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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6호] 메마른 아스팔트에도 꽃이 피었다
메마른 아스팔트에도
꽃이 피었다
마을미술프로젝트-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대전역을 중심으로 양쪽 날개 역할을 하는 정동과 원동. 1930년대 철도 운행과 함께 두 지역도 크게 번성했다. 1960~1970년대만 하더라도 대전의 명동이라 불릴 정도로 항상 북적이던 곳이었지만, 늘 그렇듯 좋은 시절은 영원하지 않았다. 성장을 멈춘 동네는 변화를 모르는 듯, 앞서 나가는 시대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은 골목과 오래된 여인숙, 쪽방촌이 동네를 이루고 기존 주민과 가난한 노동자만이 이곳을 드나들었다. 이곳은 긴 시간 우범지대로 분리된 청소년통행금지구역이었다. 그러다 47년만인 2018년, 청소년통행금지구역을 해제했고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하고 단란한 동네로 가꾼다. 그 중심에는 주민과 대전공공미술연구원이 있다.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닌,
그렇게 만든 상황이 나쁜 것
낡은 여인숙과 쪽방촌이 늘어선 정동, 그리고 수10년이 넘은 철공소와 공업사가 즐비한 원동. 누가 봐도 정말 오래되어 보이는 동네에는 성한 건물이 없다. 뜨거운 햇볕을 얼마나 쬐었는지 모르게 색이 바랜 건물은 본래의 색을 가늠하기도 어렵다. 좁은 골목마다 억센 세월의 흔적이 더덕더덕 붙은 낡디 낡은 동네지만, 조금씩 새로운 색이 덧대어지고 있다.
정동과 원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는 마을미술프로젝트 선정 사업으로, 200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지자체가 공동으로 주관한다. 예술가와 지역 주민이 함께 일상공간에 예술을 담아 지역을 재생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난 2017년 대전공공미술연구원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프로젝트가 마을미술프로젝트 공모에서 1등을 차지하며 3년간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프로젝트명은 무궁화가 해충의 공격에도 꿋꿋하게 100일 동안 피었다 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어두운 동네가 다시금 회복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하는 바람에서 지었다.
대전공공미술연구원 황혜진 대표는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든 상황이 나쁜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정동과 원동이 과거에 머문 듯 낙후된 것은 이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과 무관심한 상황으로 인한 결과다. 우범지역으로 분리되며 사람들은 이곳을 발걸음해서는 안 되는 공간으로 인식했다. 그런 편견과 무관심은 마을 안 사람들을 메마르게 했다.
“2015년도에 문화재단 공모사업 준비 차 이곳을 방문했어요. 동네 사진만 얼른 찍고 가려고 했는데 어린아이 소리가 들려 연탄 냄새가 가득한 좁은 골목을 따라갔어요. 모습은 보지 못했는데,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와 옹알이 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을 돌보는 할머니 목소리가 나더라고요. 그 순간 그냥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리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죠.”
황 대표는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나 싶어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저 공모사업을 위해 이곳을 소비하려는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바꿔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이다.
낡은 건물들은 사람을 그리워 한다
천천히 주민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처음 마을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주민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었다. 고립되고 소외되었던 주민들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이들을 경계했고, 일부러 작가들에게 못살게 굴기도 했다. 황 대표는 주민들에게 욕을 먹고 맞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얼굴을 비추고 살갑게 인사했다. 그 시간이 쌓여 마을 주민 역시 하나둘 마음의 문을 열었고, 아들딸하며 서로를 살뜰히 챙긴다.
올해 2월 새로 입주한 손놀이협동조합 강민희 대표는 “사실 처음에는 분위기에 위축되기도 했어요. 주민 분들과 어떻게 풀어 나갈까 고민도 많이 했죠.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다들 너무 반갑게 맞아 주시더라고요. 첫 해 입주했던 작가 분들이 많이 힘써 주셨기에 지금의 밝은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한없이 차갑게 얼어붙은 동네였지만, 지금은 진심어린 관심과 정이 동네 전체에 퍼졌다.
프로젝트는 자원의 재생, 공간의 재생. 삶의 재생 세 가지 측면으로 진행한다.
