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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0호] 필리핀에게 보내는 조금 늦은 인사
필리핀에게 보내는 조금 늦은 인사,
마음이 모여 떠난 여행으로 시작된 작은 변화
나의 첫 배낭여행이 생각난다. 스물두 살, 나보다 두 살 어린 여동생과 처음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가던 비행기 안에서 나는 울었다. 경유로 항공권을 끊은 탓에, 첫 여행지인 스페인에 가기 위해 태국 공항에서 서툰 영어로 길을 물어 가며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한국에서 태국까지 가는 비행기 안과는 달리 태국에서 마드리드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는 외국인으로 가득했다. 승무원마저 태국 사람과 스페인 사람이었으니 한국인은 정말 나와 여동생이 전부였다. 고작 두 살이 많을 뿐인데, 낯선 곳에서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동생이 잠든 틈을 타 눈물을 훔쳤다.
지난 8월 2일부터 11일까지, 열흘이라는 시간을 필리핀에서 보냈다. 청소년여행학교에 참여한 한국 아이들 여덟 명, 나눔여행을 통해 처음으로 마을 밖을 떠난 필리핀 아이들 여덟 명과 함께였다. ‘이제 집에 좀 붙어 있어라, 곧 있으면 콜럼버스가 되겠다’라고 아버지가 말할 만큼 이 세상, 저 세상을 돌아다닌 탓에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처음으로 아이들의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한번 두려움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나만큼이나 아이들의 표정도 경직되어 있었다. 중2병에 걸린 아이들은 아닌 척했지만, 내가 스물두 살 때 지었던 표정을 아이들도 짓고 있었다.
나가카단 계단식 논 가는 길
첫 번째 작은 변화, 공감만세
이번 여행은 지금까지의 청소년여행학교와는 조금 달랐다. 공공재인 여행을 더 많은 이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게 한다는 공감만세의 소셜 미션에 따라 나눔여행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여행이라는 기회를 얻지 못한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 주는 나눔여행을 위해 공감만세는 창업 시기부터 다양한 모금 활동을 이어 왔다. 공감만세와 함께 공정여행을 떠났던 이들은 여행을 마치며, 재환전이 어려운 적은 금액의 현지 통화를 후원금으로 내밀었다. 사단법인 모먼트 후원자들도 뜻있는 활동을 위해 기금을 모았고, 카카오에서 진행하는 가치같이 캠페인을 통해 많은 후원자가 십시일반 여행 경비를 모았다.
많은 이의 도움으로 공감만세가 2018년 첫 나눔여행을 떠났다. 공감만세가 처음으로 선택한 아이들은 우리의 어두웠던 한 시대의 모습과 닮아 있는 바공실랑안의 청소년들이었다. 1988년, 대한민국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는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88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희망찬 가능성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1945년도에 광복을 맞이하고, 길었던 내전을 겪은 후 1953년도에 휴전을 체결한 피폐해진 나라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 냈다는 증표가 되는 기회였다. 하지만, 같은 땅, 같은 도시에서 살아가던 누군가는 참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올림픽 개최를 이유로 김포공항과 올림픽대로가 지나는 국회대로 주변 판자촌이 철거됐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과 오정동 일대도 이러한 현실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끝으로, 또다시 끝으로 밀려났다.
바공실랑안 역시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한 곳이다. 도시 정화라는 이름으로 밀려난 이곳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교육이 보장되지 않는다. 작은 제 몸 하나 뉠 집이 없어 거리를 제집처럼 생각하는 아이들도 많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옛말처럼, 마을 안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꿀 수 있는 꿈은 제한적이었다.
바나웨 계단식 논 전망대
두 번째 변화, 필리핀
이번 나눔여행을 통해 필리핀 청소년 여덟 명과 한국 청소년 여덟 명이 만났다. 나눔여행에 참여한 필리핀 아이들은 한국에서 여행을 떠난 아이들을 위해 홈스테이 주인 겸 현지 인솔 짝꿍이 되어 주었다. 현지인과 친구가 되어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마음을 교류하는 청소년여행학교에 적합한 형태였다. 아이들은 어른의 우려보다 빨리 친해졌고 하룻밤 사이에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꾀고 있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여행을 떠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필리핀 사람인데도 알지 못했던 새로운 필리핀을 봤어요. 여행을 통해 왜 우리가 우리의 문화를 지켜야 하는지 알게 됐죠.”
