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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4호] 어둠이 내려 앉고 길을 나선다
어둠이 내려 앉고
길을 나선다
낡은 주택단지 골목에는 구석구석 어둠이 내려 앉았다. 낡은 가로등 불빛이 군데군데 구색을 갖춰 어둠을 동그랗게 몰아낸다. 오래된 극장 배우 대기실 조명처럼 편안하게 낡았다.
도시에 남은 주택 단지는 대부분 계획을 세워 만들었다. 집이 들어설 자리와 큰 길이 나갈 자리, 중간 크기 길이 나갈 자리, 작은 길이 나갈 자리 등을 모두 종이에 그려 넣은 후 그에 맞춰 집과 길, 상하수 시설, 전봇대 등을 설치했다. 대부분 큰 길에서 가까운 블록일수록 길이 넓고 멀어질수록 좁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짓고 싶은 곳에 집을 들이고, 담장과 담장 사이에 자연스럽게 길을 만든 옛날 마을과는 다르다. 그 시절처럼 구불구불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길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길이 여러 갈래로 갈리는 지점도 대부분 시선을 잘라 낼 것처럼 날카롭다.
주택 단지 구역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계획이 이루어지는 시점, 그 경계 즈음에 앞서 자리를 잡고 들어선 구역은 자유롭기 그지 없다. 대부분 논과 밭을 새로운 주택 단지로 내어 준 채 남았다. 집은 분방하게 들어섰고 몇 번이나 수선을 거친 흔적은 담벼락과 대문, 지붕 등에 층을 이룬채 남았다. 집과 집 사이에 난 좁디 좁은 골목과 그 틈으로 간신히 보이는 골목 끝 풍경이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감정을 톡톡 건드린다.
가로등 불빛을 피해 천천히 걷는 고양이를 만나면 골목 한가운데서 잠깐 멈춰 선다. 고양이도 한없이 허기진 눈빛으로 잠깐 멈춘다. 그 순간 영혼이 사라진 것처럼 공허하다. 고양이는 곧장 가야 할 곳으로 눈길을 돌리곤 내처 걷는다. 고양이는 이제 주택 단지 골목 안에 중요한 구성 요소다. 고양이마저 없는 골목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한없이 무겁게 정체된 공기를 부드러운 털로 쓰다듬으며 정전기를 일으킨다. 제세동기를 심장 부근에 붙여 놓고 전기 충격을 가하듯 강한 떨림을 준다. 골목 사이 공기가 말라 가지 않는 이유는 순전히 녀석들 덕분이다. 누군가 반짝거리는 유약을 발라 세워 둔 고양이 조형물도 공기가 마르지 않고 작은 전기 충격에 끊임없이 유영하기를 바라는 주술적 바람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낡은 주택 단지 안팎에는 나무가 많다. 다시 태양이 떠오르기 전까지는 제 색을 숨기곤 나무도 짧은 잠에 빠진다. 낮동안 드리운 꼭 맞는 그림자를 다시 끌어당겨 몸에 붙인 채 숨죽인다. 태양이 떠오를 때 천천히 그림자를 내려 제 색을 드러낼 참이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 불빛은 마냥 편하지는 않다. 멀리 떨어진 어둠 속에서 지켜본 불빛은 오징어잡이배가 밝힌 집어등만큼이나 치열하다. 밤을 몰아냈다는 인류의 오만함을 드러내는 듯하다. 진정한 가치도 모른 채 몸에 두른 치장만큼이나 어색하다.
애초에 단독 주택이 들어섰던 공간에 공간 효율을 극대화 한 다세대 주택이 하나둘 늘어난다. 숫자에 상관없이 수십 년 이어온 풍광을 사정없이 흔든다. 환히 불 밝힌 카페에 들어앉은 사람이 풍경화처럼 시선에 들어온다. 작은 일상에 시선이 닿는 순간, 현실은 풍경으로 변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해 내려오는, 시선이 닿는 순간 돌이나 황금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허무맹랑한 신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현실에 뿌리를 두지 않은 신화는 없다. 산자락에 기댄 마을 안길은 산중턱에 걸쳤다. 고갯마루 같은 그곳에 ‘통통배’ 한 척이 놓였다. 길가에 주차한 차들 사이에 배 한 척은 밤에 길을 나선 사내의 현실 감각을 송두리째 뺏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배가 그리워할 바다를 생각하며 사내는 휘적휘적 걸었다.
글 사진 이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