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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는 우리에게 무슨 필요가 있을까
갤러리는
우리에게
무슨 필요가 있을까
일상은 끊임없는 정의와 판단의 연속이다. 그러니 즐거움은 익숙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며 시작된다. 주변에 낯선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연속적인 노력이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갤러리와 미술관은 어떻게 다를까. 미술관이 다양한 작품을 즐기는 것이라면 갤러리는 그 중 나만의 작가를 찾는 일이다. 한동안 미술관 가는 것이 취미라 하면 유별나게 보는 시선이 있었지만 지금은 미술관에 가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트렌드 중 하나인 독립책방 유행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유행의 결과, 책은 읽는 도구에서 내 생각을 대변하는 수단으로 옮겨가고 있다. 책 표지가 좋아 책을 사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러한 유행은 곧 갤러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가고 그 작가 작품을 온전히 내가 소유하는 일은 코로나19 이후 내 집 꾸미기 유행과 맞물려 움직일 것이다. 갤러리의 봄은 온다.
대전에서 주목해 볼 만한 갤러리 네 곳을 담았다. 아리아 갤러리, 모리 갤러리, 미룸 갤러리 그리고 지소 갤러리다. 갤러리도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각 특색이 있는 갤러리에 한번 발을 들여보는 것으로 일상에 작은 즐거움을 찾아보면 어떨까?
아리아 갤러리
대전광역시 중구 중앙로170번길 48 1층
갤러리에서 작가는 새로운 길을 연다
서점과 갤러리는 공간을 통해 작가와 대중이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같다. 독립책방이 트렌드로 떠오르며 개성 있는 책방이 곳곳에 생겼듯 최근에 다시 각자 개성을 가진 갤러리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아리아 갤러리. 대전극장통 거리에 위치해 있다. 지금은 성인 게임장이 즐비한 거리. 이곳에 갤러리가 자리 잡았다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다. 갤러리 문에 붙은 스티커, ‘미성년자 출입가능’이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이 거리는 도시의 유산이다. 과거 대전 예술의 중심이었던 곳, 흔히 대전극장통이라고 부른다. 아리아 갤러리 박지선 대표는 그 역사 위에 다시 길을 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다.
훌륭한 작품 활동을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발굴하는 것이 이 갤러리의 중요한 아젠다 중 하나다. 아리아 갤러리와 자주 작업하는 작가로 이두리, 송태화 작가가 있다. 두 작가 모두 작품의 깊이나 메시지가 대중에게 잘 닿을 것이라 믿기 때문에 갤러리에서 적극 지원하는 작가다. 이두리 작가는 물고기, 그 중에서도 아시안 아로와나를 그린다. 주목받는 청년 작가로 갤러리를 방문하는 이들은 작가 설명을 듣지 않으면 중견 작가, 노년 작가로 착각할 정도로 깊이가 있다. 송태화 작가는 한국적 요소를 섞은 그림을 그린다. 그 소재도 모래, 나무 등이다. 송태화 작가는 2021년, 아리아 갤러리에서 아이들과 콜라보 전시도 진행했다. 송태화 작가의 커다란 그림 사이사이에 아이들이 작은 캔버스에 그린 그림을 함께 모자이크 형식으로 배치하여 커다란 그림 하나를 완성했다. 갤러리에선 작품 감상만 이뤄지진 않는다. 작가와 대중이 만나는 것엔 각자의 다양한 방식이 있을 뿐이다. 마치 책방에서 작가와의 만남 강연이 이뤄지는 것처럼 작가와 대중이 다양하게 만날 수 있도록 아리아 갤러리 노력한다.