수줍음이 많은 알렉스는 처음으로 바공실랑안을 떠나 필리핀의 키앙안과 바나웨를 방문했다. 아이들이 방문한 두 마을은 바공실랑안과 닮은 부분이 많은 곳이다. 이곳에 사는 이푸가오족 역시 삶의 터전을 찾지 못해 산으로, 더 깊은 산으로 밀려난 사람들이다. 가까스로 깊은 산에 정착한 이푸가오족은 특별한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척박한 산을 일궈 계단식 논을 형성했다. 그리고 이 논은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 불리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등재 후,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으며 무분별한 여행으로 계단식 논이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농업을 버리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관광 산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계단식 논은 금세 빛을 잃어 갔고 현지인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도 희미해져 갔다. 그 여파로 유네스코 등재 이듬해, 계단식 논은 곧 사라질 문화유산으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문제를 목도한 마을 젊은이들이 자신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SITMo라는 단체를 결성해 계단식 논을 재정비하고 공정한 여행 체계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논은 다시 생명의 빛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 덕에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역시 이푸가오족의 문화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알렉스가 이번 여행을 통해 배운 건 자신의 문화와 역사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다. 어쩌면 4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그리고 정부의 결정에 따라 황무지로 떠밀리듯 정착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배움이었는지도 모른다.
두잇마을 숲
세 번째 변화, 아이들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어요. 새로운 경험이고 이런 기회를 얻게 되어 기뻐요.”
여행 중 열여덟 번째 생일은 맞이한 허나니는 그 누구보다 한국 아이들과 잘 어울리던 친구였다. 허나니의 생일은 여행 두 번째 날인 8월 3일이었다. 기쁜 일이 있으면 콩 한 쪽이라도 나눠 먹어야만 하는 필리핀 사람답게 허나니는 우리를 집으로 초대했다. 급작스런 초대에 한국 아이들은 마을에서 가장 맛있다는 베이커리를 찾아 케이크를 샀고 허나니를 따라 우르르 집으로 향하는 한 무리를 본 허나니의 할머니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허나니 집에서 한국 아이들이 처음으로 마주한 건 한국에서는 90년대에서는 보았을 법한 노래방 기계였다. 음악을 사랑하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파티 필수품으로 불리는 존재다. 필리핀 아이들은 허나니의 생일을 맞아 한국 아이들 앞에서 멋지게 노래를 불러 젖혔다. 이들에게 노래를 잘하고 못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한국 아이들은 그렇게 두 시간 동안 필리핀 친구들이 연 공연의 관객이 된 후에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우리가 만난 필리핀 아이 중 가장 음악을 좋아하는 건 바로 허나니였다. 가수를 꿈꾸는 허나니는 춤을 좋아하는 사촌 동생 저메인과 바공실랑안에 있는 학교와 농구장 등에서 종종 작은 공연을 열기도 한다. 허나니 역시, 많은 후원자의 도움으로 한국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
여행이 무르익어 가던 중, 허나니에게 꿈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허나니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말과 함께 이번 여행을 통해 새로운 계획이 생겼다고 말했다. 내년 초, 일을 위해 일본으로 떠난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에 한국에 들러보는 것이다. 서울에서 한국 친구들의 문화를 보고, 지금보다 더 큰 세상을 만나 보고 싶다.
열흘간의 꿈같은 여행을 마치고, 아이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여전히 농구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여전히 작은 농담에 수줍은 미소를 건넨다. 하지만, 우리는 어제와 비슷한 일상 속에서 달라진 아이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이들은 어제와 다를 것 없는 바공실랑안이라는 작은 울타리에서 여행을 준비하고, 마을을 지키는 활동에 대해 고민한다.
겨울이 찾아옴과 동시에 2019년 1월 청소년여행학교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아이들과 함께 필리핀에 방문할 예정이다. 여행학교를 준비하며 놀라운 소식 하나를 들었다. 청소년여행학교 스텝으로 참여할 바공실랑안 멤버가 바뀌었다는 소식이었다. 새로운 멤버는 지난 나눔여행을 통해 만났던 허나니의 사촌 저미안이다. 스케줄이 맞지 않아 키앙안 여행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홈스테이를 하며 한국 친구들과 그 누구보다 가까워졌던 인물이었다. 한국 나이로 이제 열아홉 살이 되는 저미안이 새로운 스텝으로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이의 마음이 모여 시작한 나눔여행으로 바공실랑안에 사는 젊은이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많은 이들의 마음이 모여 시작된 여행으로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여행을 준비하며 바공실랑안에서 어떤 변화가 생겨날지 궁금하다. 어떤 일에든 ‘괜찮아’라고 말하는 필리핀 아이들이 어떤 괜찮은 일들을 벌이고 있을지 상상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작은 희망으로 떠난 나눔여행이 조금씩 세상을 제법 괜찮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 본다.
글 사진 오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