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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0호]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공간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공간
대전광역시 청인지역 조성·운영사업
청년이 청년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청년에겐 함께 모여 자유롭게 대화하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대부분 돈을 내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죠. 그런 곳은 자유롭게 대화하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일 수 없어요. 노인이 갈 수 있는 경로당,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놀이터, 대학생에겐 대학이라는 주어진 공간이 있지만, 정작 청년에겐 그러한 공간이 없는 게 현실이에요. 청년들이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공간은 분명 필요한 거죠.”
대전광역시 청인지역 중 한 곳인 ‘청춘너나들이’를 위탁 운영하는 임팩트 메이커 윤정성 대표의 이야기다. 그는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고 직접 목소리 내어 ‘이 시대 청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청년만의 공간이 없다고 말한다.
청년 문제는 몇 해 전부터 정책 이슈로 떠오른 주제이자, 사회적 문제로도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곳곳에서 청년 문제 해결에 관한 논의와 해결 방안을 이야기하지만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는 않는다. 취업절벽, 흙수저, N포세대 등은 모두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을 대변하는 신조어다. 듣기만 해도 씁쓸해지는 이 낱말은 청년실업 문제에서 파생된 단어다. 청년실업 비율은 나날이 높아져 19년 이래 최악의 수준이다. 악순환은 청년 부채, 주거문제 등 다양한 문제로 이어졌고, 이러한 사회적 불안감이 청년을 모든 것을 포기한 ‘N포세대’로 이끌었다.
정부와 지자체는 청년문제에 관한 다양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며 제도적 지원을 마련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 등의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청년 스스로가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공간을 지원하기도 한다. 서울시의 경우에는 지난 2013년 서울 청년허브 센터 개관을 시작으로 청년공간에 대한 조례 개정과 청년 거점 공간 조성사업도 시행했다. 그 일례로 서울시 청년공간 ‘무중력지대’가 있다. 무중력지대는 청년 커뮤니티 활성화, 네트워크 구축, 역량강화 등을 목표로 운영하는 청년 커뮤니티 공간이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청년 공간에 관한 논의와 조성사업이 이루어졌다. 전국적으로 청년 공간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모두 비슷하다. 청년 문제를 청년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청년 문제가 오랜 시간 대두되어 왔지만, 정작 당사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는 것이 지자체의 생각이다.
청년이 직접 청년을 이야기하고, 지역에서 살아가는 청년이 모여 개인의 고민과 문제가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인식하며 함께 해결해 나가는 노력. 이러한 노력이 청년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역의 청년이 모일 수 있는 공간
대전광역시도 청년정책사업으로 시비 30억 원을 투입해 청년 거점 공간인 청인지역을 조성, 현재 세 곳을 운영 중이다. 지난 2017년 대전광역시는 청년정책을 최우선 시정과제로 선정해 5월에 청년정책담당관 조직을 신설하고 다양한 청년정책을 추진하며, ‘청인지역 조성’에 관한 논의를 펼쳤다. 청인지역 조성사업은 다른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지역청년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에서 시작했다.
대전광역시는 공간 조성에 앞서 서울특별시에 있는 청년 공간 탐방과 연구 용역을 통해 공간 조성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대전청년네트워크, 벌집, ㈜인터플레이 등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들도 함께 참여해 청인지역 위치 선정과 공간 콘셉트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공간 운영 역시 공모를 통해 직접 협업공간을 운영 중인 단체에게 위탁하는 방식을 택했다. ‘청년을 위한 공간인 만큼 청년들이 운영하는 것이 맞다’라는 판단에서였다. 그 결과 각각 ㈜콜라보에어, 임팩트메이커, ㈜인터플레이 등 청년 기업이 운영을 맡으며, 지난 4월 12일 청춘나들목(대전역)을 시작으로 청춘너나들이(탄방동 샤크존), 청춘두두두(갈마동 충청투데이)가 차례로 문을 열었다.
청춘나들목의 경우 ‘청년 트래블피아’라는 컨셉으로, 여행과 교통을 매개로 다양한 청년활동 네트워킹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대전역 지하철 역사에 위치한 청년나들목은 각각 지하 1층과 지하 3층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1층 공간은 주로 소모임과 전시,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지하 3층에 마련한 또 다른 청춘나들목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인원이 모여 강연이나 세미나 등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다. 대전역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으로, 대전을 벗어난 인근 지역에서도 청춘나들목을 찾으며 대관 행사가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곳이다.
