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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9호] 치열했던 그들의 낮과 밤
치열했던 그들의
낮과 밤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5기 입주예술가 결과보고전 <333, 낮밤>
끊임없는 예술적 교류와 실험적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국내외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이하 창작센터). 올해로 개관 5년 차를 맞이한 창작센터가 지난 10월 11일, 5기 입주예술가 결과보고전 <333, 낮밤>을 개최했다. 10월 19일까지 진행된 전시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창작 활동에 매진한 입주예술가들의 결과물을 한자리에 만나 보는 시간이었다.
1.
레지던시 공간인 창착센터는 개관 이래 계속해서 입주예술가를 모집해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전시를 진행한다. 입주예술가는 프리뷰 전시를 통해 자신의 대표작을 전시하고, 한 차례의 개인전과 결과보고전을 통해 관람객에서 창작센터에서 작업한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5기 입주예술가로는 국내 작가 고재욱, 박용하, 서소형, 성정원, 정유미, 국외 작가로는 독일의 토비아스 브램백을 선정했고, 결과보고전을 통해 이들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었다. 결과보고전 <333, 낮밤>은 입주예술가들이 창작센터에서 창작 활동에 매진한 시간이다. 333일 동안 밤낮으로 작업한 이들의 열정과 치열함이 느껴지는 제목이다. 333일 동안 입주예술가들이 만들어 낸 그들만의 생각과 색이 강하게 묻어나 있다.
입주예술가들의 고찰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회화부터 영상, 사운드,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1층 아트라운지에 전시된 작품은 고재욱 작가와 정유미 작가, 토비아스 브램백 작가의 작품이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고재욱 작가의 <시멘트 홈>이었다. 고재욱 작가는 비슷한 규격으로 만들어진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똑같은 크기와 똑같은 간격으로 놓인 시멘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각기 다른 것이라곤 흘러나오는 빛의 색깔뿐이다. 멀리서 보면 뿜어져 나오는 빛이 아름답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그저 차갑고 딱딱한, 보잘 것 없는 모양새다.
2.
지하 전시실로 내려가면 순수성을 잃은 불편한 현실의 풍경을 동물원 풍경에 빗대어 보여 주는 박용화 작가의 작품과 사운드 작업을 펼친 서소형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서소형 작가의 작품은 단 하나의 작품만이 전시되어 있어 간결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 작품 안에서 다양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리로 꽉 채운 작품이다.
서소형 작가는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예기치 못한 소리를 듣거나 모순적 상황에 놓인 사운드에 집중하게끔 한다. 전시장에는 여러 개 스피커 유닛이 설치된 두 개의 패널이 마주 보고 있다. 그 사이에 서서 가만히 소리를 듣는다. 한쪽에서는 자연환경보전법령의 한 부분을 파파고 번역기 어플을활용해 읽힌 음성을 변조시킨 소리가 재생되고 있다. 또 다른 패널은 바람과 파도, 빗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틀어져 있었다.
음성 변조 소리가 유난히 큰 탓인지 자연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집중해 음성 변조한 소리를 들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러다 순간 모든 소리가 꺼지고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에 조명과 함께 설치되어 있는 팬이 돌아가는 소리다. 작가가 말했던 예기치 못한 소리였다. 팬은 한 번도 꺼진 적 없이 돌아갔지만, 다른 음성에 귀 기울인 탓에 그 존재를 망각하고 만다.
3.
1.5층 세미나실에 전시된 성정원 작가의 작품 <응시(Steady)>는 작가 자신이 느꼈던 시간의 중첩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를 타고 가던 길에 내비게이션이 도로가 아닌 길을 가로지르는 것을 목격했어요. 당시 내비게이션 업데이트가 되어 있지 않아, 새로 생긴 도로를 인식하지 못해, 마치 제가 도로가 없는 곳을 달리는 것처럼 보였죠.”
성정원 작가의 설명처럼, 영상 속에는 내비게이션이 다리가 없는 강 한가운데를 건너고 있거나 허허벌판을 가로지르고, 산을 오르기도 한다. 영상은 각기 다른 날, 다른 시간대에 촬영한 것이지만 내비게이션의 똑같은 행위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독특한 경험은 같은 날, 같은 시간이 아니더라도 그 행위 자체가 반복이기에 마치 데자뷰처럼 경험이 중첩된다. 성정원 작가의 시점과 내비게이션의 시점은 전혀 다르다. 작가가 가려는 길과 내비게이션이 가는 길 역시 전혀 다른 곳 같다. 그래서 이 둘은 서로 다른 객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입주예술가 결과보고전의 독특한 볼거리는 바로 4일간 진행된 오픈스튜디오다. 작가들이 생활하고 작업하는 공간을 직접 들여다보고 작가의 설명을 듣는 프로그램이다. 작가마다 소개 주제도 각자 다르다. 전시에서는 설명하지 못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개인전에 전시했던 작품 일부를 선보이기도 한다.
고재욱 작가는 다큐멘터리 <찢어라! 리믹스 선언> 영상을 틀어 놓았다. <찢어라! 리믹스 선언>은 저작권에 대한 명쾌한 설명과 저작권과 관련된 논란, 그리고 올바른 저작권 운영 방향을 고민해 보는 다큐멘터리로, 저작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오리지널리티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해 보고 싶었어요. 예술계에서 왜 오리지널리티만을 추구하고 그것만이 진정한 창조라고 말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어요. 제 작품은 오브제를 활용한 작업물인데,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는 네가 작가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새로운 것뿐만 아니라 재창조 역시 작품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작업해 오고 있는 사람이기에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되물어 보고 싶습니다. 과연 오리지널리티만이 진정한 예술의 길일까요?”
글 사진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