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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5호] 꽃놀이
꽃놀이
4월도 다 갔다. 4월은 벚꽃과 함께 오고 벚꽃과 함께 간다.
아주 짧은 시간이다. 올해 첫 꽃놀이는 3월 말 대구 두류공원에서 했다.
두류공원은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아주 익숙한 곳이다. 어렸을 적 가족들과 함께 놀러 갔고 스무 살이 넘어서도 종종 들렀고 나중에는 부모님이 그 근처로 이사를 가서 자주 공원을 찾았다. 두류공원 산책을 하노라면 각기 다른 시기의 ‘나’들이 머릿속으로 스쳐간다.
봄마다 왜 그렇게 혼자 이 주변을 배회했던 기분이 드는 건지. 봄은 늘 찬란했고, 늘 외로웠던 시간이었다.
오래된 벚나무들이 흰빛과 분홍빛으로 하늘을 가득 채우고 하늘은 맑아 이보다 더 화사할 수 없는 어느 날, 남편과 함께 벚꽃 길을 지나며 본다.
연인들. 연인들. 20대 연인들이 다들 비슷한 모습으로 벚꽃 나무 아래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꽃무늬 원피스와 트렌치코트. 삼각대와 휴대폰. 혹은 삼각대와 카메라.
사람들이 산책로를 오가는데 그 한복판에 진을 친 연인들이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다. 뭐랄까, 그들은 무대 위에 서 있고 그 곁을 지나는 사람들은 관객 같다. 한둘이 아니라 별로 민망해하지도 않는다(그런데 보는 사람들은 살짝 민망하다). 한 커플은 카메라 앞에서 남자가 여자를 들어 올렸는데, 순간 여자 속옷이 다 보인다.
“아이고. 엉덩이 다 보이네.”
내가 그쪽으로 눈을 주었을 때 남자는 여자를 내려놓았다.
“좋을 때네.”
‘좋을 때’라고 말하는 순간 그 말 속에는 ‘나는 좋을 때 다 지났다’라는 의미가 담겼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이 순간 역시 몇 년 뒤에 보면 좋을 때이다. 그렇다고 해도 20대만큼 ‘좋을 때’라는 표현이 걸맞은 시간은 없지 싶다.
나 때는 저렇게까지 사진을 찍지는 않았는데 싶으면서도, 저 순간을 남기고 싶은 맘은 이해한다. 정말이지 한때이니까.
이런 풍경은 그다음 주 대청호 벚꽃을 보러 갔을 때도 이어진다.
온통 20대 연인들. 그들의 일관적인 사진 찍기. 삼각대는 필수다. 벚꽃 길 옆으로 쭉 늘어선 삼각대와 연인들도 장관이라면 장관이다. 대청호는 저녁 시간 들렀던 터라 두류공원만큼은 아니었지만.
봄이면 꽃이 만개하고 젊은 연인들이나, 어린 아이나, 그리고 나이 지긋한 사람들도 모두 꽃놀이를 한다. 꽃놀이는 매년 맞는 존재의 축제처럼 느껴진다.
올해도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했다는, 이 순간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되기를 기원하는.
매년 봄은 같았고 또 달랐다. 열세 살의 봄, 열아홉의 봄, 스물다섯의 봄… 마흔의 봄. 꽃나무 아래서 우리는 확장된 시간을 느낀다. 꽃나무 아래를 걷는 건 지나온 그 모든 시간이다.
글 그림 이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