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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6호] 트랜스-리전, 지역과 탈지역의 경계에서
트랜스-리전,
지역과 탈지역의 경계에서
2019 고창한국지역도서전
모든 포럼과 세미나, 심포지엄 등은 왜 늘 시간에 쫓기는 걸까, 사회자가 다급하게 발제자와 토론자에게 시간을 재촉하는 풍경은 무척 흔하다. 고창한국지역도서전 마지막 지역출판포럼 ‘트랜스-리전, 지역과 탈지역의 경계에서’는 제목만큼이나 난해한 발표 내용이 부족한 시간 탓에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각 발제 내용을 연결하고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하기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지역출판연구자 정관성 씨는 ‘지역출판 콘텐츠와 지역출판산업’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정 연구자는 애매모호한 개념인 지역과 지역출판, 지역출판콘텐츠, 지역출판산업 등에 관한 개념 정리부터 시작했다. 콘텐츠라는 관점에서 지역출판을 바라볼 때 지역의 인문, 사회, 예술, 문화, 역사 등 소재를 대상으로 하거나, 지역 예술가, 문학가, 역사학자, 교육자 등 지역 소재자가 생산하거나 지역을 달리하지만 ‘해당 지역’을 다룬 콘텐츠를 한 범주로 묶어 냈다.
정 연구자는 현재 출판사 3,489개 중 서울 경기에 75.3%인 2,627개가 집중해 있음을 거론하며 ‘문화적 재분배’라는 측면에서 지역출판 진흥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자는 “2019년 출판진흥 예산은 전년대비 20% 감소한 234억 원이었고 이 중 지역출판지원은 1억 8천만 원에 불과했다”라며 “전년대비 151% 증가한 가상현실콘텐츠 예산 261억 원, 43% 증가한 음악산업 예산 169억 원, 67% 증가한 만화산업 예산 210억 원과 비교할 때 정책적 지원이 부족하다”라고 분석했다.
정 연구자는 수요창출에 중심을 둔 기획과 지역출판산업 각 영역에서 자생력을 확보할 때까지 일정한 지원이 필요하며 출판콘텐츠를 교육과 행사, 관광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마케팅지원이 필요하다고 마무리했다.
문화연구자이자 전 아시아문화전당 전문위원인 조전환 씨는 ‘영토적 경계를 넘어, 언매핑유라시아프로젝트와 지역’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그는 진행 중인 언매핑유라시아프로젝트와 고창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특성에 관해 소개했다. 언매핑유라시아프로젝트는 지난해 6월 2일 아테네 심포지엄에서 최빛나, 유미, 니콜라이 스미노프, 김성환 등 예술가와 문화기획자가 만나 시작한 프로젝트다.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에 ‘언매핑’이라는 낱말을 붙인 것은 일종의 ‘경계 허물기’로 해석할 수 있었다. 조전환 연구자가 “권력의 지도는 땅을 파고, 갈라오고 막아 왔다. 또한 경계와 경계를 가로지르는 자유는 권력에, 자본에만 허하지 않았던가?”라고 말한 부분에서 이런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권력과 자본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지도를 다시 해체하고 자연으로서 땅(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적 상상력을 펼쳐 내는 작업은 다양한 예술 행위와 출판, 이동 등을 통해 구현해 낸다. 국가와 국가 간 정치권력이나 경제 권력이 만들어 낸 연결을 뛰어넘어, 이동을 통해 먼 과거 인류가 그랬던 것처럼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땅(지역)과 땅(지역)이 만나며 새로운 모색을 한다.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김남수 강사는 ‘변주하는 출판, 사슴뿔도서관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김 강사는 사슴뿔도서관은 20세기 초, 독일에서 아비 바르부르크라는 강호인문학자가 신화학, 인류학, 문학, 철학, 미술사, 과학 등등 분과학문을 최대한 교차시켜 만든 새로운 형태의 도서관이라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문을 열어 “도서관을 낳는 도서관”이라는 테마로 ‘문화편집자 양성’ 등의 프로그램을 펼쳤다. 김 강사는 짧은 시간 빠른 어조로 다양한 동서양 지성에 관한 정보를 쏟아냈다. 귀에 박힌 낱말은 ‘지(知)의 편집공학’과 ‘약장의 결합술’이었다. ‘편집과 결합’은 사슴뿔도서관이 책을 상대하는 이념으로 독서(讀書)가 아니라 용서(用書)라고 주장하는 데서 그 의미를 반추해 볼 수 있다. 조용히 소설책 읽듯 300페이지 분량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히 읽어가는 행위보다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과감히 찢어 낼 수 있는 아이의 마음이 용서(用書)의 핵심이다.
김 강사는 “지금은 신자유주의라는 ‘악마의 맷돌’이 인간을 콩처럼 넣어서 두유로 갈아 버리는 자본주의 체제이다”라며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이어 “상상력에게 권력을!”이라는 표어를 던진 적도 있음을 상기시켰다. ‘사슴뿔’이 지닌 상징성은 확장과 연결이다. ‘변주하는 출판’이라는 발제 제목이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출판 영역’이 지금 인류에게 던질 수 있는 새로운 변주는, 힘을 잃어버린 ‘상상력’에 다시 권력을 쥐여 줄 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상상력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은 ‘존재하는 지식의 편집’이다.
각기 다른 주제로 들렸던 세 발제 내용은 모든 발표가 끝난 후 ‘사슴뿔’혹은 ‘시냅스’처럼 얽힐 여지를 남겨 두었다.
글 이용원 사진 이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