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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7호] 어떤 마음이 도서관을 지을까
어떤 마음이
도서관을 지을까
구산동도서관마을
“오시는 길은 어렵지 않으셨나요?”
주택가를 누벼 도착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주택에 둘러싸여 그 속에 자연스레 안착했다. 외지인은 일부러 찾아야 올 수 있을 공간이다. 로비는 작다.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은 작은 공간,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모습이 이용자를 반긴다. 잘 관리된 장소에서 지속적인 손길을 느낀다.
도서관 내부엔 볕이 잘 들어온다. 구조 때문인지 그 속의 사람 때문인지 구립도서관 특유의 칙칙함이 없다. 로비 오른편에 공중전화박스와 함께 작은 마을 광장이 있다. 그곳의 오른편, 조각난 창문 새로 비치는 햇살 아래 책 읽는 이들이 있다. 사람 냄새가 난다.
주민들의 도서관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서울 은평구에서 설립한 구립도서관이다. 은평구립도서관이 2001년 개관한 후 크고 작은 도서관들이 뒤이어 개관했다. 그럼에도 도서관에 대한 시민의 욕구는 굉장히 높은 편이어서 이용하기 가까운 곳에 좋은 도서관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구산동도서관마을 건립으로 이어졌다.
구산동 주민들은 도서관에 가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컸다. 마침 2002년 동사무소 리모델링이 예정되어 있어 주민들의 요청에 작은도서관을 마련했다. 이 작은도서관이 구산동도서관마을의 모태로, 겨우 마련한 동사무소 한 켠의 셋방이었다. 작은도서관은 정규 운영인력이 없어 주민의 봉사로 유지했다. 근처 도서관이 없어 갈증을 느끼던 많은 이가 작은도서관을 금세 꽉 채웠다.
공간이 이용자에 비해 턱없이 좁았고,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치면서 더 나은 공간 마련을 위한 여러 방법을 강구했다. 그렇게 2005년 동사무소 옆 오래된 파출소 건물이 꿈나무 어린이도서관이 됐다. 오픈과 동시에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2006년, 좋은 도서관을 만들기 위한 서명 운동을 했다. 이후로도 여러 번 시도했고 엎어지기도 했다.
은평구청은 2009년 재정적 여유가 생겨 공공부지로 주택 여덟 채를 매입했다. 더 이상의 예산이 없어 묵혀둔 상태로 있다가 2010년도, 구청장이 바뀌면서 구청에서 주민참여예산으로 도서관을 짓자는 의견을 냈다.
2014년 4월 10일, 주민이 노력하고 구청이 힘을 실어 주민참여예산을 따냈다. 연속 3년에 걸쳐 총 35억 원을 받았고, 지역 정치권과 구청이 보태어 총 65억 원을 모았다. 도서관 건립에는 부족한 예산이기도 했고 이야기도 담고자 전부 밀고 다시 올리는 획일화된 방식이 아닌 옛것을 최대한 살리는 리모델링 형식을 택했다. 매입 건물 중 오래된 건물은 허물고, 90년대에 지은 건물은 살렸다. 리모델링에는 오래된 연립 주택 세 채와 기와집 한 채를 사용했다. 총 55개 방으로 구성되어 각 공간마다 책이 옹골차게 들어갔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건립 과정에서 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의견을 냈다. 주민 덕에 만화실이 생겼고, 청소년실이 생겼고, 마을자료실이 생겼다. 모든 건 10여 년에 걸친 주민의 노력과 시기적절한 제도적 보장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일이다.
도서관을 짓고 나서도 주민에게 운영을 맡기자는 의견이 나왔다. 기존 공공도서관과 다르게 운영하기로 결정하고 시민이 모여 은평도서관마을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에서 도서관을 위탁 운영하는 형태다.
작고 구석진 곳이어도 손길이 닿아 꾸며졌다
주민이 원하는 주민의 공간
“도서관 명칭이 구산동도서관마을이다 보니 민간 주도라 오해하는 분이 많아요. 도서관마을은 구립도서관으로, 모든 운영은 구비 예산으로 이루어집니다. 도서관 조합원으로 가입하지 않아도 구청에서 시민 모두에게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하니 조합원 수는 적어요. 협동조합을 꾸릴 때 지역이 오랜 시간을 쏟아 만든 게 아니라 도서관 위탁을 받기 위해 다소 급하게 만들어졌지요.”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의 신남희 관장을 만났다.
조합에 소속된 기관도 생태보전, 어머니들의 일 공동체, 어린이책 연구 등 사실상 도서관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이 아니었다. 때문에 협동조합으로의 정체성보다는 도서관 위탁을 위한 조합의 성격이 강했다. 조합이 다소 급하게 만들어지다 보니 도서관에 대한 비전이나 협동조합에 대한 비전이 통일되어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운영 인력도 독특하게 꾸려졌다. 도서관 건립에 참여한 단체 추천인이 절반 정도, 또 절반은 공채인데, 기간제 직원 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마을 주민이다. 신 관장이 이 도서관에 왔을 때는 60퍼센트 정도가 마을에서 추천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마을활동가인 주민이 도서관 직원이기에 마을과 도서관에 대한 애착이 높다. 애착이 높은 것과는 별개로 숙련이 필요한 도서관 업무를 소화하기에 힘이 부치기도 했다.
