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8호] 잊혀져 버릴 풍경을 마주하는 마음

잊혀져 버릴 풍경을

마주하는 마음

 

보문맨션

 

 

지금이야 보문산을 등산 목적으로 가지만, 과거에는 대전의 명물로 꼽히는 것이 많았다. 1965년 공원으로 지정하면서 1968년 설치한 대전 최초의 케이블카와 1987년에 개장한 놀이공원 그린랜드가 있어 많은 사람이 보문산을 찾았다. 1976년 보문산 입구에 10층 규모로 아파트 두 개 동이 들어서며, 대전 고층 아파트 시대를 연 보문맨션도 보문산을 명물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주말, 소풍 시즌만 되면 보문산과 그 주변으로 사람이 넘쳤다고 한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케이블카와 그린랜드 안 놀이기구는 움직임을 멈췄다. 모두 시대의 뒤편으로 사라져 추억으로 남았다. 현재 보문산 랜드마크와도 같은 보문맨션도 곧 있으면 추억으로 남겨야 할 상황에 놓였다. 보문맨션은 현재 재개발이 확정된 대사동 1구역에 포함되어 공원으로 바뀔 예정이다.

 


 

 

1. 
보문맨션은 언뜻 보면 건물 한 채인 것 같아 보이지만, 뒤편으로 돌아가 보면 아파트 두 동이 맞닿아 있는 재밌는 형태다. 지금 보면 그저 낡고 오래된 아파트에 불과하지만, 보문맨션은 대전 최초의 고층 아파트로, 생긴 당시만 해도 사람들의 엄청난 구경거리였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인구 밀집으로,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은 것이 아파트다. 모두가 땅에 발붙이고 살던 시절에 5층 이상의 건물에서 산다는 건 상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한 지붕 아래 같이 산다는 것도 묘한 감정을 일으키는 풍경이었을 게다. 
보문산공원 오거리, 보문맨션 반대편 횡단보도에 서서 아파트를 올려다봤다. 글자가 적힌 위쪽 벽면만 유난히 낡았다. 밑 부분은 여러 번 칠하고 위는 제대로 칠하지 못한 건지 군데군데 벗겨졌다.
아파트 벽면에 칠이 벗겨진 ‘보문맨션’이라는 네 글자만으로 세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맨션은 본래 큰 저택을 뜻하는 영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민간 아파트 건설업자들이 공동주택에 호화스러운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도록 사용했다고 한다. 요즘은 ’캐슬’, ‘골드’와 같은 단어를 쓰듯이 그 당시에는 맨션이라는 단어가 최고급을 나타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아파트 형태가 조금 더 변화하면서 맨션과 아파트를 분리해 사용했고, 지금은 맨션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보문맨션을 바라봤다. V자 형태의 독특한 건물 구조가 사이좋게 손깍지를 낀 듯 다정하다. 구조가 독특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원래 보문맨션 자리에는 영광연탄공장이 있었다. 중부대학교 박홍식 교수와 함께 보문맨션을 설계한 새건축 건축사무소 김종민 소장의 선친이 경영하던 공장이었고, 김 소장은 본래 연탄공장 터 형태를 그대로 살려 아파트를 지었다.(잇츠대전 2014년 6월호_유병우 글 참고)
이곳 풍경은 유난히 정겹다. 건물 곳곳에 주민의 흔적이 묻어 있어 그런 것 같다. 누군가 내어놓은 장독, 화분, 복도에 널어놓은 이불을 보며 사람 사는 냄새를 맡는다. 아파트 건물과 주차장 그 틈새에 자기 공간을 만들며 기울어 자란 나무는 보문맨션 구조만큼이나 독특하다.  

