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7호] 곱게 나이 드는 마을

곱게

나이 드는

마을

 

대전여지도 130

대전 서구 용촌동 미리미마을

 

 


 

서당골, 원정역으로 넘어가는 서낭댕이 고개

 

1.
미리미에서 만난 주민은 마을을 길게 둘러싼 용이 그 머리를 갑천으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이 산 이름은 용산이다. 산은 높지 않다. 해발 133m 정도로 야트막하다. 대전시립박물관 지명 유래에는 마을 입구에 용머리를 닮은 바위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을 답사했을 때 용머리를 닮은 바위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산 끝자락, 용머리 부근에 큰 바위가 군락을 이루었으나 틈을 콘크리트로 메우고 제법 널찍한 광장을 만들었다. 온전히 본래 바위 형태를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용’ 이름을 가진 산과 바위 덕분에 ‘미리미’라는 마을 이름이 붙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미르’는 용을 뜻하는 우리 옛말이다. ‘미리’는 미르를 뜻하는 경상, 제주권 방언이라고 위 사전은 설명한다. 대전시립박물관 지명유래 편에는 ‘미림리’라고 부르던 것이 ‘미림니’로 변하고 다시 ‘미리미’로 변했다고 해설한다.
미리미는 대전 서구 용촌동에 속한다. 서구 기성동 흑석리 네거리를 지나 원정 방면으로 들어서면서 호남선 철도와 나란히 달리면 시누리 마을을 만난다. 그곳에서 갑천 쪽으로 들어서면 용촌교를 건너 미리미에 닿는다.

 

300년 넘은 느티나무와 팔각정

 

2.
바위가 군락을 이루는 용머리 부근에 300년을 넘겨 그곳에 뿌리내린 느티나무 네 그루가 자란다. 크기뿐만 아니라 멋진 수형은 널찍한 그늘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중 바위에 턱을 괴듯 자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유독 눈에 띈다. 수백 년간 이어온 치열함이 뚝뚝 떨어진다. 나무군락 그늘 아래로 팔각정을 세웠다. 넓게 펼쳐진 ‘연못들’에서 논일을 하고 갑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손발도 헹구고는 집에 들어서기 전, 쉬었다 가기 딱 좋은 위치다.
“맞아, 옛날에 그곳 정자 앞에 연못이 있었지. 없앤 지 한 30년 정도 되었을까? 경지정리하면서 없앴으니까. 그렇게 크지는 않았어. 팔각정은 마을 놀이터였지. 여름에도 거기 있으면 시원해. 마을에 할아버지들 많았을 때는 주로 거기서 놀았어. 매일 걸레질해서 아주 깨깠했어. 지금이야 거기서 놀 할아버지들이 없어서 예전만큼 관리를 안 하지. 그래도 외지에서 사람들이 와 가지고 앉았다 가곤 하더라고.”
마을 초입, 이종만(85) 씨 집 대문 앞에는 주민 몇이 모여 텃밭에서 뜯은 상추와 푸성귀를 손질하느라 여념이 없다. 점심 밥상에 오를 모양이다. 낯선 방문객에게 그늘 자리를 마련해 주면서도, 묻는 말에 일일이 답해 주면서도 손은 쉬지 않는다. 몸에 밴 바지런함이다. 주민 몇이 대문 앞을 차지한 바로 그 집 자리에 방앗간이 있었다고 한다. 아주 오래 전 얘기다. 집주인 이종만 씨는 ‘아마도 발동기로 돌리던 방앗간이었을 거’라 추정한다. 본인이 방앗간을 인수한 것은 아니고 이미 일반 주택으로 바뀐 뒤에 집을 사서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그곳에 방앗간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들었단다. 덕분에 미리미 안길은 도로명 변경 때 방앗간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늘 대전시장이 기성동에 온다는데, 그 LNG발전소인가, 뭔가, 못 한다는 거 같지? 그거 안하면 산업단지도 못 한다며? 그런 얘기가 있던데.”
마을 앞에 갑천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펼쳐진 연못들 중 일부를 일반산업단지 구역에 포함한다. 마을회관 앞에 붙은 ‘자연생태계 보존하고 주민공동체 보호하라’는 현수막을 보며 물으니, 주민 사이에 퍼진 정보를 일러 준다. 일반산업단지 예정 지역에 다양한 현수막이 걸렸지만 ‘주민공동체 보호하라’는 현수막은 특별했다. 갑천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넓고 예쁘게 퍼진 연못들은 주변 마을이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삶을 영위했던 공간이다. 그 공간 중 일부를 산업단지에 빼앗긴다면, 비록 마을은 편입하지 않아도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꾸짖음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3.
“이 앞길이 예전에는 사람이 많이 다니던 길이에요. 서낭댕이 넘어가면 원정역 있잖아요. 기차 타고 오가는 사람이 죄다 이 길로 다녔으니까. 북적북적했지요. 평촌 사람들도 우리 마을 앞을 지나서 원정역에 갔으니까요.”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미리미에서 서낭댕이 고개 하나만 깔딱 넘어가면 원정역에 닿는다. 물론 고개를 넘어서도 조금 더 걸어야 하지만, 원정역에 기차가 설 때는 그 정도 거리를 걷는 건 가뿐했다. 기차역에 오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면 ‘주막’도 있었을 법해 물었더니 역시 있었다.
미리미 안에도 막걸리 한 잔 정도는 마실 수 있는 조그만 가게가 있었고 그 전에는 지금 갑천을 가로질러 미리미로 들어오는 용촌교 부근에 제법 큰 주막이 있었단다. 두부를 안주로 만들어 막걸리와 같이 팔았다고 기억했다.
갑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많지만 이 용촌교는 미리미 마을로 들어서는 다리다. 마치, 해자를 두른 성에 설치한 다리마냥 묘한 느낌을 준다. 새로 만들기는 했지만 그곳에 늘 다리는 있었다. 이 용촌교를 지나 마을을 관통하는 길이 원정역으로 이어진다. 미리미 마을을 빠져나가는(혹은 들어서는) 길목에 서낭댕이라 부르는 야트막한 고개에는 서낭당도 있었다. 나무 옆에 돌무더기를 쌓아 올리고 나무에는 줄도 둘렀다. 전에는 마을에서 제도 올렸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나무만 남았다. 도로를 포장하면서 모두 치워 버렸다. 야트막한 서낭댕이 고갯길에서 키 큰 참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그 나무가 서낭나무지 싶다.
“고개 넘어가면 서당골이고 거기까지 미리미에 속하는데, 예전에는 넘어가는 길이 달랐다고 해요. 더 위쪽에 있었다고 하는데, 서낭댕이 길이 만들어지면서 어른들이 용 허리가 잘렸다고 하더라고요.”
서당골에는 서너 가구가 살았다. 지금은 한 가구만 남고 나머지 집은 비었다. 이름에서 말해 주듯 옛날 서당이 있던 곳이란다. 위치상 미리미 아이들은 물론이고 원정 아이들도 다녔을 법하다. 번잡스럽지 않아 글공부하기 적당한 곳이었겠다. 서당골 바로 옆으로는 호남선 기찻길이다. 간간히 기다란 기차가 특유의 쇳소리와 덜컥거리는 소리를 내며 지난다. 기찻길과 마을 사이에는 조붓한 도로 하나가 전부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로 시작하는 동요 때문인가, 이런 풍경은 늘 동화처럼 아늑하다. 찻길과는 다른 기찻길만이 지닌 감성이 분명히 있다.
미리미에서 서당골 앞을 지나 원정역으로 이어지는 길은 현재 확장 공사를 계획한다. 평촌동 큰길까지 넓혀서 붙일 모양이다. 측량이 한창이었다.
인근 마을에서 기차 타러 다니던 그 길을 자전거 동호회 한 무리가 복장을 갖춰 입고 쌩하니 내달린다.

