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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7호] 선화동은 '~리단길'로 옷을 바꿔 입는 중이다
선화동은
'~리단길'로 옷을 바꿔 입는 중이다
옛 충남도청을 빠져나와 한 블록 더 발걸음을 옮긴다. 길가에 나란히 심은 플라타너스는 바람에 살랑이고 그늘을 만들어 준다. 금요일 오후 거리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얼핏 보면 여느 조용한 주택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주택은 동네가 쌓아 올린 시간을 느끼게 한다. 단독 주택 사이에 드문드문 들어선 원룸형 다세대 주택을 보며 이곳 역시 시대 변화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안다. 다만, 그 시간이 유사한 다른 곳과 비교하면 그리 급격하게 흐르지는 않았다. 상업지역이 아닌 전형적인 주택지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이곳에 부는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거세지기 시작했다. 잠시 불다가 곧 잠잠해질 바람일지, 바람에 바람이 얹혀 거센 태풍으로 변할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분명한 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중앙로역 3번 출구 앞 교보생명빌딩 뒷길, 대한적십자사 대전세종지사부터 약 500m 남짓한 이 거리를 사람들은 ‘선화단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현실과 기대, 예측까지 다양한 감성이 담긴 이름이다.
옛 삶터가 상업공간으로 바뀐다
유난히 뜨거운 날이었다. 날씨 탓인지 금요일 오후임에도 거리는 한산하다. 이제는 운영하지 않는 치과는 간판을 아직 떼지 않았다. 문을 굳게 닫은 채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는 안내를 붙여 놓은 건물도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공간 안, 버려진 물건은 시간의 흐름을 대신 전한다.
건물을 허문 자리 위에는 신축 원룸 건물이 들어섰다.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이다. 신축 원룸은 높이가 낮은 건물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위용을 뽐내는 것처럼 보인다. 조용하고 한적한 이 동네에 지난해부터 카페와 작은 식당들이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최근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뉴트로 감성을 가진 가게들이다. 그야말로 힙하다.
언제부턴가 이 거리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새로운 감성을 찾는 사람들은 일부러 이 거리를 찾아왔다. 이제는 도로명 주소인 선화서로보다 선화단길이라는 이름이 더욱 친숙하게 느껴진다.
선화단길은 지자체나 단체가 의도해 조성한 것은 아니다. 낮은 임대료, 공간의 유니크함 등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이곳에서 가게를 열었고, 비슷한 분위기의 가게들이 새롭게 문을 열면서 사람들은 선화단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 선화단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제가 여기서 카페를 시작할 때는 상권이랄 게 없었어요. 오래된 주택에서 카페를 시작하고 싶어서 공간을 찾던 와중에 이 주택을 발견했어요. 할아버지께서 혼자 살고 계신 집이었는데 60년 정도 된 집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찾던 느낌의 공간이라 외관은 유지하고 내부만 리모델링해서 카페를 시작했어요. 공간을 잘 만들어 놓으면 활발한 상권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사람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죠.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선화단길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더라고요.”
선화단길에서 이제 1년 정도 카페를 운영한 한 상인은 오래된 주택이 주는 분위기에 반해 이곳에서 카페를 열었다.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가게 문을 연 지 1년이 지난 선화서로는 20~30대의 젊은 세대가 찾아오는 거리로 변화하는 중이다.
카페에서 만난 손님들은 공간이 가진 분위기에 먼저 감탄을 내비친다. “예쁘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이곳저곳 카메라를 들이대기 바쁘다.
선화단길 가게들 대부분은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구성했다. 낡은 주택 외관을 그대로 유지한 채 내부를 공사하고, 분위기를 살린 인테리어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평소 쉽게 볼 수 없는 높은 문턱이나 계단, 머리를 숙여야 통과할 수 있는 문 높이, 원룸과 아파트와는 사뭇 다른 구조에 사람들은 매력을 느낀다.
선화단길을 찾은 한 시민은 “SNS에서 유명해서 찾아왔어요. 예쁘게 만든 공간이 많아서 좋아요. 음료나 음식 가격도 서구에 비해 저렴한 편이고요. 사실 이 거리가 예전에는 밤에 조금 무서운 느낌이었는데 가게들이 생기면서 환해진 것 같아서 좋아요”라고 이야기했다.
