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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6호] 지역에 살다, 책에 산다
지역에 살다,
책에 산다
2019 고창한국지역도서전
“기록은, 우리가 존재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의무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일입니다. (중략) 책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알려 주는 나침반입니다. 과거로부터 우리가 그러했듯 우리는 책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어가야 할 미래를 상상합니다.”
맑은 고창 하늘에 울려 퍼진 ‘고창선언’ 중 일부다. 고창선언을 발표한 5월 11일은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이었고, 장소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태어난 고창이었다.
지역 콘텐츠를 찾아 기록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전국 출판인과 관련 학자, 관계자 등이 9일부터 나흘간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한국지역도서전’이었다. “지역에 살다, 책에 산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열린 ‘2019 고창한국지역도서전’은 한국지역출판연대(대표 신중현)와 전라북도 고창군(군수 유기상)이 주최하고 고창한국지역도서전조직위원회와 책마을해리가 주관했다.
나흘간의 고창한국지역도서전을 마무리한 후 이대건(책마을해리 촌장) 집행위원장은 “이야기가 피고 지었던 마을, 도서전이 열리는 작은 마을 단위부터 지역출판생태계를 차근차근 더듬어, 살고 살리는 지역출판의 살림살이, 지역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짚어 보았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서해안 작은 바닷가 마을에 있는 ‘책마을해리’는 이대건 촌장과 이영남 관장이 작은 폐교를 인수해 ‘책마을’로 만들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간이다. 한때는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했을 운동장에 책 전시 부스와 판매 부스 등을 설치했다. 운동장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책마을해리가 있는 라성리 마을 고샅에도 책 전시대를 마련해 지역도서전을 마을 전체로 확장했다. 모내기를 앞둔 논을 배경으로 선 지역책 전시대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과거 학교에는 으레 있었던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전시 부스를 설치했다. 경기, 강원, 경상, 전라, 충청, 제주 등 지역으로 나눠 각 지역에서 출판한 책과 잡지를 전시했다. 공동 판매 부스에서는 각 출판사가 엄선해 가져온 지역책을 진열하고 공동으로 판매했다. 심포지엄과 포럼, 특강, 저자와의 만남,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쳤다. 인문도시를 표방한 고창 곳곳을 돌아보는 투어버스와 갯벌에서 펼쳐진 영화제는 특별했다.
2018년 서울과 파주를 제외한 지역에서 출간한 책 중 공모와 심사를 거쳐 선정한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 시상식도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했다. 차기 개최지 협약식에는 전년도 개최지인 수원시 염태영 시장과 올해 개최지 고창군 유기상 군수, 2020년 개최지로 선정한 대구광역시 수성구 김대권 구청장이 자리를 함께해 지역도서전이 지닌 의미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염태영 수원시장은 인문학 도시 수원이 중점 시책으로 추진하는 ‘기록작업’을 ‘수원 화성성역의궤’에 빗대어 설명하며 지역을 기록하는 지역출판이 지닌 중요성을 역설했다.
고창군과 공동으로 행사를 주최한 한국지역출판연대는 서울과 파주출판단지를 제외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출판인과 관련 학자, 지역출판을 응원하는 독자 등이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는 단체다. 2016년 서울과 가장 먼 지역 제주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다음 해 첫 한국지역도서전 역시 제주에서 개최했다. 창립총회와 첫 지역도서전을 개최한 제주는 ‘지역’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글 이용원 사진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