 

탁구장 문은 닫혀 있었다

 

2.
보문맨션 안에는 상가가 총 네 곳이다. 네 곳 모두 꽤 긴 시간 보문맨션에서 영업했다. 보문탁구장, 보문합기도, 보문한우축산, 최근 슈퍼에서 바뀐 편의점까지. 오랜 시간 보문맨션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보문맨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오랫동안 보문맨션 안에서 운영한 보문탁구장을 찾았다. 하지만 탁구장 문은 닫혀 있었고, 주인장은 번호가 적힌 종이만 붙여 놓고 보이지 않았다. 찾는 손님이 없어, 전화가 오면 그때그때 문을 열어 주는 듯하다. 탁구장을 뒤로 한 채 바로 옆 정육점으로 향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우영철 씨는 보문맨션과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33년째다. 그의 지인이 운영하던 공간을 내어 줘 보문맨션에 정육점을 차렸다. 중간에 다른 업종으로 눈을 돌려 6년간 자리를 비웠던 적은 있지만, 다시 돌아와 자리를 지켰다.
지금이야 동네 장사로 먹고살지만,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이야기를 전하는 우영철 씨는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기만 하다. 
우영철 씨에게 보문맨션은 일터이자, 어릴 적 친형님이 일하던 연탄공장이 떠오르는 곳이다. 가난하던 시절, 형님이 연탄공장에 들어가 일을 했고, 어린 우영철 씨는 종종 형님을 보러 공장에 놀러 갔다. 
“재개발한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조금 그렇더라고요. 아쉽죠, 나이도 많이 먹어서 이제 갈 곳도 없어요. 이 나이에 내가 어디 가서 새로 가게를 열겠어. 집도 이쪽 근방이고, 주변에 아는 사람도 많아서 장사하기도 좋았는데. 산도 가깝고 근처에 수영장도 있어서 여기 생활이 얼마나 편했다고요.”
우영철 씨는 긴 시간 함께한 보문맨션이 사라지는 것이 마냥 아쉽다. 공간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 없고, 아파트 주민들과도 오랜 시간 알고 지냈으니, 이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먹먹하기만 하다. 30년 넘게 정들인 곳을 떠나보내는 일은 고향을 떠나는 일만큼이나 무겁다.
정육점 옆에서 합기도장을 운영하는 이연우 씨도 마찬가지다. 젊은 날, 친구의 권유로 보문맨션에 터를 잡아 20년 동안 도장을 운영해 왔다. 한자리에서 내리 도장을 운영하며 기억에 남는 일도, 사람도 많았다. 
“여기가 지금은 개별난방이지만, 옛날에는 중앙난방이었거든요. 그때 도장 바로 옆에 아파트 보일러실이 있었는데, 한번은 관리 아저씨가 밤에 온도를 올려놓고 그대로 잠이 들어 수도가 터진 적이 있었어요. 아침에 도장 문을 열려고 봤더니 물이 흐르고 김이 모락모락 나서 등골이 오싹했어요. 그때 도장 안에 가득 찬 물을 주변 사람 몇몇하고 퍼내느라 며칠을 고생했죠.” 
이연우 씨는 도장을 운영하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보문맨션에 5년 정도 살기도 했다. 한밭야구장과 가까워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놀러 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영향 때문인지 이연우 씨의 아들은 매일 같이 야구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여기가 놀이터가 없잖아요. 지금 주차장 있는 곳이 원래는 그냥 흙밭이었는데, 거기서 그렇게 공을 던지며 놀았어요. 수업 시작해야 하는데 애들이 안 와서 찾으러 가 보면, 항상 아들놈이 수업 가는 애들 붙잡고 야구를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야구를 좋아하더니 지금은 프로 진출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보문맨션에 살던 그 5년이 아이한테는 꿈을 심어 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연우 씨에게 이곳은 노후를 보낼 평생의 안식처와 같다. 
“3년 정도 있으면 개발에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집주인들이야 보상이 있어서 좋겠지만, 우리처럼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막막하죠. 저는 이곳에서 노후까지 보내려고 마음먹었는데, 재개발이 된다고 하니까 아쉬워요. 여기가 다른 동네에 비해 순박한 느낌이 있어서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개발이 돼도 이 근처에 다시 합기도장을 차리려고요.”

