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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9호] 엉뚱한 괴짜의 길티 플레져
당신들도 한 번쯤 상상해 봤을 요상한 것들,
엉뚱한 괴짜의 길티 플레져
김찬우 작가
“30세가 넘어가면서 유난히 방귀가 늘었다. 2017년에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한 해가 갔다.
작업실에서는 누워만 있고, 술 마시자고 하면 술 먹고, 그렇게 지내다 작업실에 누워 방귀만 뀌는 나 자신을 보면서 ‘아, 그래도 방귀는 뀌네’ 생각이 들더라. 그때부터 방귀가 나올 때가 되면 핸드폰을 꺼내 녹음을 했다. 그렇게 모아 온 방귀를 다 모아서 틀어 보았다. 그 옆에는 내가 먹은 음식과 함께한 사람들의 목록이 있고 전시장에는 방귀들이 재생된다.
허무했던 내 2017년이었지만 남은 건 방귀 하나 남았다.”
_작가 노트
김찬우 작가
나는 가끔
옆돌기를 하고 싶다
엉뚱하면서도 괴짜 같은 사람.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만난 그의 첫인상이었다. 방귀를 모아 전시하기, 구멍에 머리를 처박기, 같은 위도 선상에 있는 전 세계인에게 편지 보내기, 숟가락을 던져 가리킨 방향으로 정처 없이 걷기 등 엉뚱한 작업물이 넘쳐 난다.
김찬우 작가는 자신의 허무했던 2017년을 방귀 하나로 표현했다. 어제까지 입에서 함께했던 추억이 오늘의 방귀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방귀 소리로 담았다. 그는 자신의 방귀 모음 파일을 자신의 첫 앨범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타이틀곡은 아마도 〈짜장면 solo〉일 것 같다.
홈페이지 속 그의 영상을 보며 한참을 웃어 댔다. 그의 유별난 작품은 이상하리만치 유쾌하다. 코미디 한 편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극적인 장면을 의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작업을 있는 그대로 찍어 놓았을 뿐이다. 마치 이 사람의 머릿속이 훤히 보이는 것 같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휘적휘적 잡스러운 것들을 적어 놓은 자투리 노트 같다.
김찬우 작가의 작품은 즐겁게 보다가도 ‘저건 조금 위험할 텐데’ 하며 순간 위축된다. 무모한 생각에서 비롯된 그의 도전인 작품은 생각만큼이나 무모하다. 그래서 더 위험해 보인다.
그의 작품 <쑥가라>에서 그는 숟가락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걷다가 눈앞에 있는 철장을 보고 잠시 고민하며 돌아선다. 하지만 금세 다시 돌아와 철장을 넘어간다. 맨홀 뚜껑이 사라진 구멍에 머리를 박고 물구나무를 서기도 한다. 엘리베이터에 머리를 끼워 넣기도 하고, 에스컬레이터 손잡이에 누워 그대로 타고 올라가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나는 가끔 길을 걷다 옆돌기를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곤 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아직 해 보지 못했다. 이는 일종의 욕망이다. 옆돌기를 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상상이기도 하다.
김찬우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길티 플레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순간의 쾌락을 위해 하는 행위를 말한다. 나쁜 줄 알면서도 하고 나면 속 시원하고 재밌는 일 말이다. 그 안에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질 나쁜 행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소소한 것들도 있다. 그런 면에서 김찬우 작가의 행위는 조금 건강한 길티 플레져(?)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들 사이에서 정해진 보이지 않는 규칙과 시선으로 인해 그저 상상으로만 만족했던 엉뚱한 일들. 그런 것들을 김찬우 작가는 당당하게 해낸다.
“가끔 소리를 지르고 싶은 순간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 규칙이 가로막아 그만두곤 했어요. 그리고 막상 소리를 지르고 나니 어딘지 모르게 찜찜함이 남았죠. 제가 하는 작업은 객기이자 헛짓거리처럼 보이겠지만 저는 만족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자극적이진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해요. 그래도 사람들이 상상만 했던 엉뚱하고 이상한 행동을 해서 대리 만족 시켜 준다는 생각에 만족감을 얻어요. 제 엉뚱한 행동이 세상의 평범한 ‘결’과는 다른 어떤 것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가끔은 머리를 처박고 싶을 때가 있다>, 2017
이유가 중요한가,
그냥 해 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는 안 돼?
김찬우 작가의 작품은 보는 내내 웃음이 터지고 즐겁다.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조금 허전하다. 아직 완결이 안 난 것 같달까. 그의 작품 세계를 알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사실 지금까지 진행한 작품들은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했어요(웃음). 평소 ‘오! 이거 재밌겠다’ 아니면 ‘이런 건 어떨까?’ 하는 순간 떠오는 생각을 곧바로 진행해요. 뒷일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그냥 일단 해 보고 싶으니까 하는 거죠. 지금도 제가 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 지금 작품들을 하나로 꿰고 싶은 마음인데, 그게 좀처럼 잘 안 되더라고요. 지금은 그냥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작품, 헛웃음을 터뜨릴 만한 것들을 하고 있어요. 호수에 잔돌을 던지듯이 그냥 툭툭 생각을 던져 보는 거죠.”
호수에 잔돌을 던진다라, 《월간 토마토》 이용원 편집장이 버릇처럼 이야기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는 늘 ‘세상을 향해 돌을 던지고 싶어’라고 이야기한다. 《월간 토마토》 권두언에도 몇 번 언급되었던 말이다. 물줄기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돌팔매질 한 번은 무의미해 보이겠지만, 그게 연속적으로 이루어지고,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이 함께한다면 말은 달라진다. 희미하게 보이던 작은 파동은 여러 사람이 계속해서 던진 돌로, 하나의 큰 파동을 만들어 낸다.
익히 잘 알고 있는 파동이기에, 김찬우 작가에게 돌팔매질이 가진 의미가 궁금했다.
“음, 아마 세상을 바꾸고자 대상을 정하고 그곳을 향해 던지는 행위보다는 무언가 고정되고 경직되어 있을 때 조금 다르게 보는 정도의 파동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경직된 채 보내잖아요. 그런 시간을 조금은 풀어 줄 수 있는, 느슨해지도록 만드는 웃음 정도 말이에요.”
그의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진지한 구석이 없다. 대단한 의미를 가지기보다는 그저 해 보고 싶다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처음에는 ‘너는 왜 그런 걸 해? 이유가 뭐야?’ 하는 질문들이 그에게 스트레스이기도 했지만, 이유야 뭐가 되었든 상관없다는 마음이다.
“왜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해 보고 싶은 것들이었어요. 사람들이 이유에 대해 물으니, 저도 이유를 찾아보려고 했어요. 뭐, 이유야 찾으면 있을 수도 있지만, 굳이 찾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냥 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더 중요해요.”
그는 무언가 형태를 만들고 진지한 의미를 가득 담은 작품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런 것들이 허무하다 느껴져 애초에 가벼운 것들을 만들었다. 그러다 대전 아티언스 참여 작가로 활동하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만드는 것에 재미를 붙인 그는 향후 계획을 변경했다. 원래는 전국을 떠돌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그림을 그려 주고 싶었단다. 그런데 지금은 방랑자의 꿈에서 벗어나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작업을 해 보고 싶다고 한다. 미술이 주는 감동을 차곡차곡 해 보는 것. 그의 새로운 계획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는 그가 처음 만난 영상 속 남자와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한껏 거리를 활보하던 그가 또 다른 사람이 되려나 보다.
작품 설치를 끝내고 오느라, 그의 주머니 속에는 작품 재료인 눈알이 한가득이다
글 이주연
사진 이주연, 김찬우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