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1호] 원도심 영역 안에서 '거점 공간'으로 검토할 필요

원도심 영역 안에서

'거점 공간'으로 검토할 필요

 

옛 성산교회 건물 철거 논란

 

 


  

 

1.

사람만 뒤웅박 팔자가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양지근린공원에 옛 성산교회 건물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원 조성을 결정하고 철거를 계획했다가 이를 바꿔 활용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공식적으로 활용 계획을 발표했는데 지지부진하면서 시간만 몇 년 흘렀다. 대전시는 다시 철거를 결정하고 관련 예산을 세워 의회에 제출했다.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의회에서 이 철거 예산을 전액 삭감해 버렸다. 불씨가 꺼진 줄 알았던 활용 방안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건물이야 입이 없으니 이렇다 저렇다 자기 주장을 펴기 어렵겠지만, 이 정도면 팔자가 참 기구하다. 지난 10월 22일 아침, 대전 중구 선화동 양지근린공원을 찾았다. 대흥동에서 옛 충남도청을 지나 선화동을 관통하며 공원에 도착했다. 20여 분 걸린 듯하다. 원도심을 가로질러 그 시선의 궤적 위에 놓인 옛 성산교회 건물을 보고 싶었다. 관리하지 않고 비워 둔 흔적이 곳곳에 묻어났지만 2007년에 사용 승인이 떨어진 건물 골조만은 여전히 튼튼해 보였다. 지하 1층, 지상 4층에 건축면적 387.22㎡, 연면적 1420.59㎡ 규모다.
“아주 이게 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있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에요. 비어 있으니 보기에도 좋지 않고, 빨리 철거했으면 좋겠어요. 왜 저렇게 놓아두나 몰라.”
힘차게 공원을 걷던 동네 주민 한 명이 큰 소리로 의견을 말한다. 비어 있는 커다란 건물이 을씨년스럽고 매일 걷는 공원에 시야를 가리는 무엇인가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대전시의회는 지난 9월, 245회 임시회에서 옛 성산교회 철거 예산 1억 9천만 원을 전액 삭감했다. 옛 성산교회 리모델링 예산 10억 원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같은 건물 철거 예산을 올린 것이 문제였다. 반박할 수 없는 이유다. 지은 지 10년 조금 넘었을 뿐이다. 사실, 부수기는 아무래도 아깝다.

 
2.

