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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0호] 외면된 도시 공간을 마주하다
외면된 도시 공간을
마주하다
2018 지역리서치
프로젝트 결과보고전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에서 11월 8일부터 16일까지 <2018 지역리서치 프로젝트 결과보고전>이 열렸다. 이번 전시는 테미예술창작센터에서 지역 예술가를 발굴하고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시작한 지역리서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공모를 통해 선정된 정윤선 작가, 팀 콜렉트(김재연, 권순지 작가)의 리서치 프로젝트 결과보고전이다.
플라타너스 잎이 붉게, 혹은 노랗게 물든 채 길에 깔려 밟힌다. 테미예술창작센터로 향하는 길이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젖었다. 오픈 날의 비 소식에 혹 발걸음이 줄지 않을까 한 걱정은 다행히 기우로 그쳤다.
이번 결과보고전은 대전 지역의 외면되고 은폐되어 왔던 사건을 조명하고 예술로 공론화한다. 결과보고전의 작품 분위기는 이고 있는 의미 탓에 전체적으로 무거웠다.
3D입체형상의 아버지를 마주한 문양자 씨와 정윤선 작가
바라볼 수 없는 얼굴
<멈춘 시간, 산내 골령골>
정윤선 작가는 도시 공간 내 공동체 구성원과 관계를 맺고 이어 나가며 지역과 사람을 향한 예술을 실천한다. 꾸준히 공간에 집중하면서 그 공간의 주체로서 우리가 살아낼 삶의 방향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역사의 유지, 그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철학적 사유의 시간을 공론화한다.
이번 전시는 타이틀 <멈춘 시간, 산내 골령골>이 시사하듯,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엮인 두 지역, 학살지였던 산내 골령골(현 동구 낭월동 13)과 옛 대전형무소가 존재했던 중구 중촌동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곪은 상처를 보듬는다.
전시장 입구에 서면 화려한 조명이 관람객을 마주한다. 끊임없이 춤추는 조명의 거대한 설치작품은 그 아웃라인을 산내 골령골 항공사진에서 따왔다. 작가는 유일 매장지로 추정되는 산내 골령골에 관람객을 불러들임으로써 공론화를 시도한다. 현재 유해 발굴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작품으로 그 사건에 힘을 싣는다. 묻혀 있는 그곳에 에너지가 실렸으면, 화려했으면 하는 작가의 마음이 담겼다. 작가에게 죽음에 대한 아늑한 시각을 선물해 준 뵈클린의 〈죽음의 섬〉이라는 그림이 모티브다. 어릴 적 부모를 이유 없이 잃어야 했고 심지어 연좌제가 적용된 유족의 마음도 승화하고자 했다. 화려한 어둠을 담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시 〈죽음의 섬〉이 함께 들린다.
입구의 오른편에는 입간판을 재현했다. 산내 골령골로 들어와 그 현장 앞에 선 것이다. 밖의 것을 안으로 들임으로써 안팎의 경계를 없앴다. 이 사건에 대한 관람객들의 마음속 경계도 없어졌으면 하는 작가의 설계다. 이 사건을 마주하고 들어설 때 그 경계는 허물어진다.
골령골 학살사건을 증명하는 중요한 보고서도 학살 당시의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사진과 보고서 옆 벽에는 문양자 씨의 아버지 사진 석 점이 걸렸다. 남은 단 세 장의 사진이다. “유족분들은 항상 사진 속 희생된 피붙이의 볼을 만져 보거나 한 번만이라도 아버지를 소리 내어 불러 보고 싶다고, 손이라도 한 번 만져 보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작가는 그 소망을 들어주고자 3D프린터를 이용해 문양자 씨의 아버지, 고 문상국 씨의 입체형상을 만들었다. 문양자 씨가 전시장에서 그 작품을 처음 마주하고 눈시울을 붉힌다. 그녀는 그 형상을 차마 제대로 볼 수가 없다며 고개를 돌린다. 작가도 함께다. 불행과 그걸 견뎌 온 시간들이 눈앞의 문양자 씨를 누르고 있는 듯했다.
중동을 오가며 모은 소문들
<불난 집>
콜렉트는 사진 매체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김재연 작가와 지역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권순지 작가로 이루어진 팀이다. 대전 중동에 있는 ‘성매매 집결지’에 관한 이야기로, 모든 것은 한 할머니와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중동을 좇다 만난 할머니의 집은 유난히 방이 많았다. 옛 유곽터인 그 집은 많은 집결지 여성들이 스쳐 지나간 공간이었다. 그 공간이 그곳을 스친 한 여성에 의해 불이 나고, 큰 화재의 자국은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남았다. 붉은 등을 비롯한 많은 흔적들을 담으며 중동을 둘러싼 소문을 모으고 시각화하면서 설치, 사진, 텍스트로 전시장을 채웠다.
할머니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필요한 많은 과정을 불난 집에서 수행했고, 자연히 그 흔적들을 추적하게 됐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텍스트는 중동을 오가며 모은 소문들과 불특정 다수 행인을 불러 세워 들은 이야기다. 6개월간 바라보고 들은 과정을 오롯이 모았다.
“중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굉장히 쌓여 있고, 겹쳐져 있다. 동네를 보는 시선도 ‘안타깝다’, ‘슬프다’, ‘왜 저런 것들을 하느냐’ 등 부정적인 요소가 뒤섞인 것을 사진 작업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촬영한 사진을 한 번 스캔했다가 다시 합성하기도 했다. 특수사진 기법을 사용해 기포와 주름이 표현되어 있고, 노이즈도 확인할 수 있다.”
콜렉트는 중동을 어둡지만은 않은 이미지로 보이도록 무거운 이야기들을 사진으로 형상화한다. 거부감 형성을 막고자 한 작가의 노력이 엿보인다. 당사자 여성뿐만 아니라 한때 포주였던 할머니, 인권 센터의 소장 등 많은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가치 판단에 혼란이 왔다고. 그래서 정리를 통해 결과물을 내놓기보다는 각자의 다른 기록들과 입장을 날것으로 내놨다. 그렇게 더 생생한 목소리가 완성됐다.
전시장을 벗어나면서 들은 빗소리가 아직 생생하다. 그때의 쓸쓸한 기운과 전시장의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글 김서현 사진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