첫째, 자원의 재생은 원동에 오래된 철공소와 공업사에서 나온 고철을 이용해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예술작품을 만드는 활동이다. 역전시장공영주차장에서 긴 팔을 뻗어 사람들을 반기는 ‘창조길 지킴이’도 고철을 이용해 만든 작품이다.
둘째, 공간의 재생은 정동에 존재하는 수많은 빈 공간을 개조해, 공방을 만들어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가 거주하며 주민과 예술 활동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과거 피를 뽑아 판매하던 매혈소 자리에는 주민사랑방을, 관을 짜던 공간은 셀프 웨딩 공방으로 리모델링해 활용한다. 대전공공미술연구원 사무실 역시 동구청의 무상임대 협조를 받아 리모델링해 1층은 무궁화갤러리로 2층은 사무실로 사용한다.
셋째, 삶의 재생은 위 두 가지 활동이 맞물려 생성하는 결과이자, 대전공공미술연구원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자원과 공간을 재생시키는 과정을 통해 주민의 삶까지 재생하자는 것이다. 정동 마켓과 야시장이 삶의 재생 측면에서 벌인 활동이다. 주민은 작가의 도움을 받아 만든 작품을 직접 판매하고 수익금을 주민 단체 통장에 저금한다. 모인 돈으로 주민은 함께 선진지를 탐방하고 활동 기금으로 사용한다.
다양한 프로젝트 활동 중 주민과 외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호응을 받은 프로그램은 정동 마켓과 야시장이다. 처음 야시장을 계획했을 때 주민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반대했다. 낯선 이를 동네 안에 들이는 일도 꽤 긴 시간이 필요했는데,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드나든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마지막까지 반신반의했지만 막상 행사를 진행하니 누구보다 즐거워한 건 주민이었다.
“이곳 주민 분들에게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낯선 풍경이었을 거예요. 늘 조용하기만 하던 동네에 몇 백 명이 넘는 사람이 돌아다니는 풍경이 낯설기도 했지만, 그만큼 즐거웠던 것 같아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즐기는 시간이었죠. 처음에는 다들 반대했지만, 저희는 이곳도 사람 사는 공간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바깥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곳의 어두운 풍경을 깨 주고 싶었죠. 오히려 지금은 주민 분들이 나서서 한 달에 한 번씩은 해야 한다며 계속 저희를 부추기고 있어요(웃음).”
이러한 행사를 지속하며 삶의 재생이라는 목적에 점점 다가갔다. 그걸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는 철판시장이었다. 원동에서 철공소를 운영하는 주민들이 철판을 제작해 행사를 준비했다. 철판시장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정동 주민들도 나섰다. 서로 한데 어울려 요리를 하고 사람들을 맞이했다. 이웃주민이지만 그간 한 번도 왕래하지 않았던 사람들 사이에 처음으로 대화가 피어났다. 이후 양쪽 동네에 일이 생기면 발 벗고 나섰고, 이제는 일부러 큰 길로 돌아가던 일도 관두고 안부를 물을 겸 골목으로 발걸음한다.
“도시재생이라는 것은 긴 호흡으로 이어져야 해요. 앞으로 5년은 더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천천히 조금씩 이뤄 나가야 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크게 관여하지 않고 판만 깔아 줘야 해요. 그 안에서 주민이 주도해 변화를 도모해야 하죠. 그래야 진정한 도시재생이 가능하다고 봐요.”
동네 곳곳 비어있는 공간을 리모델링해 공방으로 만든다 (ⓒ대전공공미술연구원)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하던
동네가 변했다
“이 동네에는 아이가 살지 않았어요. 원래 정동 초입에 사는 할머님이 일하는 딸 내외를 대신해 손주들을 봐 줬는데, 동네 안쪽은 위험하다며 아이들이 절대 들어가지 못하게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동네 안쪽까지 들어와 공방에서 작가들과 놀아요. 그리고 얼마 전에는 아이 두 명을 데리고 한 가족이 이사를 왔어요. 이제 동네에 머무는 아이가 넷이 된 거죠.”