 

V자 형태의 독특한 건물 구조가 사이좋게 손깍지를 낀듯 다정하다

 

나동 복도에 서면 보문산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3. 
저녁때가 되니 주민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왔다. 보문맨션 앞을 한참 서성이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보문맨션에 들어온 지 13년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부사동 단독주택에 세 들어 살다 내 집이 갖고 싶어 이사 왔다고 했다. 평생 처음 얻은 ‘집’이었지만, 재개발로 인해 떠나야 할 상황에 놓였다.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낡긴 했어도 내 집이라는 생각에 마음만은 부자 같았죠. 근데 이제 나가야 하잖아요. 말로 표현 못하게 아쉬운 거죠.”
아주머니와 이야기 하던 중, 외출 갔다 돌아온 노부부도 대화에 참여했다. 두 사람은 1998년, 자녀들이 학교 다닐 때 이곳에 들어와 아이들을 다 키워 냈다. 지금은 두 사람만 남아 단란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할아버지는 “여기 처음 생겼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나 몰라. 다들 아파트라는 게 어떻게 생겼나 보려고들 기웃거리고 했다고” 말하며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기가 대전에서 아파트라는 이름도 못 들어 봤을 때 처음 생긴 거예요. 처음 분양 신청할 때 판검사같이 좋은 직업 가진 사람들이 앞다퉈서 신청했지. 그때만 해도 부자들이 살던 곳이야.”
이것저것 더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손사래를 치며 자신들보다 더 오래 산 사람을 추천해 줬다. 두 사람이 알려 준 집 앞으로 갔지만, 집 안에 아무도 없는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건물 내부를 돌아봤다. 사람들이 수없이 만져 반질거리는 나무 손잡이를 잡고 한 층씩 계단을 올랐다. 내부에는 외관보다 더 많은 시간의 흔적이 곳곳에 놓여 있다. 계단 중간 즈음에 붙은 층 안내판, 계단 바로 옆 벽면에 남색 페인트로 칠해 둔 층수, 전자식 계량기함과 그 앞에 다닥다닥 붙은 각종 업소 홍보용 스티커 등 오랜 흔적이 가득하다.
계단을 올라 로비에 서면 양옆으로 가동과 나동 입구가 나온다. 두 동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가동은 보문산공원 오거리와 그 너머 대흥동 일대가 보이고, 나동은 보문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문맨션의 복도는 시골풍경이 떠오른다. 양파를 널어놓기도 하고, 직접 키운 방울토마토 화분을 꺼내 놓기도 했다. 중간중간 문을 열어 둔 집도 있다. 시골 마을에서 대문을 열어 두듯이 서로에게 거리낌이 없다. 
종종 아파트 주민이 복도로 나와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한참을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먼 곳을 바라봤다. 그 주민들처럼 나동 복도에 서서 해지는 보문산 풍경을 바라봤다. 그저 눈으로만 이곳의 시간을 기억한다. 
현재 보문맨션을 포함한 대사동 1구역은 재개발 사업지로 2006년 주택개발 기본계획 수립 이후, 올해 3월 시공사가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재개발에 들어간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시공사인 GS건설은 오는 11월 정비계획 변경을 시작으로, 2021년 10월 철거 후 2022년 2월 착공 및 분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재개발 사업이 완료되면 대전광역시 중구 대사동 167-4번지 일대에는 지하 3층(데크층 포함)~지상 29층 규모의 아파트 12개 동, 부대 복리시설, 근린 생활시설이 신축될 예정이다. 보문맨션 자리에는 공원이 들어선다. 
단순하게 보면 그저 아파트 하나 없어지는 것이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 누군가 키우던 화분, 나무, 담벼락, 고양이, 이 모든 것이 더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찌릿하다. 눈에 익은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 풍경이 허물어지고 잊혀지는 건 한순간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이곳의 풍경을 마주할 기회가 없다.

 


글 사진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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