대전시는 옛 성산교회 처분과 관련한 공식적이고도 구체적인 계획을 3년 전인 2016년 11월, 처음 발표했다. 당시 옛 성산교회에 부여한 기능은 ‘복합커뮤니티 공간’이었다. 시는 “옛 성산교회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개발사업 등으로 인해 단절된 지역 내 주민 간 소통의 장으로도 활용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물 지하층은 공연, 회의, 체육시설 등 확장이 가능한 자율형 모듈 공간으로 조성하고 1층은 주차장과 인포메이션 공간, 2층은 마을도서관, 커뮤니티룸 등으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3층은 시민, 청년예술가의 창작 공간으로 계획하고 4층은 관리사무 공간, 옥상은 별빛공원으로 조성하여 주민쉼터와 전망대를 설치한다는 기본 그림을 그렸다. 리모델링 예산 10억 원도 이때 수립했다. 이후 2017년에 인근 주민 대상으로 필요 시설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도서관, 커뮤니티 공간, 공연전시 공간을 두고 벌인 조사에서 주민 선호도가 가장 높은 공간은 도서관이었다. 
바로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사이에 2018년 9월, 용두동과 은행선화동 자생단체가 주민 설문조사를 벌여 이 결과를 토대로 철거 요청 의견을 대전시에 접수한다. 1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후 올해 7월, 대전시는 양지근린공원 3,373세대를 대상으로 우편 설문조사를 벌인다. 1,268세대가 응답한 설문조사 결과 84.78%가 철거 지지 의견을 밝혔다. 이 조사 후 대전시는 철거 예산을 편성해 의회에 제출한다. 이 예산을 대전시의회가 전액 삭감했다.
옛 성산교회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철거 아니면 활용이다.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제법 복잡한 문제다. 경제적 효율성과 장소성, 이해관계자의 범위 등 풀어야 할 많은 매듭이 존재한다. 이렇게 복잡할 때는 사실 없애는 것이 속 시원할 수도 있다. 시간이 좀 흘러 그런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해 버릴 가능성이 크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 시에는 이미 전례도 많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여러 요소 중 하나는 이 건물의 보존 가치다. 근대문화재로 등록이 가능할 정도로 역사성을 가진 건물도 아니고 보존 가치가 있는 특별한 스토리도 없다. 레트로한 이미지에 열광하는 지금 기준으로 보았을 때 건축 양식도 그저 그렇다. 딱히 독특한 매력은 없다. 아직 쓸 만하다는, 제법 강력한 가치 말고는 딱히 부여할 만한 가치는 없다. 
리모델링 예산도 10억 원 규모로 예상했으나 계획한 용도로 활용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18억 원 상당이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이 지점에서 차라리 필요한 용도에 맞게 건물을 신축하는 비용이 더 싸게 먹힌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등장한다. 주민 선호도가 높았던 마을도서관을 신축 운영하는 것을 가정할 때 그렇다. 옛 성산교회를 철거하면 건물 보상가액 16억 원은 소멸해 버리지만 리모델링 비용보다 신축 비용이 더 싸다면 ‘남는 장사’라는 논리다. 마을도서관 건물은 옛 성산교회 건물 덩치만큼 클 필요가 없어서 리모델링 비용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신축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측면만 놓고 보면 설득력 있다. 최초에 건립할 때 성산교회 측이 투자한 비용과 자원 등을 고려하고 비교 대상이 되는 신축 건물과 옛 성산교회 건물의 규모를 비교해 들어가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지만,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 안에서는 부처님 도 닦는 소리밖에는 안 되니, 이 부분은 넘어가자. 여하튼, 존치 및 활용이라는 선택지를 취하려면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논리를 뛰어넘을 가치 제안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이 건물을 둘러싼 잠재적 이해관계자 문제도 논란 소지가 있다. 결과가 어떻든 설문조사 결과는 대부분 공원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했다. 인근 주민에게 의견 개진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근린공원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큰 문제는 없다. 근린공원은 법에 ‘근린 거주자 또는 근린 생활권으로 구성된 지역 생활권 거주자의 보건, 휴양 및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설치한 공원’을 말한다.
판단 기준을 경제성에 놓고 이해관계자를 인근 주민으로만 놓는다면, 예산의 효율성과 설문조사 결과 모두 ‘철거’에 힘을 실어 준다. 

 

 
3.