현재 아리아 갤러리는 독일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진출할 도시는 프랑크푸르트. 현대 미술의 메카다. 이곳에 가장 한국적인 그러나 가장 대중적인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분명 현대 미술 시장은 커지고 있다. 작품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갤러리 전시를 열면 작품을 사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이때 작가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또 다양한 작가와 서로 소통하는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갤러리의 일이다. 이렇게 다양한 일을 어찌 다 할까 싶은 걱정으로 갤러리에 들어서다가도 반갑게 맞이하는 박지선 대표를 만나면 충분히 할 수 있을거란 믿음과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전시회를 열기 전에 작가와 만나 소통하면서 하나하나 기획하고 있어요. 또 오는 손님들에게도 작품의 가치를 알려드리고 있죠. 미술 작품이 엄청 비쌀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몇 달 조금씩 모으면 살 수 있는 작품도 많아요. 그렇게 누군가에겐 첫 컬렉션이 될 작품과 인연을 이어갈 수 있도록, 또 그림을 사고 싶단 생각이 들 때 이곳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박지선 관장과 함께하는 이근형 PD의 말이다. 경기도가 고향인 그녀는 대전에서 문화 기획을 하고 싶어 보금자리를 찾다가 아리아 갤러리와 인연을 맺었다.
모리 갤러리
대전광역시 대덕구 오정동 210-1 창업존 60동 102호
젊은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곳
‘대전은 재미가 없다’. 누구를 향해 이말을 던질 수 있을까?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투정이다. 수요 없는 공급은 있을 수 없다. 청년 작가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문화 다양성은 젊은 작가들이 끊임없는 실험을 하며 만들어진다. 고인 물에 새로운 물고기가 찾지 않듯, 계속 흐르는 강이 되어야 한다. 도시가 즐거우려면 새로운 작가들의 실험이 계속되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다.
모리 갤러리를 운영하는 고민석 대표는 젊은 작가의 첫 전시를 응원한다. 순수 예술을 전공하는 이들이 개인 전시회를 한번 열기 위해선 최소 200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 고민석 대표는 전시회를 열고 싶어 하는 친구를 위해 본인 아르바이트비 150만 원을 모두 들여 친구의 전시회를 열었다. 그때 전시회를 열게 된 친구도 기뻤지만 고민석 대표도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의 전공은 경영학. 경영학적으론 말도 안 되는 갤러리 일을 시작한 것은 숫자만으론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모리 갤러리는 한남대 창업존에 있다. 비교적 싼 가격에 갤러리를 운영할 수 있다. 이전에는 지정된 갤러리 없이 mlm 프로젝트팀으로 활동했다. 정기 전시, 기획 전시를 계획하며 전시에 함께할 청년 작가를 모집했다. 참여하는 작가들과 함께 전시 주제에 맞는 작품을 기획하고 오직 mlm 프로젝트에서 기획한 전시를 위한 작품을 만들었다.
“저희도 처음에 작가를 모집할 때 얼마나 올지 예상을 못 했었는데 생각보다 정말 많은 분이 지원해주셨어요. 그때 정말로 전시 기회를 원하는 청년 작가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지원하는 작가는 대전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서울, 부산, 대구 등에서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고민석 대표도 대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더 지원하고 싶은데 지원이 적어서 아쉬울 정도라고 한다.
갤러리는 지속되어야 한다. 현재 모리 갤러리는 대관 전시 신청 작가도 모집하고 있다. 대관비는 매우 싸다. 일주일에 30만 원. 4월에는 MOU를 맺은 리드 텍스쳐 팀 작가 31명이 협업한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대학가에 위치한 갤러리의 모습이 재밌다. 젊은 학생들은 새로운 장소에 두려움이 없다. 갤러리엔 많은 이가 오간다. 비록 이곳에서 작품이 팔리는 일이 적을진 모르나 이곳에서 새로운 청년 작가들의 꿈이 자라고 있다.
“전시 기획을 할 땐 저도 함께 전시 회의에 참여하고 오히려 제가 어떤 식으로 가면 좋을지 PPT를 준비해서 발표하기도 해요. 작가 분들도 이렇게 진행하는 전시 회의는 처음이라면서도 오히려 좋아하셨죠. 작가는 전시 경험을 통해 사회에 진출하게 되는데 이 진출할 수 있는 디딤돌이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남대학교 창업존은 사회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거침없이 나아가고 싶은 청년을 위한 공간이다. 지금까지 창업이라 하면 음식점, 굿즈 사업 등을 생각했는데 그 공간에서 젊은 작가들이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작당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이 갤러리가 의미가 있다.
모리 갤러리를 운영하는 mlm 프로젝트팀은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를 인터뷰해서 웹 매거진도 만든다. 작가는 전시가 끝나면 남는 것이 전시 리플랫에서 끝나지 않도록, 그보다 좀 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다. 혹시나 새로운 작가를 만나고 싶다면 mlm 프로젝트에서 운영하는 모리 갤러리를 찾아보자.
