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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1호] 그래서 찍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그래서 찍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2018 토마토 영화 찍기로 결심하다
호기롭게 영화를 찍겠다고 결정한 후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월간 토마토 직원들은 영화 강의를 듣기도 하고, 영화도 함께 보고, 오디션도 보면서 여러 가지 준비를 했지만 영화는 결국 찍지 못했다. 11월에는 호기롭게 장비도 빌렸었다. 하지만 카메라 한 번을 켜보지 못하고 반납했다. 월간 토마토 직원들은 몰아치는 일에 휩쓸렸고, 몰아치는 파도를 이기고 이끌어 갈 선장은 없었다. 영화를 찍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12월 24일,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월간 토마토 직원들이 모였다. 그들은 이대로 영화를 포기할까.
땅콩 우리는 왜 영화를 못 찍었을까.
포포 가장 큰 문제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는 거야.
얌얌 시간이 지나면서 열정도 떨어졌지.
피아 아 근데 사실 찍고 싶진 않은데, 들인 시간이 아깝긴 했어.
개주 1년 안에 하는 건 무리였다는 생각도 들어.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바빠지잖아. 우리한테 1년은 장기가 아니야.
지디 나는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영화를 왜 찍고 싶어? 그냥 재밌어서? 사실 돈도 안 되고, 시간도 다들 부족하잖아.
개주 재밌어서 찍고 싶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지!
지디 근데, 그러려면 근무시간 이외에 촬영을 진행하는 게 맞아. 이 영화를 찍으려면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영화를 찍을 각오가 있어야 해. 그런 각오가 없으면 찍을 수가 없어.
얌얌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마음이 하나가 아니라는 거야. 무언가 하나의 결과물을 향해서 달려가는데 다들 마음이 달라. 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
포포 아, 그리고 우리의 문제가 또 생각났어. 보통 영화는 감독이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에 관련한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잖아. 우리는 그런 감독이 없었어. 그것도 문제였지.
개주 그런데 누구 한 사람한테 맡기기는 사실 어렵긴 하지.
그동안 다들 짐짓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쉽게 꺼낼 수 없었던 말들이 오갔다. 다소 격해지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영화를 정말 찍고 싶고 찍어야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들인 노력과 시간이 아깝다는 것이 전반적인 의견이었다.
땅콩 진정하고 일단, 우리 이번 영화 프로젝트에 대한 총평을 한마디씩 하자.
얌얌 음. 선장은 없는데, 사공만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가다 못해 우주로 날아간 느낌이야. 우주에서 블랙홀을 만나 어디론가 사라진 느낌.
포포 우선 카메라라도 켜 보자. 불가능하면 핸드폰으로라도 찍자.
개주 우린 시작도 안 하고 엄살을 부린 걸지도 몰라.
지디 나는 몰라. 할 말이 없어.
키키 사실 시작부터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어. 음, 만약에 영화를 만든다면 두 명으로 팀을 짜서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그 두 사람이 진행할 수 있게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 다수의 의견이 들어가면 될 것도 안 되고. 시나리오도 복잡할 거 없이 실제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담아서 1분 컷으로 찍는 게 좋을 거 같아.
라임 나는 잘 모르겠어. 그런데 뭐든 나왔으면 좋겠다. 뭔가 나올 듯하다가 아무것도 없어서 아쉽긴 했어.
이들에게 남은 숙제는 영화촬영 진행 여부다. 사실 영화는 찍지 못했고, 더 이상 왈가왈부할 것 없이 “그래서 우리는 결국 영화를 찍지 못했다”로 끝맺어야 하지만, 첫 발자국도 떼지도 못했다는 아쉬움이 이들을 사로잡는 듯했다.
포포 찍고 싶은 사람들끼리 찍을까?
피아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해?
포포 그냥 한번 해 보는 거지 뭐. 안 되면 뭐, 그냥 편집은 어플로 해야지.
개주 이런 생각도 들어. 영화까진 못 만들 수 있어. 그런데 나는 한 번 찍어보기라도 해 보고 싶어.
포포 나도! 나도 그 마음이야. 뭐라도 해 보고 싶어. 우리 지금 아무것도 없는데 하느니 마느니 이러는 거잖아. 영화 찍게 되면 내가 감독이랑 시나리오 할게! 대신 나한테 권력을 줘. 그럼 내가 할게! 내가 하지 뭐.
얌얌 아휴, 정말!
포포 근데,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출연하는 건 괜찮아? 간단한 연기라든지. 뭐 연기까진 아니어도 대사 한마디씩 하는 거는 어때? 시간 쓰는 게 어려운 거니까 영화는 하고 싶은 사람이 시간을 쓰기로 하자.
지디 그럼 결국 전 직원이 다 해야 하는 거 아냐?
포포 중심이 되는 팀을 꾸리고 다른 사람들은 최대한 시간 쓰지 않게 해 주면 되지.
땅콩 이쯤 되면, 그냥 다 찍는 건데?
피아 이게 뭐야! (한숨) 나는 출연을 하고 싶진 않고, 편집 정도는 뭐….
포포 근데 시간을 좀 길게 잡고 가야 할 거 같아. 그래 결정 났어! 영화 찍어 보자.
개주 그래. 맞아. 시간이 좀 더 필요해.
얌얌 근데 만약에 찍는다고 해 놓고 퇴사하면 어떡해?
포포 개주 땅콩 당연히 와야지 회사로! 찍으러 와야 돼.
전 직원이 참여하지 않았지만, 40여 분간의 토론 끝에 영화는 찍는 것으로 결론 났다. 모두를 만족하게 만드는 속 시원한 결론은 아닌 듯했다. 해 보고 싶은 것과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 이들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이다. 다들 여전히 아리송하지만, 일단 어떻게든 해 보겠다는 포포의 의지를 아무도 꺾을 수 없었다. 포포, 개주, 땅콩과 함께 이 자리에 없던 낙타와 자무쉬가 이끌어갈 듯 보였다. 참고로 낙타와 자무쉬는 이 자리에 없었다. 어쨌든 아직 토마토의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언젠가 어느 날, 기억에서 희미해질 때쯤 찾아오겠다. 그 어느 때보다 독한 질척임을 남기며 2019년에 한 번쯤은 찾아올 것이다.
글 이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