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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3호] 박만우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문화는 사람이 만든다
사람을 남길 수 있는
프로젝트를 펼쳐야 한다
박만우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대전문화재단 박만우 대표이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무척 짧았다. 시간이 짧은 만큼 대화 속도는 무척 빨랐다. 지난 6개월 남짓 파악한 대전문화재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박 대표이사의 생각은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비단, 제한된 시간이 만들어 낸 조급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외교적 수사로 정제하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대목은 없었다. 이런 ‘명쾌함’이 답답했던 문화재단의 활로를 뚫는 데 적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프로젝트는 결과만큼이나 그 과정이 중요하다”라는 박 대표이사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람을 남기는 프로젝트가 어떤 것일지 무척 궁금하다. 또한 소통이 지닌 명확한 의미를 인지하고 다양한 시도를 펼치려는 계획도 인상적이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꺼낸 대전이 지닌 특징은 ‘포용성과 다양성’이었다. 이는 ‘문화’가 지닌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은 자칫 수동적이고 우유부단함으로 오해받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포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내는 새로운 혁신적 가치다. 다양성을 포용할 때만이 새로운 혁신적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문화가 지닌 힘이며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박만우 대표
1. 대전문화재단이 올해로 설립 10년이다. 많은 실험과 시도, 실패와 성공을 충분히 겪었을 시간이다.
대전문화재단 과거 10년을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2007년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사실상 민간단체가 아니었다. 사무총장은 대부분 군 출신이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비로소 민간자율기구로 변화를 시도했다. 그때 지역에서 재단을 만들었다. 그때 만든 경기문화재단이 이제 20년 정도 되었다. 서울, 경기문화재단을 제외한 지역 문화재단은 설립 이후 사실상 문화예술위원회만 쳐다보는 산하기관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이후 퇴행적인 10년을 생각하면, 사실상 문화재단 본연의 모델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취임 후 대전문화재단의 과거를 살펴보니, 처음 1년 8개월 정도는 아무런 기반 없이 관치에 의해 시청 공무원에게 행정적인 일을 배우는 단계였다. 유아기였다고 볼 수 있다. 약 2년이 지나고 2011년부터 문화예술위원회를 모델로 삼아, 가장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문화행정의 기틀을 잡았다. 이 시기가 2015년까지 이어진다.
그다음부터 재단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책임 없는 리더십과 불공정한 인사정책, 대전 시민을 위한 문화정책 비전 부재 등이 문제라고 본다. 다행히 경험을 축적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 정부 산하기관과 일을 하면서 기능적으로, 행정적으로 훈련이 되었다. 그것이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15년부터 재단이 파행적인 운영을 겪으면서 외부에서 보기에 상당히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이나, 모든 직원은 아니겠지만 내부 역량은 나름 견실하게 갖추고 있다.
이제 재단이 예술가와 시민사회, 집행부 관계 속에서 자기 위상을 찾아야 한다. 시민의 문화 질을 높이는 데 자긍심을 갖고 당당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2. 지난 10년을 평가했는데, 앞으로 대전문화재단 앞에 놓인 중요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내부적으로는 자신감과 동기부여, 의지를 갖도록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안정’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구성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의지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안정적인 리더십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하고 성취와 노력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이 많이 부족했다. 입사 초기에 들어와 9년 동안 일하면서 팀장으로 승진한 직원도 있는 반면에 단 한 번도 승급과 승진을 하지 못한 직원도 있다. 조직 안정성을 해하는 부분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인사원칙을 수립하고 상벌 제도가 분명해야 한다. 책임 있는 리더십의 핵심은 인사권이다. 안타깝지만 지난 4~5년간 인사가 때로는 방만하고 무책임하게 이루어졌다. 아무런 원칙도 없이 이루어진 인사가 대외적으로는 파행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성과에 대한 평가도 자의적으로 이루어졌다. 타 기관에서는 벌써 지향하고 도입한 인사 시스템을 아직도 도입하지 않은 부분은 재단 인사의 전근대성을 보여 주는 예다. 취임한 이후에 재단 직원 47~48명하고 거의 3개월 가까이 한 명당 한두 시간씩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문제를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외부적으로는 시와 협력관계 설정으로 보았다. 시 집행부, 시 의회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휘 감독 체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 세금을 사용하기 때문에 감사도 당연히 수용한다. 다만, 효율적인 예산 집행과 시민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지는 문화자원 배분, 창작자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라 쌍방적인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많이 부족했다.
