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2호]언제나처럼 아저씨는 말없이 요리하고 아주머니는

언제나처럼

아저씨는 말없이 요리하고

아주머니는 쿨하게 주문받는다

판교 중국집 ‘동생춘’ 주인 부부

 


 

 아저씨가 뽑은 면은 쫄깃하고, 굵기가 균일하다

이게 바로 장인의 실력인가 보다

 

1
부산스럽게 취재하고자 마음먹고 왔건만, 상황은 쉬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과거 크게 우전이 서던 판교 오일장은 예전만 못했다. 상인도 몇 없고, 있던 사람들도 12시쯤 되자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하나둘 장사를 접었다. 점심때도 됐으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콘텐츠팀 일행은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판교 시장 근처 중국집을 찾았다. 
동생춘(同生春). 여태껏 만나 본 중국집 이름 중에 가장 특이하고 예쁘다. 간판에는 수타면 전문이라 쓰여 있다. 꼬꼬마 시절 아빠를 따라 시장 안에 있는 수타 짜장면집을 가 본 기억이 있어 기대가 한가득이다. 가게 앞에 사람이 북적북적하다. 다 같은 일행인가 보다. 출입문 앞에 주인아저씨로 보이는 캐리커처가 그려진 현판이 붙어 있다. 현판을 유심히 바라보다 출입문 앞에 서 있던 아주머니에게 “이게 뭐예요?”라고 물으니, “뭐긴 뭐여, 우리 아저씨지”라는 간단한 답이 날아왔다. 알고 보니 아주머니는 동생춘의 주인이다. 
우리 네 사람은 주방과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에는 창문 하나가 있는데, 창문을 통해 주방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주방에 있는 주인아저씨는 군밤 모자를 썼는데, 아저씨와 한 몸인 양 모자가 퍽 잘 어울린다. 
일단 탕수육을 먼저 주문하고 각자 먹을 메뉴를 골랐다. 빨간 음식만 보면 땀을 흘리는 이용원 편집장을 생각해 일단 우동 하나를 시키자는 이야기가 오갔다. 식탁을 정리하던 주인아주머니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이 팔십 먹었댜?”라고 묻는다.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되물었더니, “아니 땀을 뻘뻘 흘린다며, 무슨 팔십 먹었간?” 하고 무심히 대답했다. 
네 사람 모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바탕 웃고 나서 그래도 우동을 먹겠다는 의지를 표하자 아주머니는 넓은 아량으로 우동 주문을 허락했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 우동을 시키려 했으나, “으휴 안 해! 사람 맘 변하게 맨들어” 하는 아주머니의 속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 짜장은 없던 일로 했다. 
오랫동안 중국집을 운영한 것 같아 이것저것 물었다. “거기 써진 대로여. 아주 입 아파 죽겄어, 그만 물어봐”라는 대답과 함께 된통 혼이 났다. 이용원 편집장은 굴하지 않고 이름이 왜 동생춘인지만 말해 달라며 물고 늘어졌다. 아주머니가 “저 양반 이야기하는 거 좋아하나 보네” 하고 묻자, 이용원 편집장은 “네, 저 이야기하는 거 좋아해요”라고 천진하게 대답했다. 그 소릴 들은 아주머니는 특유의 충청도식 유머와 영어를 적절히 섞어 툭 던졌다. “그러니께 저렇게 답답한 소리만 허지. 샷다 마우스하고 밥이나 먹어.” 

 

