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3호] 사람이 모여 공간에 다른 색을 입히다

사람이 모여

공간에 다른 색을 입히다

 

2018 콘텐츠 누림터 조성지원사업 ‘대성로 122’ 프로젝트

 

충북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충북도청을 지나 청주향교로 향하는 길목은 ‘대성로 122번길’이다. 언뜻 봐도 여느 주택가처럼 한적한 동네라는 인상을 준다.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이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주택도 더러 있다. 몇 안 되지만,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상점이 눈에 띈다. 낮은 주택 건물이 밀집해 있는 탓에 고개를 높게 들지 않아도 동네가 한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이 길목의 중간쯤에는 오래전에 지어진 듯 보이는 2층 주택이 하나 있다. 일반 가정집 같은 외관이지만, ‘가람한정식’, ‘가람신작’이라는 두 개의 간판이 먼저 반긴다. 과거 한정식당이었던 이곳은 지난해 가람신작이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가람신작은 충북문화재단에서 진행한 ‘대성로 122’ 프로젝트의 콘텐츠 거점 공간 중 하나이다. 

 


 

대성비디오는 2층 주택을 개조한 공간이다. 차고와 안방을 개조한 10석 규모의 상영관이 있다

 

콘텐츠와 공간이 하나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해 ‘2018 콘텐츠 누림터 조성 지원사업’을 공고했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한 사업으로 전국 지자체와 문화산업 지원기관을 대상으로 한 공모사업이다. 
‘콘텐츠 누림터’는 지역민이 주도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에 참여하는 콘텐츠 향유 플랫폼을 의미한다. 지역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시민이 언제든지 콘텐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지속적인 콘텐츠 생산과 콘텐츠 확산 구조를 만드는 것이 사업의 취지이다. 
해당 사업으로 경북 경산시와 안동시, 충북 청주시 총 세 개의 지역을 선정했다. 세 지역은 각각 ‘스포츠 VR체험관’, ‘G(경북)-콘텐츠 누림터’, ‘대성로 122’를 제안했다.  
충북문화재단과 문화예술전문기획단체 ㈜오뉴월은 ‘문화와 만나는 길-대성로 122’라는 사업명으로 기획안을 제출했다. 대성로 122번길은 충북도청 본관에서 청주향교에 이르는 500m 거리이다. 충북문화관, 청주향교, 청주 성공회성당, 우리예능원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자리한 대성로는 근대문화의 거리로 불리기도 한다. 이 거리는 청주시의 명동으로 불리는 성안길, 청주연초제조창,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등과도 인접해 있어 다양한 지역문화 축제와 연계할 수 있는 곳이다.
충북문화재단과 ㈜오뉴월은 창작자가 주도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네 가지 콘텐츠 거점 공간을 구축했다. 지원사업을 종료와 함께 마무리하는 단발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창작자와 향유자가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구축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고, 나아가 새로운 문화를 확산시키는 공간으로 자리하기 위함이다.  
지난해 11월 9일 시각 콘텐츠 거점 공간은 ‘B77’을 시작으로 음악 콘텐츠 거점 ‘지직’, 복합문화살롱 ‘가람신작’, 영상 콘텐츠 거점 ‘대성비디오’가 차례로 문을 열었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낙후되었던 공간에는 전에 없던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지직은 음악 콘텐츠 생산자들의 아지트이자 공연장이다

  

자생력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도록

대성로 122 프로젝트의 공간은 그간 청주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번 사업을 추진한 충북문화재단은 각각의 콘텐츠와 문화를 결합함으로써 ‘일상이 문화가 되는 공간’을 조성하는 데 주력했다. 
그간 청주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콘텐츠를 가진 공간이면서도 너무 크지 않은 소규모 공간을 찾기 위해 청주 이곳저곳을 누비며 발품을 팔았다. 마땅한 공간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짧은 임대 기간 등의 이유로 공간을 내어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네 개의 공간을 찾았고, 주민 간담회를 통해 사업 설명회를 가졌다. 이후 각각의 공간에서 활동할 참여자를 모집했다. 
충북문화재단 김병만 대리는 “대성로 122번길은 그동안 눈여겨 왔던 곳이에요. 충북문화재단이랑도 가깝거든요. 어떤 공간이든 활성화되면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충북문화관, 청주향교 등 문화적으로 상징성을 가진 공간이 있어 개발에 제한이 있어요. 지리적 위치도 좋고요. 이 거리에 상징적인 공간 몇 개가 더 들어서면, 좋은 문화예술 거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이야기했다. 
현재 대성로 122의 공간들은 모집을 통해 모인 참여자들과 충북문화재단의 담당자가 함께 운영하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시각 콘텐츠 거점공간 B77은 운천동 청년 사업가와 청주 지역 미술가 등이 만든 1377 청년문화콘텐츠협동조합에서 운영한다. 지직은 토모타찌, 정마필, 진석현 등 12개의 팀이 운영하고 있으며, 대성비디오 역시 UCC, 시민영화패무명, 느린손스튜디오 등 12개 팀이 함께한다. 가람신작은 ㈜오뉴월의 서준호 감독이 운영 중이다. 공간이 정체되지 않도록 참여자를 상시 모집하고 있다.
㈜오뉴월의 서준호 감독은 “콘텐츠 지원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활동하는 참여자들이 직접 공간을 운영했으면 좋겠어요. 협동조합은 자생력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죠. 참여자들에게 협동조합을 권하고 있어요. 올해는 여러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이야기했다. 
서준호 감독은 서울에서 ‘오뉴월 이주헌’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공간연출을 진행하는 등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청주시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공간연출을 맡으면서 청주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지난해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 공간연출을 맡은 이후 충북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대성로 122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각각의 특색이 있는 공간

