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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2호] 장어덮밥은 결국 못 먹었지만 이번 여행도 좋았습니다
장어덮밥은
결국 못 먹었지만
이번 여행도 좋았습니다
이주간의 나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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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시라카와고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창 밖 풍경이 한적한 시골 모습에서 우거진 숲으로 변하고 눈이 쌓인 면적이 늘어간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 솟구치는 설렘을 애써 가라앉힌다. 기대한 만큼 실망도 커지니까 너무 기대하지는 말아야지. 곧 도착할 목적지를 앞두고 시작되는 긴 터널에서는 얇은 눈송이들이 버스를 반기며 불어온다. 다시 기대는 당연하게도 고개를 쳐들고. 터널이 끝나자 시작된 순백, 눈, 나무, 청록색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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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1월 9일 출국하여 23일 입국으로 나고야 3박-가나자와 6박-시라카와고 1박-다시 나고야 4박 일정이었다. 보통 나고야는 3박 4일, 나고야 근교인 가나자와, 시라카와고는 1박 혹은 당일치기에 그치는 일정들을 어마어마하게 늘려 다녀왔다. 그중 가나자와, 시라카와고는 그 기간이 적당했으며 나고야는 길었다. 작은 도시를 길게 느릿하게 품고 싶었다. 사실 나고야 여행이라 이름 붙였지만, 목적의 팔 할은 시라카와고였다.
그럼에도 시라카와고가 1박뿐인 것은 극성수기인 탓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1박 이상은 감당하기 힘든 숙소비와 사실상 극성수기라는 것을 생각 못 하고 예약을 미루다 시라카와고 인근 숙소가 다 나갔다는 걸 뒤늦게야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지인에게도 인기가 많아 거의 사계절 내내 성수기라는 이곳에 당일치기로 갈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취소한 숙소가 뜨지 않을지 며칠을 확인했고 다행히도 좀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무사히 예약할 수 있었다. 완벽히 시골이라 별다른 설명도, 가는 방법도 제대로 나오는 게 없어 당일 직전까지도 불안에 떨었는데 여차저차 안내소에 물어 여러 편의 버스를 무난하게 예약할 수 있었다.
3
시라카와고는 일본 기후현에 위치해 있는 갓쇼즈쿠리 마을이다. 갓쇼즈쿠리는 일본의 폭설지역에서 볼 수 있는 주택 양식으로 산악지대에 내리는 많은 눈을 버틸 수 있게 만든 지붕 형태를 말한다. 갓쇼즈쿠리 마을은 그 독특한 지붕 양식 덕에 동화 속 마을 같은 모습을 띤다. 시라카와고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록되어 있다. 삿포로에서 닝구르테라스를 못 간 한은 시라카와고에서 완벽하게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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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터널이 끝나자마자 설경이 이어지고 눈발이 거세게 날린다. 드디어 시라카와고!!! 가나자와에서 시라카와고에 1시간 10여 분이 걸려 도착했고, 도착한 시라카와고는 눈이 그칠 줄 모르고 내린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이미 쌓인 눈 위에 또 눈이 쌓인다. 관광객이 만든 눈사람 위에도 눈이 쌓인다. 각국의 사람들이 섞여 이 마을을 채우고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누르니 이런 날씨에도 마을은 꽤 활기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은 진리다! 한껏 기대에 부푼 내 앞에 등장한 시라카와고가 이리도 칙칙하다니. 아! 뭐지? 하는 느낌. 안개 때문에 멀리 병풍처럼 깔린 설산이 흐릿하고 마을 전체가 뿌옇다. 사람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라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덮인 땅은 별로 없다. 출입을 금지시킨 곳에서도 심심찮게 발자국이 찍혀 있어 마을이 훼손되겠다 싶었고, 동시에 기대했던 것과 다른 모습에 약간 김이 샜다. ‘그래, 위에서 내려다보자’ 하며 전망대에 갔으나 사람도 많거니와 역시나 기대치에 못 미쳐 사진에 대충 담고는 내려와 버렸다. 자주 찾아봐서인지 풍경은 사진으로 접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고, 꼭 그만큼 예뻤다.
이곳저곳을 둘러보기에 너무 추웠다. 대충 돌아다니다 그렇게 첫날이 무심하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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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은 맑게 갰다. 이제야 동화 속 요정마을 같다. 오전 해가 들어 마을 전체를 비춘다. 햇살에 눈이 녹고, 눈이 녹아 물이 떨어지는 갓쇼즈쿠리는 따뜻한 빛을 띤다. 여기저기 안 보이던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에 들어오고, 전날 운영하지 않던 많은 가게가 문을 활짝 열었다. 푸릇푸릇한 잎과 꽃이 핀 화분들도 밖에서 해를 쬔다. 여기저기 방문해 구경했다. 무엇보다 시라카와고 마을 경치를 보며 마시는 커피는 최고였다.
이곳 모든 이가 ‘키요츠케테’라며 사람을 전송한다. 눈이 많이 내리니 조심해서 가라는 인사인데 가는 이의 안녕을 바라는 인사가 좋았다. 숙소에서도 그렇고, 이곳에서도 그렇고, 이전에 가나자와에서도 그렇고 시골 인심이 느껴졌다. 사람과 장소 모두 아기자기하고 귀여웠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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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가나자와, 시라카와고는 관광으로도 추천하고픈 도시다. 개인적으로 여행지에서 누구를 만나느냐는 그 여행의 만족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떠날 때 따로 간식을 챙겨 주시며 얘기를 나눴던 가나자와 카페 할아버지, 가지조림을 더 권하던, 한국드라마를 좋아하던 시라카와고의 소바집 아저씨, 나고야성에서 우리 둘의 첫 투샷을 찍어 주신 할아버지는 계속 마주치던 우리에게 마술을 보여 주고 나고야성 씰을 선물해 줬다. 만나는 사람들은 그 장소의 특별한 기억이다. 장소를 통해 사람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사람에 대한 기억이 그 장소를 소환하기도 한다.
어릴 때 외가에서 커 그런지 각국의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께 약한 우리는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를 이들과의 이별에 진한 아쉬움을 갖는다. 그리고 그 마음은 그 도시에 투영돼 벌써 도시 자체가 그리워진다. 언젠가 다시 뵈러 간다 해도 그곳에 무사히 계실까, 그리고 거기 그곳은 참 예쁜 곳이었는데, 하며.
이곳도, 원래 있던 곳도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낯선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겪으며 돌아가 나도 내 사람들에게 잘해야지,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하면서도 곧 잊고 행동할 미숙함에 서글퍼졌다. 다시 안 올 시간 붙잡기를 반복하다 정신을 차린다. 내가 있을 곳에서 기다려 주는 이들을 위해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가야지. 늘 고마워해야지.
글 사진 김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