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0호] 아듀 장얼!

아듀 장얼!

장기하와 얼굴들 덕질 전문기자는

좋아 죽으러 갔습니다 

 

 

사랑해 마지않는 장기하와 얼굴들 공연에 다녀왔다. 해체 소식을 들은 뒤에 지금 많이 봐 둬야 한다는 조급함에 부랴부랴 움직였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공연 후기는 별로 쓰고 싶지 않았다. 나에겐 아직 세 번의 공연이 남았고, 개인적으로 땀도 빼고 눈물도 빼는 공연을 보고 싶었지만, 이번 공연은 그런 공연이 아니었다. 장얼을 100% 즐기기엔 조금 모자란 공연이랄까. 어찌 보면 이것도 내 잘못인 것이, 회사 내에 장얼 해체와 공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고 다녔다. 회의 도중 몰래 티켓팅을 시도하다가 이용원 편집장에게 딱 걸려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이 일은 크게 반성하고 있다). 어쩌면 이건 벌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오랜만에 보는 장얼 공연에 신이 나 부푼 마음을 안고 서울로 떠났다. 

 


 

 

'나 혼자' 다녀온 공연 

내가 다녀온 공연 <mono>는 7회차 공연 ‘나 혼자’였는데 이건 5집 앨범 수록곡 제목이기도 하다. 9월부터 11월 말까지 진행하는 공연이라 사실 언제든 갈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다 해체 소식에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으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정신 차리고 예매부터 해!
장얼 드러머 전일준의 열렬한 팬인 친구와 함께 예매에 도전했다. 주변 사람에게도 부탁해 가며, 이번 공연은 꼭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심기일전했다. 하지만 웬걸, 원래 장얼 공연 티켓팅이 이렇게 치열했었나. 한동안  티켓팅할 일이 없었던지라 내 손이 무뎌진 건지 실패했다. 망했구나 하는 생각에 급하게 새로고침을 눌러 가며 취소 표를 찾았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 만에 7주차 공연 ‘나 혼자’ 취소 표를 건질 수 있었다. 
친구와 함께 티켓팅을 했지만 친구는 평일 공연을, 나는 주말 공연을 예매했다. 둘 다 취소 표를 찾다 보니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렇게 친구가 나보다 하루 빨리 공연을 관람했고, 내가 직접 보고 들어야 한다며 자세한 후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피아노 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그, 이종민

 

