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6호] 산책 그루밍

산책

그루밍

 

일상르포

   


 

 

내가 키우는 고양이의 이름은 ‘호랑이’이다. 6~7개월 무렵에 우리 집에 왔으며 두 달을 함께 살았다. 수놈이며 길에서 태어나 살다, 4개월 될 무렵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 왼쪽 귀 끝이 살짝 잘려 나갔다. 오른쪽 귀의 날렵한 끄트머리와 그 끝에 살짝 돋아난 긴 털이 아름답기에 왼쪽 귀를 보면 안타까운 맘이 든다. 온몸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코리안 숏헤어 고양이다. 머리가 작고 팔다리가 길다. 
고양이가 생긴 후로 더 자주 소파에 눕는다. 운이 좋으면 고양이가 내 곁으로 온다. 네 발로 배를 꾹꾹 밟고 올라와, 내 배나 가슴에 편안하게 앉는다. 고양이의 몸은 따뜻하다. 가만히 심장박동이 느껴진다. 털은 부드럽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는 고양이는 너무도 귀엽다. 만족감이 온몸에 번진다. 초조함이 가라앉고, 고양이가 지닌 느긋함이 내 몸으로도 옮겨 온다. 그러다가 또 고양이는 그루밍을 한다. 내 얼굴을 그루밍할 때도 있다. 까슬까슬한 혓바닥이 얼굴을 스치면 사포를 문지르는 듯 따갑다. 이런 순간이면 고양이가 나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녀석은 푹신하고 따뜻한 소파 정도로 생각하고 내 품에 안겨 자는지도 모르지만. 고양이들이 서로 몸을 기대고 잠들 듯이 우리 고양이도 나를 큰 고양이로 여기고 몸을 붙이고 잠들거나, 그루밍을 해 주는지도 모른다.
우리 고양이를 품에 안아 본 적은 딱 한 번이다. 처음 집에 왔을 때 잔뜩 겁에 질린 녀석은 이전 주인의 손에서 내 품으로 옮겨져 가만히 있었으나, 그 후로 성공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누워 있는 내게 녀석이 기대는 순간, 친밀감이 치솟는다. 그동안의 데면데면함이 눈 녹듯이 사라지며…. 
호랑이는 부지런히 자기 몸을 그루밍한다. 고양이니까. 골똘히 집중해서. 마치 이 세상에 혀와 털만 있는 듯이. 그 모습은 경건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지켜보고 있노라면 절대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기분이 든다.
토요일 늦은 시간까지 드라마 등의 조각 동영상을 무한히 시청하다가 늦게 잠들고, 일요일 아침 멍하게 일어나 점심 먹고 잠깐 호랑이와 함께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니 좌표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뭘 해야 하지? 주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밖은 흐렸다. 비는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내리는 중이었다. 대충 껴입고 밖으로 나섰다. 동네 천변까지 걸었다. 숲이 우거진 길가에 오동꽃이 떨어져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꽃송이를 들었다. 원통형 꽃은 주머니처럼 생겼다. 연보라 빛 꽃 한쪽에 검은 점선 무늬와 노란 얼룩이 있다. 꽃술이 노랗다. 향을 맡으니 달콤하며 매운 내가 난다. 고개를 드니 저 아득히 높은 곳에 오동나무 꽃이 피었다.    
저 높이 높은 데서 피어 있다가 떨어졌다. 아주 높은 곳에서 피었다가 떨어졌다. 
바닥에 오동꽃 하늘에 오동꽃. 
오동꽃을 주워, 고개를 들고 오동나무 높은 가지 연보라 빛으로 어른어른 피어 있는 꽃을 보았을 뿐인데, 이런 게 그루밍이지 싶다. 다섯 시간 동영상 시청으로는 말끔해지지 않던 마음이 닦여 나가는.

 


글 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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