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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1호]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동네 산책을 나섰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동네 산책을 나섰다
이주연 기자의 필름로드
홍도동 산책
대학에 입학해 한 학기는 기숙사 생활을 했다. 모든 곳이 그러하듯 우리 기숙사에도 통금과 규율이 존재했고 나는 그것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한 학기 동안 차곡차곡 벌점을 쌓았고 강제 퇴사까지 남은 벌점이 3점쯤 됐을 때, 아빠의 자취 선고로 다행히 퇴사는 면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기숙사 생활비가 비쌌던 탓에 내린 아빠의 결정이 나의 걱정을 덜었다. 2학기에 자취를 시작해, 그 해 겨울 초입에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해 친언니와 함께 살았다. 언니는 결혼을 하며 홍도동 우리 집을 떠났고 나는 남아 꼬박 5년을 지금까지 같은 곳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사실 아직 정확한 이사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저 이사에 앞서 내 뜻대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 셈이다. 나름의 의식을 치르듯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나섰다.
처음 이 동네에 살기 시작했을 때는 몇 번 길을 헤맸다. 대학로를 제외하고는 온 동네가 죄다 골목이니 그 길이 그 길 같았다. 평소 나름 길눈이 밝다고 자부했는데, 막상 생소한 곳에서 살려니 여행과는 또 다른 낯섦이었다. 며칠 지내보니 집 가는 길은 익숙한데, 그 옆 골목은 또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산책을 다녔다. 이 동네가 ‘우리 동네’가 될 수 있도록. 나중에는 눈을 감고 집에 가 보는 이상한 짓도 해 봤다.
우리 동네 냥아치 무리를 만난 곳
여덟 마리 정도가 이 길에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며 그르릉 소리를 냈다
조금 무서워져서 벽에 바짝 붙어 길을 벗어났다
우리 집은 아는 사람은 다 한 번씩 이야기할 정도로 외졌다. 대학로와 5분 거리도 안 되는 곳이지만, 학생들이 거주하는 원룸촌과는 달리 내가 사는 곳은 연령대가 다양하다. 그만큼 이상한 사람도 많이 살아, 사건사고도 꽤나 있었다. 몇 번인가 개인적으로 의심되는 일을 겪고 나니 밤에 혼자 집에 가는 길이 무서웠다.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신 날에는 취해 비척대며 걷다가도 우리 집으로 향하는 길 만큼은 맨 정신인 것처럼 뚜벅뚜벅 잘도 걸어갔다. 최근에는 우리 집 바로 앞 원룸에서 흉흉한 일이 생겨 두려움은 배가 됐다. 그래서 몇 번 우리 집 앞 원룸, 그러니까 사건이 있었던 옆 건물 옥탑방에 사는(워낙 한 블록 안에 원룸이 많으니 참 설명하기가 어렵다) 학교 선배에게 빌빌대며 부탁했다.
“내가 집에 들어가서 불 켜고 창문 열 때까지 집 밖에서 확인해야 한다! 꼭!”
선배는 날 놀리듯 낄낄대면서도 그 부탁을 잘 들어줬다.
우리 동네에는 없는 게 없다. 아파트도 있고, 빌라도 있고 작은 시장, 무당집, 헬스장, 고물상 등 별의별 게 다 있다. 심지어 청와대도 있고 백악관도 있고, 뉴욕도 있다. 물론 죄다 원룸 이름이지만 말이다. 정말이지 온갖 이름을 다 붙였구나 싶어, 원룸 이름을 살피며 걷는 날도 종종 있었다. 어느 해에는 그 당시 잘 나가던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던 강아지의 이름을 딴 원룸이 불쑥 생기기도 했다. 너도나도 원룸 건물을 세우는 탓에 하루가 멀다 하고 땅이 울렸다. 그게 내 아침 모닝콜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 발견했을 땐
아직도 비디오 가게가 있나 싶어 신기했는데
여전히 영업중이라 한 번 더 놀랐다
결국 비디오는 한 번도 빌려 보지 못했다
가장 좋아했던 골목 어귀에 작은 이발소가 하나 있었는데, 오랜 시간 그곳에 있었던 것 같았다. 정말 작은 공간에서 손님 한 명 들여 놓고, 이발사 아저씨가 느릿느릿 손을 움직이는 모습을 문틈으로 슬며시 보다 지나가곤 했다. 그 이발소와 아저씨의 모습은 내가 이 동네에서 가장 좋아하던 풍경이었다. 그 당시 이발소는 문을 닫았고, 그 자리에 꼬치집이 생겼다가 지금은 또 찜닭집으로 바뀌었다.
동네는 조금씩 계속해서 변했다. 생겼다가 사라지는 상점도 많았는데, 금방 생기고 사라지는 것들이 가끔은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변하는 거라곤 나이와 계절뿐인 시골에서 자랐던 탓에 이곳의 변화가 즐거우면서도 마음 한편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졸업 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동네를 걸었다. 운전을 하지 못해 믿을 거라고는 내 튼튼한 두 다리뿐이었기에 무작정 걸었다. 무엇보다 그냥 걷는 게 좋았던 시절이다.
해질 무렵 가장 좋아하는 골목을 걸으면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골목을 좋아한 이유는 별 거 없었다. 그저 해지는 저녁, 붉게 물든 동네가 예뻐서였다. 종종 모습을 드러내던 무당집 백구를 보고 인사하는 일도 즐거웠다. 언제인가는 노래를 들으며 그 골목을 걷다 플레이리스트에 언제 추가했는지도 모르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마이 앤트 메리’의 노래 <락앤롤 스타>였는데, 노래와 노을이 뒤섞여서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설렜다. 그래서 그 골목을 걸을 때면 꼭 <락앤롤 스타>를 듣곤 했다.
너는 내게 말했지
꿈꾸던 모든 것 그저 꿈일 뿐이야
모두 잊으라고
그것 봐 우린 rock the heaven future
그 모든 것들을 다 가질 거라 내가 말했잖니
이제 넌 내 목에 걸린 목걸이를 봐
이제 난 락앤롤 스타가 된 거야
나나나나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춤추며
나나나나 아무런 걱정 마
이제 난 락앤롤 스타야
- 마이 앤트 메리 <락앤롤 스타> 가사 중에서
생각해 보니 일을 시작하고는 한 번도 제대로 동네를 걸었던 적이 없다. 홍도동에 살며 산책은 나름의 낙이었지만, 일하면서 그 기쁨도 잊었다. 다시 걸으니 ‘그래, 이 기분이었지’ 하고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동네를 뛰어다녔던 일도 더러운 골목 계단에 앉아, 친구와 사이좋게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고 시시덕거렸던 무더운 여름밤도 하나 둘 떠올랐다. 이제 홍도동을 떠나면 이 산책이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아쉬워 동네를 한참 어슬렁거렸다.
글 사진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