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146호] 지역 연극 생태계를 건강하게
지역 연극 생태계를
건강하게
대전시립극단
“대전의 시립예술단체 관련 조례를 상세하게 분석해보고 만약 필요하다면 시립극단 관련 특례조항을 신설하더라도 대승적인 의미에서 서로 양보하고 궁극적인 문제점을 고치고 시작한다면 더 큰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중략) 지혜로운 대전연극동지여러분, 소중한 기회를 개개인 사사로운 이익을 좇다 놓치지 마시고 모두 한마음으로 뜻을 모았다면 모두 한마음으로 서로를 위해 기회를 나누시길 기원합니다.”
대전시립극단 설립 공청회에서 발표를 맡은 원광현 한국연극협회 광주광역시 지회장의 발표문 일부이다.
올해 3월 대전시립극단 창단을 위한 연극인 토론회가 열렸다. 대전시립극단 설립을 위한 공론화 준비위원회(이하 시립극단추진TF)는 시립극단의 필요성을 주제로 연극인들과 토론을 진행했다. 대전시립극단의 설립 취지와 현안, 운영 방식 등에 의견을 내는 방식으로 토론회를 진행했다. 시립극단의 설립 필요성에 대한 의견은 일치했지만,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토론회 이후 지난 5월 10일 국·공립극단 설립과 관련한 발전적 운영방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는 발표와 질의응답·토론 순으로 진행했다.
대전의 현재를 고려한 운영방식이 필요하다
광주시립극단은 1988년 해체한 이후 2012년 다시 창단했다. 원광현 지회장은 광주시립극단의 지난 8년을 이야기하며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함을 강조했다. 상임단원제이든 작품중심제이든 연극계의 내부분열과 진통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갈등 국면으로 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광주시립극단이 겪은 그간의 진통에서 오는 조언이었다.
지민주 국립극단 공연기획팀장은 현재 국립극단 운영방식인 시즌단원제를 소개했다. 시즌단원이란 일정기간 극단이 제작하는 공연에 출연하는 배우를 말한다. 시즌단원은 매년 선발하며 1년간 비상근 단원으로 활동한다. 세 편 이상의 국립극단 제작 공연에 참여하며, 국립극단의 공연 및 연습에 지장이 가지 않는 조건에서 외부활동이 가능하다.
작품중심제, 단원중심제, 시즌단원제까지 시립극단 운영방식은 다양하다. 여러 가지 모델 가운데 어떤 방식을 선택해서 진행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복영한 대전연극협회장은 “현재 대전 연극인들은 작품중심제를 좀 더 선호하는 상황”이라고 말하며, “시립극단추진TF는 공청회 결과보고서를 작성해 시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현재 시립극단추진TF는 해체한 상황입니다. 이후 공청회 혹은 추진위원회 구성 등은 이제 대전시에서 진행할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공청회 이후 시립극단 설립에 관한 지역 연극계의 목소리는 하나로 좁혀지지 않는 분위기다. 시립극단 운영방식을 두고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연극인은 “대전시립극단이 설립했을 때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형평성이에요. 과연 대전연극 발전을 위한 방향으로 운영할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죠. 극단 입장에서도 시립극단이 생기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즐거운 일일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어요. 사실 당장 시립극단이 생기면 극단 젊은 배우들은 다 시립극단을 가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시립극단이 생겼을 때 시립극단은 물론이고 지역극단, 대전연극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라고 이야기했다.
지역 연극계가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립극단이 등장하는 것이 각 극단 대표들에게는 반가우면서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어떤 운영방식을 채택하건 간에 서로 간의 원만한 합의와 양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복영한 회장은 “15년 전만 해도 배우가 극단에 속해 있는 극단중심주의가 강했습니다. 현재는 프로덕션 개념을 도입하면서 대부분의 배우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시스템도 많이 변했습니다. 시립극단과 지역 극단들이 공존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명확한 그림을 그려야 할 때
대전연극인들이 시립극단을 향해 보내는 우려의 시선이 이해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다. 지난 4월 열린 제28회 대전연극제는 대전연극계의 현재를 여실히 보여줬다.
올해 대전연극제는 단 두 개의 극단만이 출전했다. 개막 전부터 경연을 위한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서 잡음은 끝나지 않았다. 복영한 회장이 연출을 맡은 작품이 대상을 받으면서 심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대전연극제에 단 두 개의 극단만 출품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 이면에는 비용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연극계에서는 분석한다. 대개 하나의 작품을 올리기 위해서는 수백만 원부터 수천만 원에 이르기까지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복영환 회장은 “대전연극제의 경우 예선전만 출전해도 3천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는데 시에서 편성한 지원 예산이 크지 않다”라며 “연극제 출전을 위해 천만 원 이상의 비용을 자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참여가 저조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대전은 ‘제1회 대한민국 연극제’와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대전연극이 가지고 있는 힘을 보여줬다. 하지만 대전연극계는 연극제에 출품을 망설일 정도로 상황이 녹록지 않다. 그간 지역 연극계에는 ‘연극전용소극장지원사업’ 등을 통해 적지 않은 공적자금을 투여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지원 정책이 연극 전체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데 어떤 기여를 했는지 꼼꼼하게 점검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런 현상과 문제인식 속에서 시립극단 설립을 검토해야 한다. 대전시뿐만 아니라 지역 연극계가 지난 10년을 점검, 평가하면서 지역 연극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는데 시립 극단이 어떤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명확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 지역 연극계에 끊이지 않는 소란스러움에 ‘시립극단 창단’이 기름을 붓는 격일 수도 있다는 우려를 연극계 안팎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