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4호] 시간을 애도하는 방식

시간을 애도하는

방식

 

<당신이 무슨 색을 좋아했더라…>

연극 리뷰

 

 

인간은 중첩된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이미 사라진 시간들은 기억으로 층을 이루며 현재에 녹아든다. ‘죽음’을 건너간 자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기억 속에 영원히 현존하는 그들. 하지만 그 모습은 시간의 흐름 속에 조금씩 달라진다. 〈당신이 무슨 색을 좋아했더라…〉는 여전하되 또 시시각각 변해 가는 기억을 말하는 연극이다.

 


 

 

〈당신이 무슨 색을 좋아했더라…〉는 대전에서 15년 동안 연극인으로 활동한 정준영 대표가 조광래 작가 겸 배우, 김도윤 배우와 함께 의기투합해 만든 ‘극단 호감’의 첫 작품이다. 조광래 작가는 반도체 업체에서 근무하다 돌아가신 분들의 사연을 라디오로 듣고 이를 모티브 삼아 작품을 썼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산업재해로 인한 백혈병으로 잃고 그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주인공을 연기했다. 김도윤 배우는 반도체 문제 피해자로 백혈병에 걸려 죽은 여자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반도체 문제가 떠오른 것은 고 황유미 씨의 죽음으로부터였다. 2007년 3월 6일 삼성전자 반도체 여직원이었던 고 황유미 씨는 스물두 살의 나이에 급성백혈병으로 죽었다. 2005년 6월, 일한 지 1년 8개월 만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11년 만에 직업병 피해 보상 관련 중재안을 내놓았지만 전자산업 노동자의 산재 신청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러한 반도체 문제로 인한 피해가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겪는 ‘시간의 상실’의 계기가 된다. 작품은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백혈병에 걸린 여자와 남자의 사랑 이야기가 연극의 뼈대를 이룬다. 현실 속의 반도체 백혈병 문제는 왜 여자가 시간을 잃게 되었는지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연극의 밖에서 두 명의 배우를 ‘시간의 상실’ 속으로 밀어 넣는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을 살아가는 한 여자, 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라는 두 존재가 그렇게 무대 위로 오르게 된다.     
연극의 첫 장면에서 여자와 남자는 함께 등장한다. 남자가 들고 있던 전구를 여자가 건네받아 무대에 설치된 조명에 끼우면 하나둘 불이 켜진다. 여자는 중앙의 의자에 앉고 남자는 무대 뒤쪽 패널을 겹쳐 만든 계단 위로 오른다. 여자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고장 난 시계를 고치기 위해 남자의 시계집을 찾아간다. 남자는 시계를 고치는 일을 한다. 사랑에 빠진 목소리로 두 사람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여자의 뒤에 떨어져 서서 남자는 딱딱한 목소리로 빠르게 반도체 백혈병 문제의 내용과 백혈병의 정의, 시계에 대해 읊는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여자가 ‘기억’ 속에 존재한다면 남자는 여자가 떠나고 난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두 시간은 어긋난 채로 무대 위에서 동시에 존재한다. “톱니바퀴가 하나라도 제 역할을 못 하면 모든 시침은 힘을 잃는다.” 남자의 대사이다. 일터에서 열심히 일했을 뿐이지만 여자는 그 환경 때문에 병을 얻고, 순식간에 죽고 만다. 고장 난 시계처럼 시간을 잃는다. 
여자와 남자가 위치를 바꾸고, 이번에는 남자가 두 사람이 나눈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여자는 남자의 뒤쪽에 서서 그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본다. 무대 뒤편에 남자가 섰을 때, 그가 현재의 시간을 연상시켰다면 여자의 존재는 죽은 자의 시간을 떠오르게 했다. 이미 죽은 그녀가 남자를 바라보며 한없이 슬프고 다정한 시선을 남자에게 던진다. 공황장애가 있던 남자를 치유한 것은 여자의 사랑이었다. 비록 여자는 백혈병으로 죽고, 남자만 홀로 남지만 남자는 여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세상과 맞서며 강인해진다. 과거, 현재, 미래 혹은 죽음. 이렇게 세 가지 층위의 시간이 무대에는 존재하는데, 그것을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시간이 있다. 

 

  
여자가 남자의 시계집을 찾아가 그를 처음 만난 순간 여자는 말한다.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어요.” 그들의 사랑은 그들의 기억을 완성시키며 제3의 시간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죽음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시간이다. 점점 희미해져 가는 기억 속에서 남자는 두 사람이 함께 나눈 기억조차 의심한다. “색이 다 바랬어. 마치 하루였던 것 같아.” 무대 앞에 선 남자와 무대 뒤쪽에 선 여자, 무대가 서서히 어두워지고 남자는 중얼거린다. “당신이 무슨 색을 좋아했더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점차 잿빛이 되어 가는 기억을 보여 준다면, 여자가 남자에게 남겼던 말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제3의 시간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기억은 눈이 쌓이듯 점점 깊어 가는 거야.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 연극은 사회가 가한 폭력 앞에서 자신의 시간을 잃어야만 했던 한 사람의 삶을 시계를 소재로 풀어냈다. 두 사람은 마치 모노드라마를 찍는 것처럼 서로 다른 시간대를 각자 연기한다. 둘이 함께하는 순간도 있지만, 대부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 있다. 서로 다른 시간의 이야기가 동시에 말해지며, 앞선 시간으로 다시 되돌아가기도 한다. 기억이란 본래 그렇게 직선이 아니고, 인간의 삶도 그렇다. 이렇게 시간을 풀어내는 방식이 극의 내용과 잘 어우러졌다. 
결국 그들은 시간과 사랑을 잃었으며 그들 앞에는 잿빛이 된 기억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은 말한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결국은 죽음이 찾아왔지만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사랑했으며 그 기억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극중의 남자가 사회와 싸우며 점차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강해졌듯이, 비록 있어서는 안 되는 비극이었지만 여전히 부당함과 맞서며 자신의 존엄을 위해 싸우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이 연극은 환기시킨다. 
섬세한 대사들 덕분일까, 7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두 주인공의 소소한 삶의 순간들에 고스란히 몰입이 되었다. 아버지가 준 시계의 시침을 바라보다 눈물을 똑똑 흘렸다는 여자, 두꺼비 때문에 된장찌개가 싫어졌다는 남자. 이런 남자에게 여자는 된장찌개를 끓여 주고 남자는 싫어도 좋다고 말하며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는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마음들을 동시에 드러내는 순간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비록 슬픈 일을 다루었지만, 그 사이사이 존재했을 즐거움과 기쁨을 적절히 배치해 오히려 현실감을 더해 주었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연극 〈당신이 무슨 색을 좋아했더라…〉는 그들을 다시 이 자리에 불러낸다. 고통 속에 떠나갔을 그들, 여전히 고통 속에 싸우고 있을 그들을. 조광래 배우의 묵직한 연기, 김도윤 배우의 죽은 자와 산 자를 넘나드는 섬세한 연기가 잠깐 ‘어느 누군가의 사라졌지만 소중한 삶’의 순간으로 안내한다. 관객들은 이 연극을 보고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자신의 시계를 다시 한번 진지한 눈으로 찬찬히 바라보지 않았을까. 영원히 멈추지 않을 듯이 찬찬히 돌고 있는 시침과 분침을.

 


글 이혜정

사진 극단 호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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