마을의 작은 변화가 모이고 모여 마을 전체 분위기를 바꿨다. 의심과 경계로 단절된 관계 사이에 얇은 매듭이 생겼고 그 두께는 계속해서 두터워진다. 소극적이던 주민은 자발적으로 움직이며 마을 일을 돌본다. 30년간 원동에서 공업사를 운영하는 김재화 씨는 자진해서 마을 총무를 맡았다. 그간 누구 하나 제대로 신경 쓰지 않던 마을 일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임한다.
“이 동네에서 30년 넘게 일하면서 지켜봤지만, 지자체의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어요. 동네 사람들도 신경 쓰지 않으니 외부 역시 이렇다 할 도움이 없었죠. 황 대표와 작가들이 동네에 들어오면서부터 많이 바뀌었어요. 마을에 문제가 있다면 주민이 직접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저 친구들이 열심히 해 주니까 너무 고마워요. 그래서 더 거들기도 하고요.”
마을 바깥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었다. 지난해 청소년통행금지구역이 해제되면서 청소년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이면 학생들이 이곳으로 봉사를 하러 온다. 아이들 발걸음 하나, 웃음소리 한 번에 마을은 조금 더 활기를 띤다.
취재 당일 (사)대전·세종·충남여성벤처협회 강경애 대표가 정동을 찾았다. 대전공공미술연구원의 활동을 보고 이곳에 지부를 세우고 이들의 활동에 힘을 보태고자 공간을 알아보러 온 참이었다.
“대전공공미술연구원이 하는 일에 힘이 되고, 함께 상생하고자 이곳에 지부를 설립하기로 했어요. 지금도 많은 변화를 꾀했지만 이곳이 자립할 수 있도록 힘이 되고 싶어요. 여기서 멈추면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에 더 늦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정동과 상생하면서 이곳 활동의 가치를 계속해서 실현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모두가 ‘도저히 변화할 수 없는 곳’이라 말하던 동네가 이제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작가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하고 싶어요. 올해가 사업 마지막 해이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완전한 자립에 들어가야 하죠. 이곳이 계속해서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술가와 주민이 자립하는 것이에요. 바깥의 편견이 없어지도록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펼칠 수 있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길 바라요. 무엇보다 저는 이곳이 유명 관광지가 되길 바라지 않아요. 도시재생은 관광이 목적이 아니잖아요. 주민들 스스로가 삶의 가치적인 부분을 찾고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으면 해요.”
황 대표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단순히 프로젝트에 목적을 둔 활동이 아닌, 동네 구성원으로서 동네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황혜진 대표는 정동상회 앞에 앉아 앞을 지나는 사람마다 말을 걸어 붙잡는다. 서로 간의 대화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격이 없다. 황 대표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가슴 아픈 사연에 눈물이 핑 돌다가도 정겨운 이야기에 금세 웃음꽃이 피었다.
“저기 77양화점 아버님이 여자 구두는 꼭 240 사이즈만 만들어요. 왜 그런 줄 알아요? 저기 어머님 발 사이즈가 240이거든. 둘이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 몰라요. 근데 꼭 길 걸을 때는 어머님은 떼어 놓고 아버님 혼자서 휑하니 간다니까? 같이 좀 걸어가라니까 말을 안 들어요.”
이야기하는 황 대표의 얼굴에는 편안한 웃음이 감돈다.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지은 웃음이다. 옆에 앉은 정동상회 어머니도 한 마디씩 거든다. 둘을 양옆에 두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이야기를 나눴다. 한창 대화하던 중 세제를 실은 트럭 한 대가 정동상회 앞에 멈춰 섰다.
“어머니 세제 안 필요하세요? 납품 끝나고 가는 길에 남은 세제 그냥 싸게 다 털고 집에 가려고요. 세제 미리 사 두면 좋잖아요.”
트럭을 보던 황 대표는 “여긴 이런 거 자주 와요. 만물 트럭도 오고. 아 저번에 오리 알 팔던 트럭은 또 안 오나? 오리 알 사고 싶은데”라고 말한다. 한없이 낯설고 어색하던 풍경이 허물어진다. 그 사이로 어떤 따듯함이 가득 스민다. 정겨움이다.
글 이주연
사진 이주연, 대전공공미술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