 

미리미마을회관

 

4.
미리미 중심 도로 오른편으로 집 서너 채가 있고 왼편으로는 마을회관이 있다. 그 마을회관을 따라 산 쪽에 붙어 마을이 길게 이어진다. 용촌교를 건너며 생각했던 마을 규모보다 제법 크다. 전체적으로 대략 30호가 모여 산단다. 미리미 사람들은 산에 붙어 있는 곳을 웃말이라 불렀고 아래쪽은 아랫말이라 불렀다.
집이 오밀조밀 붙지 않고 곳곳에 제법 넓은 공간이 쉼표처럼 놓였다. 한때는 밭으로 일궜을 듯 보이는 공간이 지금은 바람과 햇볕이 모여 마냥 노닥거리는 공간으로 남았다. 쇠락이라기보다는 여유로 읽힌다. 과거 일소 두세 마리를 키웠을 외양간을 고스란히 남겨 둔 곳도 많았다. 대부분 약간 변형을 가해 창고로 사용한다. 전반적으로 집을 깨끗하게 관리했다. 매일 비질을 한 것이 분명한 정갈함이 인상적이다.
웃말 사람들은 마을 가운데 공동 우물을 함께 사용했다. 지금도 우물은 남았다. 웃말 중간 즈음이다. 둥근 원형 구조물을 지상 위로 1.5m가량 올려 세운 두레박 샘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관리는 여전히 깔끔하다. 그 우물 절반 즈음을 가로질러 구조물을 설치하고 문을 달았다. 괴짜 박사가 숨은 비밀 지하기지 입구처럼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물 주변 공간이 좁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주로 식수를 구했고 빨래 등은 지척에 있는 갑천에서 해결했다. 마을 주민이 모여 빨래하던 곳은 용촌에서 하류로 조금 더 내려가면 있는 ‘새들보’다. 지금은 그곳에서 빨래를 하지 않아 마을에서 새들보로 이어지는 조붓한 오솔길이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마을에서 최단 거리로 새들보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이 있었다.
“아이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처럼 고무장갑이 있기를 하나, 겨울에는 꽁꽁 언 강물에 둥그렇게 구멍을 뚫어서 거기에 빨래를 넣고 휘저었다니까. 손이 꽁꽁 얼어붙었지.”
태양 빛이 강렬함에도 그때 추위는 몸에 붙어 쉬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말끝에 몸을 움츠린다. 미리미 앞을 지나는 갑천은 꽁꽁 언 손을 호호 불어 가며 빨래하던 고된 기억도 담겼지만 아이들에게는 세상에 없는 물놀이터였고 다슬기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때처럼 물이 맑지 않다.
미리미 앞을 흐르는 갑천은 두계천으로 합류하기 전 본류다. 굽이굽이 흘러 오며 산줄기가 만들어 준 물길을 따라 굽이굽이 흘러 오는 갑천은 그 주변으로 비옥한 농지를 만들었다. 그중 미리미와 이웃한 정뱅이, 시누리 마을을 포함하는 용촌동 들은 제법 넓은 편이다. 산과 하천, 들판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그곳에 마을이 들어섰다. 너른 들녘을 지나 갑천을 건너면 굳건하게 자라는 느티나무와 팔각정이 있고 포근한 용산에 기대어 궁하지 않게 마을이 들어섰다. ‘자연스럽다’라는 말은 어쩌면 이런 마을 구성을 두고 이른 말인지도 모르겠다. 미리미는 오래 묵어 낡았지만 여전히 품격을 지닌 잘 지은 한옥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마을이 곱게 나이 들었다.

 


글 사진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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