그림도 있었을 테지만 돈을 벌기 위해 그려야 했을 그림도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갤러리는 작가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뽐내는 최고의 무대로 만들고 있어요. 만약 아버지도 이처럼 그림을 선보일 무대가 있었더라면 조금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해요." 갤러리를 운영하는 건 그림이 좋고 작가를 지지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만으론 부족하다. 갤러리는 결국 그림을 팔아야 한다. 그래서 갤러리는 꿈을 꾼다. "조만간 젊은 작가들 작품을 모아 기획전을 열 생각이에요. 목표는 완판입니다." 박지선 대표는 자신이 있다. 갤러리 완판을 이뤄내면 작가도 힘을 얻고 갤러리도 주목받을 것이다. 열심히 뛸수록 좋은 행운은 따라온다. 이번 6월에 방영할 SBS 드라마엔 전형주 작가 작품이 협찬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이 소식 이후 갤러리로 연락 오는 컬렉터가 많아졌다. 이번 전형주 작가 기획전이 있단 소식을 듣고 부산에서 그림을 사러 온 컬렉터도 있었다. 대전엔 좋은 작가가 많다. 이들과 함께 꾸준히 일을 이뤄 나가면 꿈에 닿는 날도 올 것이라 믿는다.

6월 3일부터 7월 3일까진 《6월의 꿈》이란 제목으로 전시가 진행된다. 송태화 작가부터 박기훈 작가까지 총 5명의 작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각 작가의 작품 주제는 자아 확인부터 자연과 인간의 공존, 과거의 기억까지 다양하다. 다채로운 작품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현재 주목 할만한 작가를 알아가는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다.

                                                                                                                     

                                                                                              6월 전시 홍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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