내 귀에서 터진 흥

그리고 내적댄스 

장기하와 얼굴들 노래 중에 <좋다 말았네>라는 곡이 있다. 노래 가사 중에 “내 맘은 부푼 풍선처럼 빵 터져 버렸네”라는 내용이 있는데, 그게 딱 내 마음 같았다. 
장얼을 사랑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많지만, 그중 지금 하나 꼽자면 사람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매력이다. 흥이 넘치다 못해 터져 버려 방방 뛰고 내 멋대로 막춤을 추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노래들이 태반이다. 장얼 공연이 좋은 것도 그 이유에서고 말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이들의 흥 터지는 노래를 이번 공연에서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시작은 참 좋았다. 서른 명 한정 공연이기에 정말 초초소극장에서 이루어졌다. 취소 표를 주워 온지라 사실 가까이에서 보는 건 기대도 안 했지만, 생각보다 운이 좋았다. 몇몇 늦게 온 관객 덕에 두 번째 줄에 앉아 나의 사랑 키보디스트 이종민 가까이에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팬의 마음이란 너무도 알쏭달쏭한 것. 바로 앞에 있으니 떨리고 설레 몇 번 쳐다보지도 못했다. 
이번 공연 방식은 특이했다. 이름하여 고막라이브다. 팬들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 노래해 준다는 느낌을 가득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그래서 이들은 헤드셋을 준비했다. 각 자리에 헤드셋이 놓여 있고 팬들은 그 헤드셋을 통해 라이브를 듣는 방식이다. 워낙 늘 새롭고 실험적인 장얼이기에 무어라 하기 뭣하지만 조금 아쉽다. 
불편한 구석이 많은 공연이었다. 다리가 짧은 플라스틱 의자에 꼬박 두 시간을 앉아 있으려니 꼬리뼈도 아프고 좀이 쑤셔 몸을 배배 꼬아 댔다. 계속 앉아서 헤드셋을 끼고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잠도 솔솔 몰려왔다. 중간중간 대화 시간에 장기하 역시 ‘잠깐씩 조는 분들도 봤다, 다들 처음 헤드셋을 벗을 때 똑같이 한숨을 내쉬더라’라고 이야기했다.
아니 이 신나는 노래를 그냥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하다니. 내심 중간에 일어나 노는 시간도 있겠지 기대했건만, 의자가 낮고 자리가 협소해 그럴 수도 없었다. 장얼 팬이라면 주체 못할 흥을 가지고 있을 텐데, 이렇게 앉혀 놓고 귀에다가 노래를 속삭이니 죽을 맛이었다. 마음속으로 ‘제발 일어나 뛰어놀 수 있게 해 줘!’라고 몇 번이나 외쳤건만 그 텔레파시는 전해질 기미가 없었다. 일어나 춤을 추진 못하니, 귀에 착착 감기는 노래에 내적 댄스만 한바탕 저지르고 왔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물구나무도 서고 뒤구르기, 앞구르기 번갈아가며 다했다.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이 우릴 괴롭히려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래도 뭐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한가. 두 시간을 꽉꽉 채워 얼굴 실컷 보고, 노래 실컷 들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격스럽다. 
불편하긴 했어도 재밌는 구석도 있었다. 장기하의 쌩라이브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보컬과 드럼을 제외한 모든 연주는 헤드셋으로 소리가 출력되기 때문에 헤드셋 밖으로는 육성으로 들리는 장기하의 목소리와 드럼 두드리는 소리였다. 공연이 한창일 때 혼자 헤드셋을 벗으니 장기하 혼자 드럼 소리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양새다. 조금 무례를 범하는 기분이었지만 몇 번이고 헤드셋을 벗고 노래를 들었다. 마치 헤드셋을 썼을 땐 꿈속이고, 헤드셋 바깥은 현실인 기분이랄까. 어쨌든 그는 라이브도 참 잘한다.

 

갑자기 열린 사인회

 

너무 좋아 죽었다 

공연이 끝나면 늘 커다란 허탈감에 빠진다. 얼굴 한 번 더 쳐다볼걸, 더 신나게 놀다 올걸, 사랑고백 한 번 해 볼걸 하는 터무니없는 아쉬움과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기약 없는 사랑앓이만 남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이렇게 아쉽고 우울하기만 한데, 이 여운을 느낄 일도 올해까지라니. 평소보다 더 긴 허탈감이 이어졌다.
공연을 보고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얼이 SBS 라디오 방송 <두시탈출 컬투쇼>에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라디오를 들었다. 해체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고 멤버들이 소회를 밝히던 중 나의 사랑 이종민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좋아 죽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도 좋아 죽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너무 좋은 앨범을 만들어서 너무 좋아 죽었다고 말이에요.”
스튜디오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왔고, 너무 잘 맞는 표현이라며 다들 맞장구쳤다. 그 말에 나도 내심 그동안 놓지 못했던 미련의 끈을 놓을 수 있었다. 가장 아름다울 때 떠나는 것은 어찌 보면 대단한 축복이다. 10년간 장기하와 얼굴들은 원 없이 자신이 원하던 음악을 해 왔고, 그만큼 많은 사랑도 받았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떠나 각자의 활동을 하는 것도 참 멋진 일이고 결정이었겠다 싶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로 흥도 얻고 위로도 얻었던 시간도 묻어 두기로 했다. 물론 노래는 언제나 내 노동요이며 드라이브 플레이리스트 1순위이다. 언젠가 하세가와 요헤이(사람들은 양평이 형이라고 알고 있다)가 농담처럼 ‘내 환갑잔치에 다시 모여 공연할 생각’이라고 했던 말을 믿는다. 그때 소녀 팬이 되어 다시 한 번 좋아 죽을 각오가 되어 있으니 언제든 돌아오시길!

 


글 사진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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