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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7호] 천천히 그리고 건강하게
천천히
그리고 건강하게
㈜윙윙 이태호 대표
“꼭 어떤 단체나 기업에 소속되어 일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고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세상에 작은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략) 청년생태계를 만들고 싶어요. 청년들이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수익을 만들고, 그 수익이 또 다른 기회를 만드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생태계요.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대변하고 그 욕구를 품고 성장하고 그런 힘이 모여 조금씩 변화를 만드는 사회가 되었으면 해요.”
《월간 토마토》 2014. 12월호 〈함께 만드는 청년생태계_청년 이태호〉 중에서
청년생태계를 고민하고 꿈꾸던 청년은 지금까지 자신이 좋아하고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세상에 작은 변화를 주고 있다. 이것저것 재고 계산했다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답도 없이 시작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데…. 한순간에 결정한 일은 아니에요.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후에 벌집을 알고, 함께 여러 활동을 하면서 가랑비에 젖듯이 젖어 버린 거죠. 현실적인 문제만 생각했으면 아무것도 못 했을 거예요.”
과거를 회상하며 이태호 대표는 웃음을 터뜨린다.
일상의 변화, 세상의 미래
“벌집은 하나의 공동체예요. 벌집이라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 문화를 가지고 자원을 연결해서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게 윙윙이죠. 윙윙은 도시재생, 소셜디자인 등의 일을 하고 있어요. 지역에 청년이 정착하고, 청년 창업을 도와주는 게 청년고리고요. 내 꿈이 우리의 일이 되고, 세상의 미래가 되자는 게 벌집의 비전이에요. 개인의 성장과 일상의 변화, 세상의 미래까지 고민하는 시민들의 욕심 많은 공동체라고 할 수 있죠.”
유성구청에서 충남대학교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공유공간 벌집은 비영리 강연 TEDx대전 기획팀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건 2014년이다. 새롭게 단장한 공간을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함께 축하하는 오픈 파티를 연 지도 벌써 5년이 훌쩍 넘었다.
이 대표는 벌집에서 2013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행정학과를 다니며 여느 청년들처럼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주말에 활력을 찾기 위해 시작한 봉사는 지금까지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겁 없이 오래 있어서 그런 거죠. (웃음)”
대표를 맡은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가치를 함께 만들고 싶다는 욕심으로 계속 달려온 것 같아요. 사실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오만 생각을 다 했어요. 본질 그 자체만 보고 달리기엔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거든요. 다른 생각도 많이 했어요. 영상을 배워 볼까 생각도 하고, 코딩을 배워 볼까도 했죠. 결국에는 그게 본질은 아니더라고요. 평소 가지고 있던 고민이나 벌집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을 어느 정도 회사 형태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만들었고, 대표를 맡았죠.”
벌집이 가지고 있는 공동체적 방향성과 가치를 잃지 않을 것. 이 대표가 현재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노력하는 부분이다.
마을의 노력이 다시 마을로
벌집 활동 초기에는 벌집 문화와 주민들의 문화를 쉽게 결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주민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청년이 가지고 있는 문화에는 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했다. 처음에 주민들은 마을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을 의뭉스럽게 바라봤다. 오해도 많았다. 시간이 지나고 관계가 쌓이면서 마을 주민들은 청년들과 함께 마을의 가능성과 희망을 봤다.
이제는 자신들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한다. 올 신년에는 함께 떡국도 만들어 먹었다. 떡집에서는 떡을, 한식집에서는 고명을, 육수는 고깃집에서 손수 만들어 왔다. 각각의 가게에서 공수한 재료로 만든 떡국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자연스럽게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오는 추억이다.
“마을을 함께 가꾸고 노력하는 결실이 다시 마을로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은 탄탄한 공동체를 쌓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천천히 가고 싶어요. 하루아침에 이 동네가 바뀌기보다는 천천히 건강하게 성장해 나가는 마을이 되길 바라요. 동네가 소비해 버리고 마는 곳이 아니라 계속해서 가고 싶고, 시작하고 싶은 그런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동네였으면 좋겠어요.”
윙윙은 지난해부터 어은동 일대에서 ‘안녕 축제’를 진행했다. 윙윙에서 모집한 청년기획단과 마을 상인회가 함께하는 안녕 축제는 그야말로 마을 축제이다. 작년에는 청년들이 축제를 준비하고 함께하길 요청했다면 올해는 주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상인회에서도 30팀이 참여했다. 청년들은 축제를 기획하고 상인들은 함께 나와 음식을 팔았다. 마을 시니어들은 공연도 진행했다. 안녕 축제는 다양한 주체들이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이 대표는 이야기한다.