취재를 위해 청주를 찾은 날은 마침 공간들이 휴식기에 있는 시점이었다. 지난해 11월 운영을 시작한 각 공간은 1차 운영을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고 있다.
네 개의 공간은 지난 11월부터 1월까지 3개월 동안 각각의 콘텐츠에 맞춰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운천동에 위치한 B77은 주민들의 기억이 담긴 사진과 자료를 전시하는 <맑은 골 구루물 마을>전을 통해 마을 주민과 함께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직은 오픈 공연을 시작으로 네트워킹 DJ파티, 밴드데이 등 금·토 상설공연과 함께 ‘퀸 트리뷰트 콘서트’를 진행했다. 이날 공연에는 청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밴드 6팀이 참여했으며, 약 100여 명의 사람이 다녀갔다. 
대성비디오는 독립영화관을 통해 약 300여 편의 독립영화를 상영했으며, VR갤러리를 통해 VR매체를 활용한 뉴미디어 아트 작품 등을 선보였다. 특정한 콘텐츠가 정해져 있지 않은 가람신작은 음식을 콘텐츠로 먼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청주시에서 독특한 음식을 하는 두 개의 팀과 함께 음식을 콘텐츠로 한 토크콘서트를 진행했으며, 지직에서 활동하는 밴드와 함께 전시하는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충북문화재단 김병만 대리는 “현재는 문화재단과 각각의 공간이 협업하면서 테스트를 하는 기간이에요. 특히, 지역 사람들은 무료공연, 무료 상영 등에 익숙해져 있죠. 그렇게는 꾸준하게 공연 등이 이뤄질 수 없어요. 볼만한 공연은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 입장료 기부나 입장권 음료 포함 등 다양한 시도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런 시도를 통해서 창작자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향유자들도 더 좋은 문화 콘텐츠를 누릴 수 있겠죠”라고 이야기했다. 

 

 

예술가들이 힘을 얻을 수 있길

현재 많은 지역에서 유휴공간을 활용해 청년 공간, 문화 시설 등을 만들고 있다. 비어 있는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지역의 발전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사회적 문제를 낳기도 한다. 
김병만 대리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아무래도 월세는 한계가 있죠. 유휴공간이 상업적인 공간이 아니라, 문화발전을 위한 공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자체에서 공간을 매입하고, 대신에 공용공간으로 관리하면서 창작자들의 울타리가 되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네 개의 콘텐츠 거점 앞으로 각각의 프로그램뿐 아니라 협업을 통한 다양한 시도를 진행할 예정이다. 얼마 전 대성비디오 참여자와 지직 참여자가 프로필 사진과 뮤직비디오 촬영을 함께했다. 젊은 청년들이 모여 있어 본격적인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아도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충북문화재단은 사업 기간인 2021년까지 공간을 운영한다. 2018년은 공간을 조성하고, 시민들에게 공간을 알리는 해였다면, 올해는 기획전시, 기획공연, 참여 프로그램, 대관 등을 체계적으로 운영해 나갈 계획이다. 가람신작과 대성비디오가 있는 대성로, B77이 있는 온천동,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는 내덕동 등 청주시의 문화공간을 소개하는 투어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또한 네 개의 공간이 분명한 콘셉트를 가졌기 때문에 향유자의 타깃을 명확하게 하고, 그들이 만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할 예정이다. 대성로 122의 최종 지향점은 청주에서 재밌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찾아가야 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시민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다.  
서준호 감독은 “가람신작뿐 아니라 공간을 통해 예술가들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문화 공간을 발판으로 청주가 현대 예술의 메카가 되길 바라는 꿈을 품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글 이지선 사진 이주연, 충북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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