2

아저씨는 주방에서 요리하고 아주머니는 홀에서 서빙을 본다. 주인아저씨는 주방에서 말없이 요리에만 집중한다. 원래도 과묵한 것 같다. 우동을 주문한 이유가 궁금했는지 아저씨는 아주머니가 주방에 들어오자 조용히 이유를 물어본다. 
“왜 우동을 시켰댜.”
“매운 걸 못 잡숫는댜. 빨간 거 쳐다만 봐도 땀이 줄줄 난댜. 이상한 사람이구만.”
탕탕탕. 커다란 나무 도마 위에서 반죽을 치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온다. 창문 너머로 면을 뽑는 아저씨의 모습이 보인다. 반죽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더니 금세 여러 가닥의 면으로 변했다. 면을 뽑던 아저씨는 우리가 있는 창문 쪽으로 돌아서더니 사진을 찍으라는 듯 서 있다. 우리는 제대로 담아 보겠다며 벌떡 일어서 사진작가를 자처했다. 아저씨는 나직이 “이것만 찍어. 다른 건 찍지 말고”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도 아저씨도 그동안 많은 사람이 이곳에 다녀가면서 사진이다 뭐다 하도 귀찮게 했는지 사진 찍는 범위를 정해 놓은 듯했다. 
음식이 차례로 나오고, 아주머니는 “찍어, 찍어. 이런 건 찍고 먹어야댜”라며 아저씨 음식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한바탕 사진을 찍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탕수육은 쫄깃쫄깃했고, 짬뽕은 맵지 않고 담백했다. 무엇보다 우동이 최고였다. 여태껏 먹어 본 중국집 우동에서 느끼지 못했던 시원하고 깊은 맛이 났다. 사진 찍고 먹으라던 아주머니의 말이 십분 이해됐다. 
“이쁘게 독사진 하나 찍어서 좀 붙여 줄래?” 한창 카메라를 경계하던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사진 한 장 찍어 주길 부탁했다.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 정신 사납게 굴던 우리에 대한 경계가 어느새 조금 허물어진 듯했다. 아주머니는 아저씨 얼굴이 그려진 나무 현판을 배경으로 한껏 포즈를 잡았다. 자신이 나온 사진을 보며 “귀엽게 나왔네”라고 말한다.
사진을 찍고 나니 아주머니는 우리 옆에 앉아 연신 많이 먹으라며 챙겨 줬다. 아저씨는 우리가 짜장면 맛을 못 본 게 내심 마음에 걸렸는지, 아무 말 없이 짜장면이 담긴 그릇을 내어 주기도 했다. 한상 가득 놓인 음식을 먹으며 아주머니와 우리는 사진 전공하는 어떤 여학생이 이곳 사진을 찍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도란도란 대화를 이어 갔다. 

 

 가오리를 들고 서 있는 주인아주머니는 가오리로 찜 해 먹으면 첫사랑 맛이 난다 했다

 

3

독산리 굴이 최고라는 아주머니는 음식에 들어가는 해산물 사러 기차를 타고 대천이며 웅천이며 다닌다고 한다. 아저씨는 요리를 한 지 67년이 되었다. 요리를 마치고 주방에서 나온 주인아저씨는 “내 고향이 예산”이라고 짧게 자신을 소개했다. 아저씨는 10살이라는 어린 나이 때부터 예산에 있는 중국집에서 주방 일을 했는데, 그 중국집 이름이 ‘동생춘’이었다고 한다. 예산에 있던 동생춘이 없어지자, 그 이름을 빌려와 서천에서 다시 열었다. 
내 나이 10살 때는 그저 엄마 따라 시장 나가 인형 사달라, 과자 사달라 조르기나 하는 철딱서니 없는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개구지고 철없어야 할 나이에 아저씨는 중국집에서 일하며 요리를 배웠다.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일을 했냐고 물으니, 아저씨는 말이 없다. 아저씨를 대신해 아주머니는 “그때 10살이면 으른이여. 아주 막 못 먹고 눈치로만 살은 사람이여”라고 답해줬다. 한창 말썽 피우고 지친 기색 없이 밤낮으로 뛰어놀아도 바쁠 나이에 아저씨는 작은 몸으로 직접 부딪쳐 가며 세상을 배워 나갔다. 
주인아주머니는 예산 인근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다. 젊은 적에 미모가 빼어나 남자깨나 울렸다고 한다. 미스코리아였을 것 같다는 말에 “아휴 옛날에는 그랬는데 진에서 똑 떨어져서 말아 버렸지. 옛날에 인기도 많이 끌었어”라며 농담을 던지곤 웃어 보인다. 아주머니는 “저이 얼굴은 말해 뭐해. 얼굴이 작품이지”라며 아저씨도 젊었을 적엔 한 인기 했다고 말한다. 동생춘은 미남미녀가 하니 장사가 잘 안 될 수가 없는 서천의 명물인 셈이다. 그렇게 선남선녀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만나 연애하고 결혼도 해서 동생춘을 운영하며 아들 넷도 잘 길러 냈다. 
배도 든든히 채우고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은 어느새 추적추적 찬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주인아저씨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말없이 앉아 우릴 바라봤고, 아주머니는 “비와, 언능 가, 인제”라며 배웅했다. 
배나 채울 생각으로 들어갔다가 따끈하게 마음도 함께 채워 든든하게 길을 나섰다.


글 이주연

사진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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