시민과 문화예술인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만나서 차 마시고 식사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소통은 아니다. 피드백을 받고 구체적인 정책이나 사업에 반영하고 변화한 것을 다시 알려 주는 것이 소통이다. 정책 세미나, 토론 광장, 포럼 등 기존에 하던 것을 활용하면 된다. 다만, 재단이 정보와 자원을 배분하는 허브 기능을 하지만 이것을 수동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능동적으로 기획하고 소통의 결과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깊이 고민해야 한다. 행정과 문화예술 현장을 어떻게 매개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3. 6개월 남짓 경험했지만 대전의 문화예술 역량을 어떻게 보는가?
광주광역시와 부산광역시 등 타 도시에서 생활하고 오랜 연을 맺다 보니 문화예술 현장은 잘 이해하는 편이다. 솔직히 말하면 대전의 존재감은 아주 미미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 생태계는 시각, 공연, 문학 등 창작자에게만 달려 있는 건 아니다. 더 큰 틀에서 보아야 한다. 입체적으로 보면 우리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 연극이나 실험적인 다원예술 등 공연예술 측면에서 보면 공연장 등 유통과 배급을 담당할 에이전시가 부족하다. 시각예술은 말할 것도 없다. 좋은 공립 미술관은 있는데 상업 갤러리는 대구나 부산, 광주에 비해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현저하게 부족하다. 출판 영역도 마찬가지로 출판사와 디자인 영역 모두 취약하다.
생태계 전반에서 교육기관이 배출하는 학생이나 잠재 문화예술 수요자를 보면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다. 또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하는 문화기획자 역량과 집단의 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가, 생각해 볼 문제다.
총체적인 시각에서 보면, 문화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인력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정책적 비전을 가지고 진행해야 한다. 우수한 인력이 서울 등 타지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미래를 위한 도전이자 투자다.
4. 문화를 만들어 내는 인력이 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주는 것도 재단의 역할 아닌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결과뿐만이 아니라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인력이 남는다. 그 효력은 바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서 나타난다. 부산광역시도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젝트 등이 밑거름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남은 인력이 지금 부산 원도심 재생 등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부산의 역동성이 우연은 아니다. 우리 대전도 뭔가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밑거름을 제공하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대전 방문의 해를 맞아서기도 하고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축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중요한 건, 축제가 일회성 이벤트는 아니라는 점이다. 축제도 결과와 함께 과정을 중시하며 사람을 남겨야 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5. 대전 원도심 재생의 핵심 키워드가 ‘문화, 예술’이다. 사실 문화재단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행사를 지원하는 것 이외에 뚜렷한 구실을 보이지 않는다. 문화예술을 키워드로 펼치는 대전 원도심 문화재생을 어떻게 보는가.
대전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문제가 많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플레이어가 아니다. 우리는 치어리더다. 우리가 프레임을 다 만들어서 하향 전달하고 돈을 주면서 ‘이렇게 하라’고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문화예술을 도구화하는 것이고 문제가 있다.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지자체가 하는 걸 따라한다. 전형적인 탁상 문화 행정이다. 사람이 좀 오고 언론을 좀 타면 그것이 답이라고 생각하며 모두 달려든다. 냉철하게 반성해야 한다.
사회 혁신 가치와 삶의 질서를 고려하지 않고는 원도심 공동체가 살아날 수 없다.
