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9호] 흘러라. 흘러 멀리 가 닿아라.

흘러라.

흘러 멀리 가 닿아라.

진주남강유등축제


모난 소리를 삼키는 유등 불빛
등불의 점등과 동시에 사람들의 기대 섞인 환호가 이곳저곳에서 터진다. 그리고 곧 내달은 어둠이 남강에 수놓은 7만 개의 유등을 피해 조심스레 자리한다. 진주성의 7만 순국선열을 기리는 등불이다. 남강 수면에 내린 어둠은 하류(河流)에 의해 달빛인지 유등 빛인지를 삼켰다 뱉었다 한다. 유등 사이사이로 의미 모를 화려한 조명을 잔뜩 단 유람선이 지나가고, 사람들의 카메라와 스마트폰은 그 장면 속 서로의 모습을 담아내기 바쁘다. 사방에서 맛있는 길거리 음식향이 흘러들고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이어진다. 모두 한마디씩을 내뱉어 축제장의 대기는 그네들의 가없는 말 한마디 한마디와 달뜬 숨이 뒤섞여 열기를 띤다. 서로를 놓치지 않으려 꼭 붙든다. 나도 손에 힘을 꼭 준다. 천수교와 진주교 사이 모든 남강 일대의 유등에 시선을 뺏긴 사람들은 서로에게 떠밀리고 떠미는데 신기하게도 아쉬운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눈에 비친 유등이 모난 소리들을 삼키게 하나 보다. 
과연 천수교 아래 펼쳐진 유등의 향연에 눈을 떼지 못하겠다. 위로 고개를 들면 진주대첩을 치러 낸 장한 진주성의 성곽과 촉석루가 붉은 조명에 의해 모습을 드러낸 채 남강을 내려다본다. 천수교 중간에서 남강을 바라보고 좌우위아래를 둘러보니 물위에 떠 발광(發光)하는 요정들로 시야가 가득 찬 것 같다. 다시 고개를 바로 하니 건너편 음악분수대에서는 크고 작은 유등에 둘러싸인 분수대의 물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노래 소리가 점점 커지고 점점이 박혔던 유등도 커졌다. 물이 사방으로 튀는데 아이들은 마냥 신났다. 사방이 불빛으로, 웃음으로 북적거린다. 정신이 없는데 기분이 좋다. 축제장의 모든 곳을 말하지 못했으나 그 열기와 화려함이 전해졌기를. 묘사가 길었다. 유등의 고장 진주의 남강유등축제에 왔다. 

 

 

축제의 기원
사랑하는 나의 고향, 경남의 진주다. 이 작은 도시에서 10월이 시작할 때 축제도 시작된다. 해에 따라 살짝 다른데, 올해 축제는 2주에 걸쳐 진행됐다. 진주유등축제의 첫 시작은 2000년이었고, 난 10여 년째 매년 어김없이 유등을 찾았다.
축제는 초혼점등을 시작으로 펼쳐진다. 부교를 건너 유등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유람선을 타고 유등 사이를 따라가 보는 것도 멋지리라(이런 말 하기 민망하지만 한 번도 안 타 보긴 했다). 그래. 홍보 글 맞다. 진주로 많이 놀러 가면 좋겠는 진주 여자의 마음이라 생각해 주면 감사하겠다. 진주 남강에 띄우는 유등놀이는 임란 진주성 전투에 기원한다. 관련 상황을 유등으로 재현해 놔 알고 가면 더 볼 만할 테다. 
왜군 장수를 끌어안고 남강으로 뛰어든 그 멋진 여자 논개가 뛰어내린 바위, 의암이 있는 곳에서 3D입체 영상으로 진주성전투가 상영된다. 꽤 멋있어서 볼 만하다. 다양한 동반행사를 보면 자연스레 이 축제의 의미를 알게 된다. 여느 다른 축제와 조금 다를 것이다. 진주성과 남강변을 거닐며 빛의 축제를 감상하는 것도 축제에 함께 하는 일이다. 물론 축제에 술과 음식이 빠질 리 없다. 
이 즐거운 축제는 어떻게 생겨난 걸까. 종교적 기원으로서의 축제는 개인 또는 공동체의 특별한 일 또는 때를 기념하여 행하는 의식이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축제를 통해 소통하고 화합하여 결속력을 다졌고, 가급적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하여 진행될 때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매년 같은 것을 보고 경험하는 데도 늘 내게 좋은 추억만을 주던 이 아름다운 축제가 그 의미를 잃어버려 미웠을 때가 한 번 있다. 유료화했을 때다. 것도 천 원, 2천 원이 아니라 만 원을 올려 받았다. 친구에게 보러 오라 하기 민망한 금액이었다. 쓰면서도 좋아하는 축제에 대한 뒷말을 하려니 마음이 살짝 아프다. 너무 대놓고 상업화된 모습을 보아 사랑이 조금 식은 게 속상해서 그렇다. 축제가 축제답지 못할 때, 그 축제를 사랑하는 이들은 분노했고 슬퍼했다. 다행히 올해 무료화로 재전환되고 축제는 다시 시민의 것이 되었다. 
지난 3년간 유료화되어 운영된 축제와 가림막을 겪고, 그 기시감에서 든 불쾌함은 자본주의의 잔인함이었다. 화합으로서 역할해야 할 축제가 사람을 나누고 억눌린 이들의 재충전의 시간까지 앗았다. 바쁜 사람들은 당연히 무료로 즐길 수 있던 축제를 가림막에 애써 구멍을 뚫고 봐야 했다. 담장을 친 축제를 축제라 할 수 있을까. 

 

난 축제가 좋다. 어김없이 내년에도 유등을 보러 갈 것이고, 축제의 다면을 확인할 것이다. 유등축제에서 나는 ‘내가 만든 유등 띄우기’ 행사장을 꼭 자세히 보고 온다. 사람들이 유등을 띄울 때의 그 표정과 둥둥 떠내려가는 손으로 적어 써 붙인 소망들이 딱 붙은 유등을 가까이서 확인할 때, 이 축제의 의미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신기하게도 그건 에너지가 된다. 
그 행사장을 경험하고 확인한 후부터 다른 이들의 소망이 내게 무엇이든 이어 나갈 힘을 만들어 준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 여운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즐기지 못한 이들 생각이 든다. 축제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 타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새삼스레 발견한 축제의 밝은 면이다. 축제 내내 생각했다. 모두가 행복하면 좋겠다. 부디 내가 생각 못한 이들의 소망까지 유등이 싣고 흘러가 주길 바라며. 모든 이들의 소망이 닿길 바라며. 나는 또 내년을 기약한다.


글 사진 김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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