미룸 갤러리
대전광역시 동구 삼성동 121-1
문화는 단번에 쌓이는 것이 아니다
빨간색, 회색, 흰색. 미룸 갤러리는 이 세 가지 색으로 이뤄져 있다. 건물 공간은 지하 1층부터 2층을 지나 옥상까지 이어진다. 밖에서 보았을 때 붉은 벽돌이 인상적이다. 1층은 북카페, 2층은 갤러리로 사용한다. 건물 자체도 인상적이지만 이 공간을 운영하는 김희정 대표가 있기에 미룸 갤러리는 더욱 특별하다.
김희정 대표는 시인이다. 현재 미룸 갤러리에선 글쓰기 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월요일은 저녁 7시 반, 금요일은 오후 2시 반이다. 인원수는 7명으로 제한해서 진행한다. 월요일반은 벌써 진행한 지 3년이 넘었다. 시인이 운영하는 갤러리라는 점이 흥미롭다. 어쩌다 서점이 아닌 갤러리도 함께하게 되었을까?
“갤러리에 그림을 걸어도 안 팔릴 때도 있죠. 하지만 그림이 팔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공간에 그림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달라요. 운영하는 건 어렵죠. 일도 많고요. 그래도 재밌어요. 그림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어요. 책하고는 또 다르죠.”
미룸 갤러리는 대관 전시가 없다. 모든 전시는 미룸 갤러리 기획, 초대 전시다. 갤러리 공간 운영을 위해 대관 전시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대관 전시는 결국 작가와 갤러리 모두가 힘들게 된다는 것이 김희정 대표의 생각이다.
갤러리와 작가가 동등한 위치에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전시 도록은 ISBN 코드를 발급받아 작가가 소유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작품 이동부터 설치를 모두 갤러리에서 맡아 진행한다. 또한 작가가 작품을 갤러리에 걸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기에 출품료도 반드시 챙겨 준다. 당연한 일들이지만 당연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젊은 작가들이 공정한 출발선에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미룸 갤러리에는 주로 50대 이하 대전 지역 작가 그림이 걸린다. 지역 작가가 지역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한다.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해 나가는 겁니다. 문화는 단번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쌓여가는 거니까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보다 더 활발하게 전시와 공연과 강연을 이어갈 계획이다. 옥상에선 공연을 하고, 2층에선 그림을 감상하며 1층에선 오가며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 공간이 될 것이다. 문화가 단번에 쌓이지 않듯 미룸 갤러리는 층별로 다양한 문화를 쌓아가며 마땅히 해야할 것을 꾸준히 해 나갈 것이다.
지소 갤러리
대전광역시 유성구 구암동 652-3
공예 트렌드는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공간이 주는 감동이 있다. 좋은 여행지로 떠날 때 자주 즐겨 읽는 책을 다시 가방에 넣는 것은 같은 작품도 다른 공간에서 보면 또 다른 감동이 오기 때문이다. 지소 갤러리는 공간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크게 지은 건물에선 예술을 주제로 다양한 소통이 오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지소 갤러리는 공예 작가의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 공예 전시를 전문으로 하는 갤러리다. 공예품은 실용적으로 쓰는 그릇부터 사치품까지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오브제의 기능을 하며 순수미술의 성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빠르게 변하는 공예 트렌드에 맞춰 잠재력 있는 신인 작가들을 발굴해 대중에게 선보이는 일을 한다.
갤러리는 1층에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주하는 공간 속 하얀 타일과 그에 맞는 매끈한 도자기 작품을 수시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적절한 공간에 놓인 공예품은 하나의 작품으로 존재한다. 예술과 공예의 경계는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건물 2층은 다양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현재 월요일은 규방 수업을, 금요일엔 공필화 수업을 진행하며 격주로 와인 클래스도 진행 중이다. 공예가 일상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참여하는 수강생도 다양하다. 대부분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만족도가 높아 입소문을 타고 새로운 수강생이 들어오는 중이라고 한다. 2층은 넓은 공간에 야외 테라스도 갖추고 있어 새로운 도전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는 곳이다.
글 사진 황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