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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0호] 만유인력 설화의 시작
만유인력
설화의 시작
만유인력 책방 이야기
책방은 순항 중입니다. 월간 토마토에 책방 만유인력의 생존을 신고합니다.
책방의 폐업이 속출한다는 소식이 뉴스 속보로 들려오는 가운데 저희 책방은 아직 안개 속을 여전히 순항 중입니다. 물론 안개 속인데도 순항 중이란 말입니다.
‘우연히 만났던, 그대는,
안개 속에 보았던 불빛인가요?‘
(아마츄어증폭기의 노래 〈졷팅닝닝〉의 가사 중에서)
그 말은 곧, 아직 책방의 임대료는 내면서 더 버텨 볼 수는 있겠다는 말입니다. 책과 음반이 조금씩 팔리고 있다는 말인데 물론 장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터무니없는 매출이지만 판매량의 많고 적음 또는 수입의 증가라는 수치상의 객관적 데이터보다는 책방을 따듯한 온기로 채워 주는 사람의 왕래가 서서히 많아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난봄, 책방은 예술인복지재단의 파견예술인사업에 참여하여 예술인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처음이라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다행히도 6개월의 만남, 그 결과는 지난 10월 말에 ‘그림자-극’이라는 형태로 표출되었습니다. 극의 이야기는 ‘만유인력의 설화’로 다 함께 머리를 맞대며 공동의 이야기로 창작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때는 근 미래 지구 자기장 변화의 영향으로 사람이 아니라 책들이 책방으로 걸어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 만유인력 설화의 시작입니다. 책은 저마다의 ‘자기’-자기장의 ‘자기’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자기’이기도 하고요-이야기를 담고 있었고 이야기를 들어줄/사갈 사람을 찾아 책방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사갈 사람을 지금까지 찾지 못해서 자기 이야기를 함께해 줄 사람들을 애타게 찾아온 책들이었어요. 힘겹게 만리동 고갯길을 걸어서 꼭대기에 있는 책방에 들어온 책들은 책방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신비로운 흰색 가루가 스며든 채 책장에 꽂히며 세월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발효되어 ‘책-빵’이 되었어요.
그래서 책방은 향기로운 책-빵의 냄새로 가득 차기 시작했어요.
한편 책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손기정 기념공원이 있었어요. 손기정 기념공원 한복판에는 손기정 선생님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고요. 동상은 몇 년 전부터 그곳에 세워져 있었는데 몇 년을 서 있다 보니 그만 하도 배가 고팠던 거예요. 그러던 가운데 책방으로부터 공원까지 흘러내려 온 ‘책-빵’의 냄새가 너무나 달콤해 그 냄새에 취해 냄새의 근원지인 책방으로 뛰어 들어가 책-빵을 허겁지겁 뜯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달콤한 책-빵의 맛과 온기는 바로 여러분의 이야기로부터 비롯되었죠.”
그러면서 노래가 흘러나오죠. ‘손기정, 손기정, 고개를 넘어간다’
이걸 직접 보셔야 하는데 아쉽네요.
마을 축제에서 한 번, 만유인력 책방에서 한 번, 총 두 번 상연했습니다.
책방이 있는 이 동네도 재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재개발을 찬성하는 쪽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재개발이 그렇게 빨리 이루어지진 않을 거 같아요.
우리 부부가 다른 예술인들과 함께 살고 있는 만리동예술인협동조합주택이 자리 잡은 만리동은, 이사해 와서야 알게 되었어요, ‘도심회춘(도시재생)’이라는 명명 아래 동네가 싸그리 다 없어지고 말았다는 사실을요.
동네가 없어지고 공사가 시작된 몇 년 후 이웃 동네의 조망권을 해치며 25층 고층 아파트 단지로 새롭게 동네는 채워졌습니다. 도심은 이렇게 젊음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책방이 있는 이 동네(아현동)는 제발 그렇게 되지 않길 바라고 있어요.
그런 바람으로 저는 가을에 이 동네 주변을 다니며 다원예술실험극을 펼쳐 보이기도 했어요. 어쩌면 이 작고 허름하고 낡은 동네가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작은 책방을 이곳에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여름 예술인들과 동네 주민들과 함께한 동네라디오해적방송 92.9 MHz 〈만리동 콜링 유〉의 시그널송을 부르며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당신 안에서 나는 정말
사라지지는 않을 거야.
영원을 향해 날아가리-
라 만리동 콜링 유”
(https://soundcloud.com/yamayamayamayama/mallidong-calling-you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12월 한 달 동안은 들으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글 한받(음악가·야마가타 트윅스터·만유인력 책방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