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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0호] 천천히 걸어도 좋은 그 시간을 함께 나누며
천천히 걸어도 좋은
그 시간을 함께 나누며
솔가와 이란
솔가와 이란, 반가운 얼굴이 다시금 이데를 찾았다. 2015년 여름 혹은 가을의 장날에서, 2016년 ‘우아시풍’ 북콘서트에서, 그리고 2018년 가을의 끝자락에서. 솔가와 이란과 이데가 함께였다.
해 지기 전 이데를 찾은 그녀들이 한구석, 책장을 보고 앉는 자리에서 쉬는 모양을 바라봤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끝내 물어보지 않았지만 공연 중에 묻지 못한 질문의 답을 들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저 자리에 잠깐 앉아 있었는데, 마치 이 넓은 공간에 혼자 있는 듯, 마치 제가 다른 세상에 있는 듯 저 안락한 공간이 외부를 차단시켜 주었어요. 저 자리는 누구의 의견이신가요? 저 의자는 누구의 아이디어이신가요? 너무 좋았어요.”
토마토 식구 누군가가 의자는 전 건물주님의 선물이라 답변하자 좌중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이데는 저희들이 좋아하는 장소 중 한 곳이에요. 대전에 가면 꼭 들러 커피 한 잔이라도 하고 와야지 싶은 곳이에요. 그래서 이번 공연이 무척이나 기대되었어요.” 이데가 장소를 이전하며 새 단장을 한 후 처음 들른 그녀들이었다. 그렇게 이데와 재회의 인사를 나누고, 조용하되 발랄하고 나지막하나 힘 있는 공연이 시작됐다. 똑같이 눈을 감고 부르는 그녀들은 어딘가 모르게 닮았다.
서글서글하고 따뜻한 그녀들이 자리하고, 관객석도 조금씩 채워 간다. 공연 전 한껏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자 그녀들은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말을 건다. 그녀들의 그런 노력에 관객들이 조금씩 풀어진다.
“덜 어색해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다음은 이 곡입니다. ‘발걸음 가벼웁게~’ 같이해 주시면 돼요.”
발걸음 가벼웁게 룰루랄라
발걸음 가벼웁게 룰루랄라
따라 부르며 동화되는 가수와 관객들이다. 바깥의 찬 기운을 차단시키고 남은 서늘함을 따스함으로 덥힌다. 노래는 그녀들과 닮아 있다. 꾸밈없고 진솔하여 즐겁게 따라 부를 수 있다.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다시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흘러나온 노래가 사람들을 위로한다. 그 시간은 마법과 같아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 부르며 미소 짓는다. 억지로 엄마를 따라 나왔을 법한 어린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따라 부르고 박수를 치고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는 수줍음을 탄다.
솔가와 이란은 한 사람 한 사람 방문한 사람들의 눈을 맞추며 말을 건넨다. 아무것도 문제될 것이 없는 시간이다. 그녀들이, 노래가 그렇게 만들었다. 관객들의 편안한 표정이 서로가 같은 걸 만끽하는 중임을 알린다.
천천히 가만히 걷는 모양을 보여 주는 ‘거닐다’라는 말로 앨범을 낸 그녀들이 <천천히 걸어도 좋은>이라는 공연 제목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한다. 공연 제목에 참 걸맞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고 하며 가제 ‘꾸나’라는 노래를 들려준다. ‘친구에게, 가까운 사람에게, 또 나에게 조금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좋지 않을까’ 하며 만든 곡이라 한다. 가사를 잘 들어보고 혹시 떠오른 제목이 있다면 힌트를 주면 좋겠다고 권한다.
“어느 곳이든 그 공간에 그냥 들르게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오래 머물게 되는 건 그곳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에 달려 있으니까요. 그래서 토마토 식구들과 이데가 괜히 저 혼자 각별한 것 같아요.”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노래에도 그녀의 생각들이 담겼다. “특히 이 노래가 공간에 걸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노래를 들려드리면 되겠다’, ‘아, 여기서(이데에서) 이렇게 놀면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노래를 같이 나누려고 해요. 이란 씨가 만든 노래 중에 ‘빈둥빈둥’이라는 노래가 있거든요. (이데가) 참 정말 빈둥댈 수 있는 좋은 공간인 것 같아요. 요즘은 정말 빈둥댈 수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은데, 우리들은 그런 시간을 두려워해요. 주어진 일이 없으면,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요즘인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제가 만들어 보게 된 곡입니다. 긍정의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빈둥거리는 시간이. 혼자만의 빈둥거리는 시간을 잘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사진 김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