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0호] 그저 사는 이야기

그저

사는 이야기

 

안골마을 이건홍 씨

   

공주시 정안면 내문리에서 안골마을은 가장 큰 마을이다. 공주 태화산자락 끝에 위치하지만, 마을의 안쪽에 자리해 ‘안골’이라 부른다고 한다. 마을을 알리는 표지판을 만나고도 한참 들어가야 마주하는 안온한 마을이 안골마을이다. 산자락에 둘러싸인 마을에는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다. 여느 시골 풍경처럼 강아지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누구의 방문도 경계하지 않는 듯 대문은 활짝 열려 있다. 골목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이건홍 씨 집이 있다. 그의 집 마당에선 안골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건홍 씨

 

집 앞에 도착하기 전부터 강아지 두 마리는 낯선 방문객을 경계하듯이 울어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주변을 맴돌며 꼬리를 흔들기 바쁘다. 이건홍 씨 집 마당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평화롭기만 하다.     
이건홍 씨는 안골마을에서 태어났고 쭉 이곳에서 자랐다. 지금 집이 있는 곳은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던 자리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을도 변하고 집도 변했지만, 이건홍 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이 자리에서 일상을 보낸다.  
“결혼하고 나서 애들 중학교 갔을 땐가, 옛날에는 양반 행세를 할라고 했는지 뜨락도 높게 짓고 해서 올라 댕기기가 엄청 어려웠어. 노인양반들이 마당까지 가기가 어려운 거야. 그래서 이 집 갖고는 안되겄구나 해서 새로 지었지. 이 집도 벌써 30년 됐어.”
30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이 무색할 정도로 튼튼한 벽돌집이다. 마당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세간살이들과 집 곳곳에 묻어 있는 세월의 손때는 보는 이에게 안정감을 준다. 
일찍이 철이 들었던 이건홍 씨는 일찍부터 농사를 시작했다. 본디 선비 기질을 가진 아버지 덕분에 고생하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우리가 형제는 4형제인데, 내가 둘째야. 형은 일찌감치 배워서 나갔고. 우리 아버지가 원래 예전부터 선비였어. 맨날 시조만 하고 무릎이나 치던 양반이여. 거기다 내가 전주 이가인데 여기 전주 이가들이 많이 살아. 우리 아버지는 여기서 전주 이가들의 왕초야. 왕초. 손님이 떨어질 날이 없었어. 우리 어머니가 고생을 엄청나게 하셨지. 내가 어머니 혼자 고생하는 걸 봤을 거 아냐. 어머니 쫓아 댕기면서 하다 보니께 내가 여기에 주저앉은 거지.”
꿈도 많았지만, “세월이 앞길을 막고, 환경이 앞길을 막는 거지”라고 이건홍 씨는 이야기한다. 그저 환경에 맞춰 흘러가는 대로 살며, 가족을 건사했다. 화려한 삶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터전이 있는 고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이제는 그저 행복이다. 
“쭉정이라 그렇지 뭐, 본래 알맹이는 튀어서 도망가는데, 쭉정이는 튀어나가도 여기 있단 말여. 쭉정이라 그런 거여. 쭉정이.” 
이건홍 씨는 지금은 소랭이센터가 들어선 월산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지금처럼 길이 잘 나 있지 않았던 과거에는 어린 걸음으로 40분을 넘게 걸어 학교에 갔다. 산길을 따라 등하교하며, 여름에는 물장난도 치고, 겨울에는 눈도 밟으면서 학교에 다녔다. 초등학생에게 만만치 않은 길이었을 텐데. 추억을 회상하는 이건홍 씨 표정에는 미소가 서린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부모님이 학교까지 마중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의 추억은 아득하면서도 선명하게 마음에 남았다.  
농사는 1년 내내 쉴 틈이 없다. 밤, 벼, 콩 등을 작업하는 이건홍 씨의 하루는 누구보다 분주하다. 11월은 한창 콩을 수확하는 시기다. 집 옆에 있는 너른 밭에서는 콩 수확이 한창이다. 수확한 콩은 일찍부터 점찍어 놓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믿고 먹을 국산 콩을 구하기 어려운 시기라 그런지 아는 사람들은 매년 끊이지 않고 이건홍 씨의 콩을 찾는다.  
“콩 농사는 어려운 농사는 아니야. 벌레 때문에 힘들긴 한데, 심고 품질만 잘 관리해 주면 되기 때문에 어렵진 않어. 거의 뭐 유기농이지. 콩 코다리가 맺고, 알이 들 때 버러지가 있으면 빈 깍지가 되거든? 그때 약을 살짝 한 번 치지. 그때 말고는 약도 안 쓰지.”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고 이건홍 씨는 자리를 일어난다. 먼저 나와 콩을 털던 이건홍 씨 부인 옆에는 강아지들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뛰놀기 바쁘다. 콩 농사는 마늘 농사와는 다르게 크게 손이 가지 않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콩 탈곡기 소리가 울려 퍼지고, 기계에서 나오는 콩깍지는 가을바람에 흩날린다. 가루가 된 콩 깍지는 먼지처럼 그새 온몸에 내려앉는다. 촐랑대는 귀여운 강아지들과 이건홍 씨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앞으로 건강하게 사는 게 좋지. 이 나이에 어디 나가서 뭐 하도 못하고, 나가면 뭐해. 내가 이 산고랑에서 배운 게 있어 본 게 있어. 그래도 마음 건강하고, 편하면 되지. 사는 게 뭐 있어.”
마을을 나서며 이건홍 씨의 이야기를 한참 생각했다. 그래, 사는 게 뭐 별거 있겠나.

 


글 사진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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