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3호] 138억년 우주의 비밀을 간직한 태초의 빛

138억년 우주의 비밀을

간직한 태초의 빛

   

나는 답답할 때 과학책을 읽는다

우주가 빛에 새긴 모든 흔적, 《빅뱅의 메아리》

 

 

무한히 오래전, 무한히 작은 한 점으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됐다. 어느 날 대폭발이 있었고, 무서운 속도로 팽창했으며 서서히 식었다. 우주는 이렇게 탄생했다.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 우주 탄생의 비밀은 우리 인식 영역 바깥에 있다. 직관적으로 그 모든 것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기에는 우주의 시간이 너무 짧거나 길고, 공간이 너무 작거나 크고, 속도가 너무 느리거나 빠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작 궁금한 것은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느냐?’가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아느냐?’이다. 생각해 보라.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단 말인가? 우주가 점보다 작은 한 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우주가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지만 더 놀랍게도 인류는 이 놀라운 사실들을, 놀라운 과학적 능력으로 하나씩 입증했다. 이론으로 체계화했고, 이론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이 책 《빅뱅의 메아리》는 그것에 관한 (매우 알기 쉽고 재미있는) 보고서다. 

 


 

안드로메다 은하. 우리 은하는 우주의 전부가 아니라 수많은 은하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사진 출처=pixabay>

 

우주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는 '태초의 빛'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류가 알게 된 것은 아직 100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한 가지 사실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우주를 보아 온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정말 그랬다. 1908년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레빗이 중요한 발견을 한다. 밝은 세페이드 변광성의 밝기 주기가 더 길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그녀가 발견한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광도 관계 법칙’은 우주에서 천체 거리를 측정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레빗은 청각장애인이었다. 
1924년 에드윈 허블은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세페이드 변광성을 발견했다. 이 은하가 우리 은하보다 훨씬 멀리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우주의 모습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한 중요한 발견이었다. 이 발견으로 우리 은하는 우주의 전부가 아니라 수많은 은하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발견한다.  
우주 팽창이 정설로 받아들여지자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우주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말이니까 과거에는 우주의 크기가 더 작았다는 의미가 아닐까? 과거로 갈수록 우주가 점점 작아진다면 언젠가는 크기가 0(제로)이 되는 순간도 잊지 않을까?” 조르주 르메트르, 조지 가모프 등이 대표적이다.  
모든 물리학적 이론은 수학으로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우주와 관련된 이론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들은 초기에 엄청난 고온, 고밀도 상태였던 우주가 팽창과 함께 냉각할 때의 밀도와 온도 사이 관계식을 구했다(그 식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이어 지금의 물질 밀도를 이용하여 현재 우주의 온도(5K)를 계산했다. 이 온도는 우주에 고르게 퍼져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여기에서 나오는 열복사는 지금도 관측되어야 한다. 우주배경복사의 중요성이 등장한 것이다. 
빅뱅이 있고 38만 년 후에 빛이 탄생했다. 이 태초의 빛은 우주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다. 심지어 우주의 어느 방향에서든 볼 수 있다. 우주의 바탕, 혹은 배경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 빛을 ‘우주배경복사(Cosmic Background Radiation)’라고 부른다. 우주 탄생 38만 년 만에 방출된 우주배경복사는 138억 년이라는 긴 시간을 여행한 끝에 지구에 도착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현재 관측되는 모든 우주배경복사는 138억 년 전에 만들어진 빛이다.

 

우주배경복사 "똥을 찾다가 금을 발견했다"

우주배경복사를 처음 발견할 당시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하다. 1964년 벨 연구소에서 일하던 펜지어스와 윌슨은 새로 개발한 전파망원경을 시험 중이었다. 잡음이 문제였다. 펜지어스와 윌슨은 잡음을 없애기 위해 전파망원경을 모두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했다. 망원경에 사용된 부품을 교체하기도 했다. 안테나에 둥지를 튼 비둘기를 쫓아내고 배설물까지 닦아 냈다. 그래도 잡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곳에서 60km 떨어진 프린스턴대학에서는 일군의 연구원들이 우주에서 어떤 신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로버트 디키도 그중 한 명이었다. 디키는 윌킨슨 등 다른 동료들과 점심 모임을 갖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벨 연구소의 펜지어스였고, 그는 디키에게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감지되는 어떤 신호(잡음)에 관해 물었다. 디키는 펜지어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잡음’이 자신들이 찾던 우주배경복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디키는 전화를 끊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우리가 한발 늦었네.”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공로로 펜지어스와 윌슨은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벨 연구소의 직장 상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들은 똥을 찾다가 금을 발견했다.” 하지만 프린스턴대학의 윌킨슨은 그들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그들은 정말 기가 막힌 장비를 만들었어요. 대부분의 사람이 포기했을 상황에서도 그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요.” 펜지어스와 윌슨의 우연한 발견으로 평생 우주배경복사를 추적한 많은 연구자가 노벨상을 놓쳤다. 윌킨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우주배경복사는 빅뱅 우주론의 결정적 증거였다.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으로 빅뱅 우주론은 우주 탄생 이론의 정설로 자리잡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수많은 우주 탄생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이(우주배경복사) 발견으로 철학의 영역에 있던 우주론이 이론적인 예측과 관측적인 검증이 가능한 과학이 된 것이다.” 

 

우주배경복사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윌슨(왼쪽)과 펜지어스 <사진 출처=NASA>

 

아침에는 죽음을, 외로울 때는 우주를

지난해 말 하던 일을 접었다. 자연스럽게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 내 인생 최초의 자발적 퇴사 시절이 떠올랐다. 2월로 기억한다. 주변의 위로와 걱정과 격려와 응원이 고마웠지만, 솔직히 큰 힘은 되지 못했다. 솔직히 외로웠다. 불안했다. 그때 읽은 책이 바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였다. 그리고 7년 후 회사 문을 닫으며, 이 책 《빅뱅의 메아리》를 읽었다. 
김영민 서울대 교수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두 번의 경험으로,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우주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외롭고 답답할 때면 여전히 나는 과학책을 읽는다.

 


글 김형석(《나는 외로울 때 과학책을 읽는다》 저자,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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