문화도시 만들기에 중추적인 역할은 대전문화재단이 해야 한다. 문화예술이 단순히 도시 재생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획부터 업자 수준에서 대행하지 않고 시민 영역의 활동가와 기획자, 특히 시민이 함께해야 한다. 우리가 계획하는 ‘시민 큐레이팅’ 사업도 시민이 직접 설계에 참여해 보자는 취지다. 시민참여를 단순히 실기 체험 교육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5~10년 긴 시간이 걸려도 시민이 함께 참여해 도시 기획자와 이론가, 건축가, 디자이너, 작가 등과 함께 공부하고 기획하면서 경험해야 한다. 시민이 제안하는 사업이 드로잉이나 사진 작품 등으로 나올 것이다.
시민 입장에서는 삶의 전환기에 문화예술이 새로운 삶의 동기를 부여해 주는 걸 직접 체험할 것이며 외로움에 관한 문제, 세대 통합 문제 등을 해결해 줄 것이다. 사회적 가치와 결합하는 것이 결국 경영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6. 개인적으로 대전문화재단이 벌이는 사업 중 아티스타, 아티언스 대전은 깊은 인상을 준다.
반면에 명확한 성과를 제시해 주지 못하는 듯해 아쉬움도 있다.
아티언스 대전은 구체적인 플랜을 세워서 양적 질적으로 심화 확대할 것이다. 올 가을에 첫 파일럿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도록 움직이고 있다. 공공출연연구소에서 작가가 레지던시를 하며 과학자, 기술자와 협업하는 것이 기본 꼴이다. 그동안 전문가가 없어서 작가와 연구원의 갭이 너무 컸다. 2011년부터 해 온 아티언스 대전은 이미 전국에서 주목하는 융합형 프로젝트로 대전문화재단의 대표 브랜드 사업이다. 경험과 노하우는 잘 축적되었다. 앞으로 전문 코디네이터가 개입해서 시민 곁으로 확대되어 다가갈 것이다. 융합형 인간이 총괄 코디네이터로 배치되어야 한다. 현재 열심히 준비 중이다. 심부름하는 코디네이터가 아니라, 관리하고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심화과정이라고 본다. 더 자유롭게 시민이 참여하고 예술가와 기획자가 협업하는 특별전으로 키울 것이다.
대전을 대표하는 축제가 없다. 대표 브랜드 축제라고 하면 최소한 30만 명 이상은 와야 한다. 인근 청주에 공예비엔날레도 짧은 시간에 자리를 잘 잡았다. 아티언스 대전은 대전 대표 축제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7. 한동안 공석이었던 문화예술본부장 자리를 채우기 위한 공모가 진행 중이다. 대표이사만큼 중요한 자리인데,
적절하게 생각하는 인재상이 있는지 궁금하다.
채용 시기가 늦어진 것 때문에 말이 좀 나왔는데, 유임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그건 행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조직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1월 중순까지 진행한 직원들과의 심층 인터뷰도 조직을 파악하는 한 방법이었다. 문화예술본부장도 중요하지만 현재 우리 조직에 필요한 것은 조직의 확대 개편이다. 타 광역시 문화재단과 비교해 보아도 과도하게 왜곡 축소되었다. 기존 조직 개편이 주먹구구로 이루어진 결과다. 대표이사 부재 상황에서 직무대행을 맡은 사람이 조직을 하나로 축소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다. 기능적 개편은 꼭 필요하다. 대전문화재단이 6개 문화 기관을 위수탁 받아서 운영하고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기능적 개편을 우선적으로 하고 확대 개편하는 수순으로 고려하고 있다. 현재 대전문화재단은 과도하게 경직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양성과 포용성이 중요한 문화재단이 그래서는 안 된다.
8. 그런 중요한 시점에서 이번에 채용하는 문화예술본부장은 더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문화재단 정책 추이 변화를 정확하게 읽어 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예를 들면,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시기다. 생활문화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예술인 복지와 시민 향유권도 강조된다.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문화 향유권이 보장되지 않는 분들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추이와 이슈를 정확히 이해 파악해야 한다. 유관 기관 사업에 참여해 본 사람이라면 더욱 좋겠다. 활동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문화예술 현장에 대한 명확한 이해도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생각하는 것이 문화적 도시 재생, 청년과 미래다. 이것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글 이용원
사진 대전문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