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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4호] 고창에 잠깐 살다
고창에
잠깐 살다
'책마을해리' 한달살이 프로젝트
고창 톨게이트를 지나 30분을 더 달리면 해리면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라성리에는 32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과거 라성초등학교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책마을해리’가 있다. 이곳에 촌스러운 대전 가스나 이슬기와 이주연이 한달살이를 시작하려고 왔다.
#1 애벌레와 애송이
“끄아아악!”
한달살이 첫날, 국화를 심기 위해 손으로 땅을 파던 나는 뒤집어지며 공중에 무언가를 던졌다. 옆에 서 있던 할머니는 뭔 난리냐는 식으로 눈을 크게 뜨셨다. 애벌레였다. 어떤 곤충의 애벌레인지는 모르겠으나 검고 표면이 매끈한 것이 땅에 박혀 있던 유리 조각이라고 생각했다. 빼 버릴 생각으로 손에 움켜쥐었더니 물컹한 것이 순간 꿈틀거렸다. 그렇게 애벌레의 첫 비행이 시작되었다.
왜 애벌레를 던졌는지 나도 알지 못했다.
“벌레가… 애벌레가…”
아직도 손에 감촉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애벌레는 어디로 갔을까… 할머니는 애송이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애벌레를 쏘아 올린 애송이가 되었다.
한 번의 공포를 경험한 나는 작은 것에도 난리를 떨었다. 멀쩡한 땅이 움직이는 것 같다느니 손가락보다 작은 벌레를 보며 기함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주연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을 거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우리에게는 30개가 넘는 국화 화분이 남아 있는걸.
작업이 마무리되어 갈 쯤. 다시 한 번 비명이 들렸다. 언덕에 올라가 삽질을 하고 있던 주연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주연은 언덕 밑으로 도망가 있었다. 주연의 비명에 나는 박스 위로 조용히 올라갔다. 주연은 발을 동동 구르며 울상을 하고 있었다. “저기… 저기…” 하며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개구리!!!”
주연은 몇 번이나 같은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조심히 내려가 살펴보자 아직 잠이 덜 깬 것 같은 개구리가 있었다. 한참 삽질을 하고 있었는데 개구리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개구리를 쥐고 조심히 국화를 심기 위해 파 놓은 구덩이에 개구리를 넣었다. 그리고 그 위에 국화를 심었다.
그날 밤, 주연이와의 대화 중 엄청난 걸 알게 되었다. 그 개구리가 그 구멍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거였다. 밖에 있던 개구리를 땅에 다시 묻고 그 위에 국화까지 심어 버린 거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촌장님(책마을해리 이대건 대표)은 꿈에 개구리가 나올 거라고 했다.
사람들이 걷기 좋게 운동장에 야자펠트를 깔았다
깔리지 않은 곳에는 꽃을 심을 예정이다
#2 어쩔 수 없어도, 눈물은 난다
고창 책마을해리의 또 다른 이름을 만들자면 아마도 동물농장이 아닐까 싶다. 고양이 ‘다다’는 볕이 좋은 곳에서 뒹굴뒹굴하고 삽살개 ‘구름이’는 꼬리를 흔든다. 진돗개 ‘해리’는 겁이 많아 일부러 만남을 피해 주고 있다. 봄을 맞아 까치가 집을 짓고 바쁘게 날아다닌다. 꿀벌들은 바쁘게 일하며 시도 때도 없이 똥을 싼다(벌똥도 똥이라고 냄새가 고약하다). 많이 맞았다. 이렇게 많은 생명이 사는 곳에서 사건이 없다면 더 이상할 것 같다.
건물 뒤편에는 닭장이 있다. 종종 문을 열어 주면 산책도 하고 목욕도 즐긴다. 처음 닭장을 나온 닭들을 봤을 때, 괜찮을까 싶었다.
“닭들 나와 있어도 되는 거야?”