이쯤에서 ‘가치’에 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번 옛 성산교회 논란은 ‘유휴 건물이 있는데, 이를 어찌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질문을 좀 바꿔 볼 필요가 있다. ‘옛 성산교회 건물이 자리한 곳에 어떤 특정 시설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으로 말이다. 필요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철거 후 새로운 건물을 신축할 필요조차 없다.
필요한 쓰임을 고려할 때 옛 성산교회 건물만 덩그러니 떼어놓고 볼 문제는 아니다.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양지근린공원을 용두동과 선화동 경계면에 있는 동네 근린공원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려 애쓰는 ‘원도심 영역의 서쪽 끄트머리’로 볼 수도 있다. 동쪽 지점은 좀 넓게 잡아 대전역 뒤편 소제동이라고 볼 때 거리가 대략 2km다. 도보로 빨리 걸으면 30분, 천천히 주변을 감상하며 이리저리 골목을 돌아 도착해도 한 시간 남짓이다. 옛 충남도청과는 불과 500m 정도에 불과하다. 옛 충남도청과 양지근린공원 사이 선화동은 선화단길이라 부를 정도로 다양한 변화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힙하거나 레트로한 감성을 자아내는 카페와 음식점이 현재 변화의 바람을 주도하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카페와 음식점은 이 공간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것이 전부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아니 된다.
민간에서 이렇게 공간에 액센트를 주며 역동성을 불러일으킬 때 공공영역에서는 기획을 시작하며 손뼉을 마주쳐야 한다. 생뚱맞지 않고 맥락있게 말이다. 그래야 시너지 효과를 내며 역동성 있는 파장이 오래 간다. 더군다나, 선화동 지역은 한창 활용 계획을 수립 중인 옛 충남도청 배후지로서 다양한 기능 부여가 가능한 구역이다. 여기에 양지근린공원은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펼쳐져 그 결과가 궁금한 중촌동과도 불과 1km 정도 떨어졌고 최근 관심을 많이 받는 옛 충청남도 관사촌 ‘테미오래’까지도 1km가 채 안 된다.
이런 주변 상황을 고려하면 위치 특성상 양지근린공원 의견 개진 권한을 가진 주민을 공원 인근 500m 안쪽에 거주하는 아파트 주민이나 단독주택 주민으로만 한정할 수는 없다.
처음 옛 성산교회 건물 존치 결정을 내렸을 당시, 대전시가 원도심을 바라보며 하드웨어 측면에서 가장 관심을 둔 것은 부족한 ‘앵커 시설’이었다. 문화예술로 해당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전략을 수립했지만 이를 수행할 거점 시설이 태부족한 것이 현실이었다. 선으로 연결할 수 있는 ‘점’이라는 측면에서 앵커 시설에 의미를 부여하면 옛 성산교회 건물이 위치한 곳은 제법 절묘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존 가치를 설명하는 것이 무리수는 아니다.
아울러, 공원이 들어선 곳의 ‘장소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름처럼 햇살이 잘 내리쬐는 양지근린공원은 선화동에 있지만 바로 용두동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용두산이라고 불렀던 이곳은, 6·25전쟁 당시와 직후에 산자락에 피난민과 상이군인이 모여 살았다.
“제가 어렸을 때 아래쪽에 살았어요. 엄마가 산 위로 올라가지 말라고 했었지요. 무서운 사람들 많다고요. 그런 기억이 있어요.”
어린 시절을 용두동에서 보낸 40대 염 씨가 간직한 기억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강점기 일본군 헌병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일제는 1942년부터 태평양전쟁에서 사망한 일본군 위패를 두기 위해 기념물을 짓기 시작했으나 기단부분까지만 건립하고 전체는 광복 전까지 완공하지 못했다. 이후 기록에 따르면 6·25전쟁이 끝난 1953년, 도민 성금 1천만 환을 모아 1956년에 탑을 완공했다. 이곳에 대전·충남지역 출신 전몰군경 1천 676명의 위패를 봉안했다. 일본군 위패를 두려던 곳에 6·25전쟁 중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전몰군경 위패를 모셨다. 아이러니하다.
이후 2008년 보문산 보훈공원을 만들고 위패를 이곳으로 모두 옮기면서 2013년 영렬탑을 철거했다. 영렬탑 철거 때도 말이 많았다. 양지근린공원을 조성하면서, 2016년에 탑이 있던 곳에 상징 조형물을 세웠다. 바로 이곳에서 옛 성산교회 건물이 내려다보인다. 2007년 건립한 옛 성산교회 건물 자체가 가진 역사성은 없지만 이 공원 자리가 우리 대전 근대 역사를 구성하는 한 층위를 형성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4.

자기 색깔을 분명하게 낼 정도로 원도심 영역이 변화를 마무리할 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듯하다. 아니, 걸려야 한다. 이런 원도심 영역에서 의미 있는 거점에 있는 것으로도 옛 성산교회 건물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좀 더 범위를 넓게 설정해 상상하면 다양한 쓰임이 가능하다. 공원 지역이 지닌 역사성을 고려하면 이 건물 안에 근대 역사 아카이브 시설을 넣는 것은 기본적으로 고려해 볼 만하다. 이 과정에서 현재 옛 충남도청에 설치해 둔 전시물을 옮겨 대전근현대사전시관을 재개관하는 것도 검토할 가치가 있다. 이를 결정한다면, 옛 충남도청 활용 방안을 계획할 때 상상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질 수 있다.
너른 마당처럼 펼쳐진 공원 안에 인근주민은 물론 대전시민, 외지 관광객까지 쉽게 접근하며 머물다 갈 공간을 상상하는 건 지루한 일이 아니다. 공공 용지 안에 남아 있는 건물을 두고 철거와 활용 결정을 번복하며 논란을 일으키는 현실도 분명 고무적이고 긍정적이다. 우리가 진지한 ‘고민과 사유’를 한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활용 방안을 결정하고 운영 주체를 선정하며, 리모델링을 진행하는 방식도 전통적 방식을 답습하지 말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겠다. 의외로, 이용객에게 기발한 영감을 줄 수 있는 리모델링 결과물을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에 뽑아낼 수도 있다. 
집단 숙의 방식과 리빙랩 방식 등 근래 등장한 방법론을 다양하게 변주해 적용하고 민간 전문가와 다른 측면에 상상이 가능한 예술가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유도 하면서, 과정 자체를 즐기며 우리 스스로 학습과 경험의 기회를 삼아 보는 것도 좋겠다.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글 사진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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