선화단길에 새롭게 생긴 공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화단길 끝자락 즈음 한눈에 봐도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가게들도 몇몇 있다. 20년 가까이 그곳에서 가게를 운영한 상인은 “아휴 나는 잘 몰라요. 유명해졌다고 해도 평일에는 사람이 많이 없어요”라고 이야기했다.
근처 대전시민대학을 오가며 선화단길을 자주 찾는 시민은 “카페들이 많이 생기면서 거리에 활력이 생겨서 좋아요. 그런데 몇몇 마을 주민 중에는 비슷한 업종이 계속 생기니까 불편하게 보기도 하더라고요. 그래도 여기 카페가 많이 생겨서 모임이 있을 때는 좋죠. 술집이 생기는 게 아니라 밥집이나 카페가 들어서서 그런지 소음도 많지 않고요. 저기 위쪽에 얼마 전에 카페가 하나 더 문을 열었어요. 가 보지는 않았는데 좋아 보이더라고요”라고 이야기했다.
선화서로에서 주택가로 향하는 골목에는 얼마 전 새로운 카페가 문을 열었다. 한때 제법 부유한 사람이 살았을 법한 큰 규모의 주택에 카페가 들어섰다. 이곳 역시 기존의 건물 외형을 유지하고 내부와 옥상 등을 리모델링했다.
카페를 둘러보고 찬찬히 주변 주택가를 돌아봤다. 곧 새로 지을 건물도 보이지만, 정원을 가진 예쁜 주택도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살지 않는 몇몇 주택 마당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원룸과 아파트와는 사뭇 다른 구조에 사람들은 매력을 느낀다
이미지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리단길’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특정한 느낌을 지닌 접미사다. 서울에 경리단길이 시작이었다. 일반적으로 가게 주인장이 내뿜는 독특한 감성을 지닌 가게가 프랜차이즈에 앞서 자리를 잡는다. 이곳은 SNS문화 확대로 식욕보다 더 무섭다는 인증욕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 만큼 사진이 잘 나온다. 많은 사람이 SNS에 너도나도 방문 인증을 하며 대상지를 공유한다. 방문객이 늘면서 ‘길’을 중심으로 활력이 넘친다. 이 길은 널찍한 도로는 아니다. 주로 골목이나 이보다 조금 큰 길을 사이에 두고 형성한다. 이 주변 건축물은 지금 시대 효율성을 중시해 지은 공간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갖는다. 획일적이지 않다는 특징이 가장 강하다. 오랜 시간 세월이 쌓이며 유니크한 감성이 쌓인 공간일수록 ‘~리단길’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울에 망리단길과 송리단길, 경주 황리단길, 전주 객리단길, 인천 평리단길, 대구 봉리단길까지 이미 전국에 ‘~리단길’이 속속 생겨난다.
도시재생이라는 측면에서 이런 현상을 바라보기도 하고 자본이 지닌 폭식성에 기반한 또 다른 방식의 소비라는 시각도 있다. 소박한 ‘살이’가 있던 주거 공간이 상업 공간으로 변하면서 한때 골목에 넘쳐났을 정대신 돈이 넘쳐나는 현실이 불편하기도 하다. 이 와중에 결국 돈이 사달을 내며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분명한 건 ‘~리단길’이 가진 가장 큰 경쟁력은 ‘이미지’라는 점이다. 이 이미지가 지닌 생명력은 결코 길지 않다. 이미지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두려운 부분이다. ‘~리단길’이 만들어지는 감성 가득한 공간은 많은 사람이 수십 년 동안 진지하게 살아 낸 삶이 쌓여 만들어진 곳이다. 민간 영역에서 자유롭게 형성하는 ‘~리단길’에 가치와 의미를 더해 줄 작업을 함께 진행할 수 있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한없이 소비되어 만신창이가 된 채 소멸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주택 앞에서 골목 너머로 보이는 높은 아파트가 유독 멀게 느껴졌다.
글 사진 이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