“단순하게 며칠 즐기려고 축제를 만드는 건 아니에요. 축제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주민이 마을의 주체로 만들어지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안녕 축제를 설계했어요. 상인회도 원래 있었다가 없어졌는데 상인분들과 함께 다시 만들었어요. 이제는 저희가 함께하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면 나서서 바꾸려고 노력하고 계세요.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건 상인회가 상권의 이익만 고집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마을과 함께 성장하길 바라고 희망을 보고 있어요. 주체적으로 구청에 찾아가 필요한 부분을 요구하기도 해요.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이 대표가 마을을 돌아다닐 때마다 마을 주민 한 명, 한 명이 그를 붙잡곤 한다. 밥은 먹었는지부터 안부를 살뜰히 챙긴다. 그간의 노력이 가져다준 작은 변화들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처음에는 저 스스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어요. 지금은 활동하는 과정 안에서 사람이 바뀌고, 지역의 일상이 바뀌는 과정이 정말 좋아요. 일련의 과정들이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힘이었던 것 같고, 여전히 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함께 만드는 마을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 중 하나이다. 전국의 낙후 지역 500여 곳에 지원하는 이 사업은 면적 규모에 따라 우리동네살리기, 주거정비지원형, 일반근린형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추진한다.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사업 첫 해 시범사업지로 전국 68곳을 선정했다. 그중 하나가 대전시 유성구 어은동 일원이다. 윙윙 이태호 대표는 현재 어은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현장 지원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어은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어은동 일벌(Bee) Share Platform(이하 어은동 도시재생사업)’은 우리동네살리기 유형 중에서도 주거환경 개선과 공동체 활성화를 목표로 한 사업이에요. 저희는 벌집에서 사업 이전부터 동네 상인과 청년 중심으로 공동체 활성화 활동을 쭉 해 왔어요. 그간의 활동이 점수를 얻어서 좋은 결과로 이어졌죠.”
어은동 도시재생사업의 공유(Share)는 물리적인 공간과 공동체적인 연대를 의미한다. 외국인과 내국인, 공무원과 주민, 전문가, 노인과 어린이, 상인과 집주인, 자취 청년까지 다양한 마을 구성원 간의 공유 플랫폼을 만들고자 한다. 사업 내용은 상인들을 위한 상가개선사업, 교통안전 문제를 위한 가로개선 사업, 어린이 공원과 노인정 개선, 외국인을 위한 가로안내판 영문병기 개선(인터내셔널 존), 커뮤니티센터 건립, 유성구청 주차장 민관공유 활용 등이다.
“어은동 일대의 주요환경과 거점, 인프라를 개선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공동체들이 마을 주민으로 거듭나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그들을 사회적경제의 주체로 만드는 것이 어은동 도시재생 사업의 목표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사업 지역은 보통 총괄 코디네이터와 현장지원센터장이 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저희는 총괄 코디는 충남대학교 이정수 교수님이 맡고, 제가 현장지원센터장을 맡고 있어요. 총괄 코디님이 사업의 전체 큰 틀을 담당하고 있고, 현장지원센터는 주민 만남, 주민 공동체 역량 강화, 공동체 활성화 활동 등을 맡죠.”
도시재생 사업을 주민의 욕구에 맞게 진행할 수 있게끔 주민과 전문가, 행정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어은동 현장지원센터의 역할이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궁극적 목표는 사업이 끝나고도 주민 스스로 마을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에 있다.
작년에는 주민들이 ‘도시재생’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을 진행했다. 올 상반기까지는 어은동 마을주민 총회를 개최해 개별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공동체를 발굴하는 일을 진행했다.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물리적인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며 사업 기간은 2020년 말까지다.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계속해서 진행하면서 전문성을 쌓아 가고 싶어요. 이 과정을 건강하게 해 나가기 위해서 지역에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드는 비즈니스 모델도 개발할 예정이에요. 지역 안에서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지역 자산화와 같은 토대를 만드는 일도 고민하고 있어요. 궁극적으로는 도시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 자체를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방향성이고 과제라고 생각해요.”
글 사진 이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