서구 탄방동 샤크존 2층에 자리잡은 청춘너나들이는 라이브러리를 기본 콘셉트로, 청년정책 등의 정보와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다른 공간 두 곳에 비해 조금 더 아늑하고, 휴식이 가능하도록 공간 디자인이 이루어졌다. 이곳은 대전 시청과 접근이 용이해, 허태정 대전 시장을 비롯해 행정관들과 청년이 만나 청년 문제를 논의하고 정책을 토론하는 프로그램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청춘두두두에서는 다른 공간과 달리 넓게 트여 있는 공간을 만날 수 있다. 크게 1층과 지하 1층으로 나눠 1층에서는 소모임과 회의 진행이 가능한 카페테리아, 지하 1층은 공연과 페스티벌 등 대규모 행사 가 가능한 넓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하 1층은 학교 실내 체육관을 연상시키는 큰 규모로 막힘없이 탁 트여 있다. 최대 200명까지 수용이 가능해 공간 세 곳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이용 가능하며 활동성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도 좋다. 최근에는 마을활동가 포럼에서 이곳을 대관해 운동회를 열기도 했다. 이 공간 외에도 교육 공간으로 활용하는 배우zone이 있어,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현재 청인지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강연, 플리마켓, 원데이 클래스, 공연 등 장르를 불문한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 중이다. 청춘두두두의 경우 주민과 함께 하는 소셜다이닝 프로그램 ‘수요두식회’를, 청춘너나들이는 샤크존 상인들과의 소통을 위해 라디오를 진행하기도 한다. 오로지 청년을 위한 공간이 아닌 지역과 함께 어울리고자 계획한 일이다.
청춘너나들이 도서공간 '보장'
청년이 중심에 설 수 있는 자리
대전광역시가 청인지역 조성사업을 발표했을 때, 말도 많고 비판하는 이도 많았다. 청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공간이냐, 청년만을 위한 공간이 지역사회와 연계될 수 없다 등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청인 지역 조성사업은 진행되었고, 곱지 않은 시선은 반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청인지역은 단순히 우리가 아는 물리적 공간 개념이 아니다. 처음 대전광역시가 청인지역 조성사업을 진행했던 이유처럼 청인지역을 통해 지역 청년이 모이고 문제를 인식하고 움직임이 일어나는 커뮤니티 개념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이야 많은 사람이 청년 세대의 문제를 인식하고 동의하고 있지만, 정작 문제 해결에 있어 당사자성이 발휘되고 있진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당사자의 목소리가 모이기도 어렵고, 관이 협력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자리에도 정작 청년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았죠. 분명 존재하지만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문제는 계속해서 있어 왔던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어떤 주제로든 간에 드러나지 않던 청년들이 공간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이 청년문제의 주체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유의미하다고 봐요.”
혁신청 김영진 사무국장의 이야기다. 그는 지역에서 청년활동을 해 오며 실제로 드러나지 않은 청년문제를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그간 청년활동을 통해 봐 온 것들이 있었기에 청인지역이 의미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청년들 역시 자신들의 문제에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청인지역의 역할임은 틀림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광범위한 프로그램을 수차례 진행하는 것보단 청년과 직접 소통하고 마주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 청년이 직접 기획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청인지역에 바라는 것은 지역에서는 즐길 수 없었던 프로그램을 실행해 주는 것이 아니다. 지역에서는 유명 작가의 강연이나 즐길 거리가 없어 서울로 가는 것이 수고롭긴 하지만, 그게 공간이 필요한 주된 요인은 아닐 것이다. 공간을 통해 허울 없이 사람을 만나고, 고민하며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고 실현해 나가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청춘너나들이 라이브러리 '책장'(위), 청춘너나들이 개인공간 '펴장'(아래)
청년이 목소리 내고, 지역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
처음 부정적이었던 주변 반응과는 달리 조금씩 청년들은 공간을 인지하고 찾기 시작했다. 청인지역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적극적인 반응과 수요가 일어나고, 몇몇 이벤트성 프로그램은 취합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참가신청을 하기도 했다. 공간 운영자 역시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이었다. 운영자들은 갑작스런 관심은 아니지만,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을 실감한다.
“얼마 전에 대관문의가 들어왔는데, 자신을 코스프레 행사를 기획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하더라고요. 들어 보니 행사 기획을 접게 된 이유가 공간을 빌리거나 후원을 받으면 몇몇 어른들이 이를 이용해 성매매까지 연결시키려고 했던 일들이 생겨 그만 두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청춘두두두를 보고 마음 놓고 행사를 진행해도 좋겠다는 생각에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며 가슴이 뛴다고 이야기했어요. 그 말이 제가 이 공간에서 일하는 보람으로 다가왔죠.”
청춘두두두를 운영하는 강은구 운영팀장이 전한 경험이다. 누군가에게 꿈을 심어 주고, 무엇보다 청년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 거리낌 없이 찾아오는 공간이 되어 가고 있는 게 눈에 보여 즐겁다고 말한다.
현재 청인지역 운영자들과 담당 공무원은 선진지 탐방과 회의를 통해 공간 정체성과 계획에 관한 논의를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다. 청인지역 운영자들은 공간의 정체성 확립과 네트워킹 강화를 내년 목표로 두고 있다.
청인지역은 이제 꼬박 반년의 시간을 보냈다.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다. 김영진 사무국장은 “공간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비판 보다는 ‘이런 식으로 쓰였으면 좋겠다’라는 의견이 나왔으면 한다. 청인지역이 많은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고, 지역사회로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활동가 중심으로 펼쳐졌던 청년 활동에 더 많은 청년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청년 공간이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간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를 말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청인지역에서 벌어질 그 ‘어떤 일’이다.
글 사진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