주연은 닭을 가리키며 물었다. 닭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던 터라 놀랍기도 했지만, 사실 반가움이 더 컸다. 곧장 닭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사람을 본 닭들이 쫓아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사람을 밥을 주는 무언가로 인지하고 있구나 싶었다. 뒤뚱거리며 바쁘게 쫓아왔다. 밥통에서 밥을 꺼내 바닥에 뿌려 주자 다투어 먹기 시작했다. 서열이 가장 높은 수탉이 다른 수탉을 발로 차고 날개로 위협하며 눈칫밥을 주었다. 그러지 말라며 다른 곳에도 밥을 뿌려 주었지만, 이건 닭의 세계, 끼어들려고 하는 인간을 향한 ‘계무시’는 당연했다.
밥을 먹으니 닭들은 여유롭게 산책을 다시 시작했다. 나도 바빴다. 5월에 열릴 ‘한국지역도서전’ 준비로 할 일이 많았다. 곧장 운동장으로 가 길을 깔았다. 3월 아직은 추운 날씨이지만 움직이면 곧 더워졌다.
“꼬꼬!! 꼬!! 꼬고고고고!!! 꼬꼬!!!”
갑자기 닭들이 울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수다스러운 닭들이었으나 이번은 달랐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멀리서 닭장을 바라보았다. 그때 건물 사이로 처음 보는 누렁이가 지나갔다. 그러자 닭들의 소리가 더 커졌다. 들고 있던 호미를 던지고 달렸다. 입에서는 욕이 튀어나왔다. 땅을 한 번 뒤집은 상태라서 뛰기가 쉽지 않았다. 계단을 세 칸씩 뛰어 올라가 닭장에 도착했을 때, 서열에 밀린 수탉을 누렁이가 물고 있었다.
“야!!! 야 이 ***야!!!”
누렁이는 욕을 알아들은 것처럼 뒤돌아봤다. 순간 놀랐지만, 닭을 지켜야 했기에 누렁이에게로 뛰어갔다. 그 순간 누렁이는 물고 있던 수탉을 바닥에 뱉어 버리고 도망쳤다. 수탉은 순식간에 언덕 위로 도망갔고 누렁이도 사라졌다. 걷기도 힘든 내가 네발 달린 동물을 어떻게 쫓아가겠는가. 포기하고 언덕을 올라 수탉에게 다가갔다. 많이 놀랐는지 수탉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입에 피거품을 물고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등을 쓸어 주는 일밖에 없었다. 소식을 들은 관장님이 달려왔다. 관장님을 보자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닭이 너무 불쌍했다. 밥을 줬을 때 닭장에 넣어 줬다면, 닭들이 처음 울 때 쳐다보지만 말고 바로 달려갔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자꾸만 삐져나오는 눈물을 옷으로 찍어 눌렀다. 잠시 뒤 병수 삼촌이 포대를 가지고 왔다. 삼촌은 울고 있는 나를 보더니 자기도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하며 인상을 찌푸리더니 포대에 닭을 담았다. 닭은 그렇게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떠났다. 그날 밤 꿈에 닭이 나올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책마을해리에서는 항상 붉게 물든 저녁 노을을 볼 수 있다
책마을해리로 오라
#3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젊은 사람이 이런 곳에서 뭐 해?”
여기에 와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글도 쓰고 디자인도 하고 있다. 도서전 준비도 돕고 있고, 어린이 도서관 공사도 돕고 있다. 텃밭도 만들어야 하고 그림도 그려야 한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나는 아직도 여기서 뭘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루가 너무나도 빠르다. 글 하나 쓰면 점심이고 그림 하나 구상하면 저녁이다. 뭔가를 하고는 있는 건가 싶다. 남은 열흘은 뭘 할까 싶다. 대전에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많을 텐데, 그 시간이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나는 책마을해리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5월 9일부터 12일까지 고창 책마을해리에서는 ‘한국지역도서전’이 열린다.
글 이슬기
사진 이슬기,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