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9호] 사고뭉치의 보릿고개

사고뭉치의

보릿고개

 

너희들은 자란다

 


 

가을에 곡식을 거둬들여 겨우내 먹는다. 봄이 되면 먹을 것들은 바닥이 나고 새봄의 봄나물이 돋아 하나둘 먹을 것들이 생기기 전, 햇보리가 나기 전 바로 그때 먹을 게 거의 없어 가장 힘든 시기였다. 조상들은 그 시절을 ‘보릿고개’라 했다. 영양실조를 넘어서 동네 아무개가 굶어 죽었다는 소문을 어린 시절에 간혹 들을 수 있었다. 
사방으로 먹을 것이 풍족한 요즈음, ‘먹방’ 프로그램 유행은 그 풍요를 반영한다. 영양실조가 다반사였던 시절에 견주어 보면 격세지감이다. 그럼에도 홍수처럼 넘치는 ‘먹방’ 프로그램에서 마치 아귀처럼 먹는 영상들의 장면은 나에게는 낯설고 씁쓸하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도 이러한 먹방 프로에 재미를 붙여서 그것을 즐겨 볼 뿐 아니라 프로그램을 흉내 내거나 직접 만들어서 그것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한다. 좋아서 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아이들의 긴 인생길에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크고 작은 사고를 무시로 치고 다니는 아이들이 여럿 있다. 이번에도 그 사고뭉치 아이들 몇이서 주말 동안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또래들과 놀고 왔다고 한다. 뇌가 굳어지기 전, 청소년기의 과도한 알코올 섭취는 뇌에 치명적 손상을 입힌다. 운동능력이나 언어능력에 영향을 주어 나이가 들면 알코올성 치매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 주말 동안 친구들끼리 어울려 놀 때 이 점을 주의하라고 수도 없이 당부한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한결같이 그리하겠다고 대답한다. 부탁도 하고 당부도 하고 때로는 윽박지르기도 하건만 아이들은 쉽게 그러한 생활패턴에서 벗어나기 어려워한다. 
몸에 밴 이런 습관을 어떻게 떼어 낼 수 있을까. 선생님들 모두 걱정이다. 그렇다고 주말까지도 이렇게 노는 아이들을 관리하며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음주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비행이 걱정되기도 한다. 적당히 놀다 일찍 귀가하라고 담당선생님들이 주말에도 SNS를 통해서 수시로 주의를 주어도 소귀에 경읽기다. 주중에는 선생님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굴절된 생활습관을 어느 정도 바로 잡아 스스로 통제하도록 지도한다. 그렇지만 주말 동안 아이들끼리 어울려 놀 때에는 주중에 배웠던 생활 안내와 규칙들을 어기곤 한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주말에도 스스로 자신을 경계하며 일상생활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
반복되는 생활습관에 선생님들은 힘이 빠지고 때로는 자괴감에 젖다가도 막상 그런 아이들의 집을 가 보면 할 말을 잊는다. 방 안은 몇 달째 청소 안 한 지 오래다. 이부자리도 그대로 펴 놓은 채 얼마가 지났는 지 모를 지경이다. 방 안에서 풍기는 쾨쾨한 냄새는 노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칸방 싱크대 안의 그릇은 설거지가 제대로 되어 있을 리 없다. 라면봉지가 어지럽게 여기저기 나뒹군다. 배가 고프면 쉽게 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일쑤다. 일찍이 엄마 없이, 보호자 없이 생활해 온 것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엄마가 있어도 궁핍을 벗어나기 어려운 경우에는 삶의 습관은 이와 거의 비슷하다. 

 

동산 위에 올라서서 파란하늘 바라보며
엄마얼굴 천사얼굴 마음속에 그려 봅니다.
하늘끝까지 올라 실바람을 끌어안고 
날개 달린 천사들과 속삭이고 싶어라.(<하늘나라 동화>, 이강산 작사 작곡)

 

엄마 얼굴을 그려 보고 싶은데,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다. 마음속으로라도 엄마 얼굴을 그려볼 수가 없다. 부모나 자식이 서로 갈등이 심해서 정서적 영양공급이 적을수록, 그 아이들은 일상생활의 규칙과 상식 그리고 예절을 이해하고 이를 지키기를 매우 어려워한다. 그들의 거친 삶, 거리에서 놀며 지내는 삶에 비춰 보면, 실내활동을 위주로 하는 교실과 같은 폐쇄된 공간 안에서 규칙 지킴과 절제된 삶이 낯설다. 거리의 생활에 익숙한 아이가 실내의 일상생활의 규칙을 모르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러한 아이들의 삶과 생활패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반성해야 할 문제다. 냄새나는 방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이해 못 한다면 말이다. 
아이가 정서적 결핍, 정서적 보릿고개를 넘어가는 데에는 ‘엄마’의 품이 으뜸이다. 마음의 보릿고개를 넘어가는데, 아이 혼자 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가정형Wee센터가 그 결핍을 채워 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엄마의 품에는 턱없이 부족한 곳이지만 말이다. 
풍요 속 빈곤이라고 물질은 주변 안팎으로 풍족한데 아이들의 마음은 텅 비어 있다. 마음 둘 곳이 없는 우리 아이들이 거리를 떼 지어 다니며 크고 작은 사고를 낸다. 이 사고뭉치들이 마음의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찌그럭대며 가더라도 건강한 어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러한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규칙과 일상의 소중함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더없이 중요하다.

 


글 이명훈(변두리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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