“협동조합은 조합비로 운영되는데 조합비로는 최소한의 유지관리가 힘들어 도서관에서도 협동조합의 수익모델 창출을 위해 여러 시도를 했어요. 카페 운영, 책 수익, 굿즈 제작 등. 애매한 문제가 많아 실현하지 못했어요. SOC 사업 관련해서 회의를 나가면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사회적인 경제 조직이 위탁을 하게 되면 수익사업의 모델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모델 찾기가 어렵다고요. 아직까지 현행법 제도와 도서관 사회적협동조합의 실정과는 안 맞는 부분이 있어 어려울 때가 많아요. 조합비를 몇 년 치 계속 낸다고 하면 부담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민관이 함께하는 새로운 모델로 어려운 점도 많다. “저희 구산동도서관마을에 대한 좋은 점을 말씀드리는 것도 좋지만, 다른 곳에서 시행착오를 많이 거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안 좋은 점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도 많아요.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해 생활SOC(생활 사회간접자본)사업의 모델이라 발표하시면서 전국적으로 방문이 더 늘었어요. 이전에는 건축에 관심을 보였다면 이제는 운영 모델이나 협동조합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계세요. 궁금해하는 분들에게 사실대로 말씀을 드리는 편이에요. 그래야 시행착오를 많이 거치지 않을 거니까요.” (*구산동도서관마을은 공공도서관으로 도서관사회적협동조합이 위탁운영하는 형태의 생활SOC(생활 사회간접자본) 사업의 대표적 사례이다. 생활SOC는 정부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마련한 도시의 기초 인프라와 문화, 체육 등 편의시설 등을 이른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세력은 조금이고, 기존의 관성으로 유지하는 세력은 많아요. 도서관을 만들 때는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세력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막상 만들고 나니 기존 도서관 운영 시스템 속에서 한 발짝도 자율성을 얻기가 힘들죠. 조합 쪽에서 보면 도서관은 구청에서 예산 받아 운영하는데 조합은 아무런 이점이 없어요. 그런 부분을 개선해달라고 각종 회의나 모임에 참여해 부지런히 말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 나아지겠죠.”
박학경 사서와 만화 문화재.
올해 1월 구산동도서관마을 이야기, 《날마다 도서관을 상상해》라는 만화책이 출간됐다.
책 안에 작은도서관에서 도서관마을이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담겼다
모두를 위한 도서관
작고 구석진 곳이어도 손길이 닿아 꾸며졌다. 오리고 붙여 만든 팻말들은 공간에 숨을 불어넣어 책 고르는 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도서관은 잘게 나뉘어 있어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하다. 공간 자체가 주는 따스함과 도서관 직원들의 마음을 더해 이용자에게 전한다.
사서의 큐레이션은 다른 도서관에서 보기 힘든 특별한 점이다. 각 공간을 맡은 사서들이 각자의 입맛대로 큐레이팅해 그 공간을 지킨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구획에 따라 각 사서의 성격이 보이는 것 같다. 사서들은 애정을 쏟은 만큼 그 공간을 잘 이용하길 바라기 때문인지 친절하고 환하다. 만화실을 잠깐 기웃거리다 가려는데 사서와 눈이 마주쳤다. 박학경 사서다. 인사를 나눈 후 만화실 안내를 받았다. 가려져 있어 많은 사람이 못 보고 간다는 귀한 만화책,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는 만화책 전시를 뒤늦게 확인하고 감탄했다. 천장에는 꼭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한다는 만화 작가의 작품을 전시했다. 만화실 사서로부터 마을자료실 사서의 안내로 3, 4층을 샅샅이 볼 수 있었다. 자기 공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오르내리는 계단 벽에는 도서관 건립 역사와 관련 자료를 전시한다.
퀄리티 좋은 프로그램과 행사를 기획한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공공도서관에 잘 가지 않는 젊은 직장인, 혼자 사는 이를 도서관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애쓴다. 신남희 관장은 “프로그램 끝나면 배웅하면서 살펴봐요. 낯선 분도 많고 젊은 분도 많이 와요. 공공도서관에 잘 안 오는 연령대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다른 도서관에서 주로 하는 프로그램과 다른, 차별화를 줄 수 있는 프로그램. 다른 도서관에서 갈증을 느끼는 분들이 해소할 수 있을 그런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 관장은 운영 프로그램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라 보였다.
실제로 여러 공모 사업을 통해 철학, 과학 등 인문사회과학을 망라한 다양한 기획 행사를 진행했으며, 영화 감독이나 배우, 문화평론가와 대화의 장도 열었다. 김혜진 작가와 정지돈 소설가 등 유명 작가들의 글쓰기 강좌와 은평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진을 전시한 <은평, 독립운동가 후손을 만나다> 등 의미 있는 전시도 진행했다. 은평구의 변화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는 작가와 함께 그림 전시와 은평구 그리기 프로그램을 진행한 점도 인상 깊다. 7월, 곧 진행되는 진중권의 미학강좌는 성황리에 조기 마감됐다. 책을 빌리고 읽는 일차원적인 공간에 그치는 게 아니라 문화복합공간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일방이던 구립도서관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이용자가 원하는 도서관을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것. 민관의 협치가 이루어져 마침내 도서관의 미래지향점이 될 모델이 만들어졌다. 아직 많은 시행착오가 예정되어 있지만 큰 발걸음을 내디뎠으니 이 도서관이 어떻게 더 성장할지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편안한 미소로 책을 고르고 읽는다. 건물 안을 비추던 햇빛이 물러갔다.
글 사진 김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