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0호] 예술과 낭만이 거리에 스며들 수 있도록

예술과 낭만이

거리에 스며들 수 있도록

선화동 예술과 낭만의 거리 조성사업

붉은색 콘크리트와 오래된 회색 차도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대신에 깔끔한 인도블록과 새 콘크리트 도로가 눈에 띈다. 옛 충남도청 뒷길, 플라타너스 길이라고도 불렸던 이 거리는 지난 2014년부터 ‘선화동 예술과 낭만의 거리’라고 이름 붙였다. 인도는 이전보다 조금 넓어졌고, 도로에는 노상주차장이 들어섰다. 유동인구가 적은 평일 낮임에도 주차된 차가 빼곡하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선화동 예술과 낭만의 거리’는 중구 중앙로 79번길 일원이다. 지난 2014년 6월, 정부의 도시활력 증진지역 개발사업에 선정되면서 선화동 낭만과 예술거리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국토해양부가 지자체 스스로 발전을 유도하기 위해 도시활력 증진지역 해당 지자체에 예산을 포괄적으로 지원하여 시행하는 기초생활권 생활기반 구축사업이다. 지난 2016년 6월 최종 학술용역에 관한 보고서가 제출된 이후 지난해 말 준공예정이었으나 전선 지중화 사업으로 인해 올 하반기 기반시설 공사를 완료했다.
옛 도청 담장은 새롭게 정비했고 가로등과 경관 조명 시설을 설치해 밤이 되면 불을 밝힌다. 거리 중간중간에는 벤치를 설치했다. 거리는 이전보다 깔끔하고 편리하게 변했지만, 앞으로 이 거리에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직 가늠하긴 어렵다.   
예술과 낭만의 거리 조성사업은 유동인구가 줄어들고 상권이 쇠퇴한 옛 충남도청 주변을 기존 인프라와 연계한 문화예술 가로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한 사업이다. 원도심의 기능을 회복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것이 당초 사업의 목적이다. 몇 개의 상가와 주택 몇 채, 원룸촌이 있는 이 거리가 특화된 문화예술 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예술과 낭만의 거리 인근에 사는 한 선화동 주민은 “사실 이 거리가 예술문화 특화거리를 만들 거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상가도 몇 없지만, 새로운 상권이 들어오기도 어렵다. 오랜 공사 기간으로 불편도 겪었지만, 우범 지역이었던 이 거리가 공사로 인해 밝아진 점은 좋다”라고 이야기했다. 
중구청은 현재 문화 행사 등 거리 활성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예술과 낭만의 거리에 있는 시민대학과 연계한 활동 등 중구청 자체적으로 거리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선화동 예술과 낭만의 거리


새로운 활성화 방안은 없을까  

이제 기반시설 공사를 마친 예술과 낭만의 거리는 최근 ‘독립운동가의 거리’와 ‘독립운동가의 거리 홍보관’ 건립사업으로 주목받는 중이다. 독립운동가의 거리와 독립운동가의 거리 홍보관 건립 사업은 박용갑 중구청장의 공약사업이다. 홍보관은 선화동 367-19번지 외 2필지에 52㎡ 규모로 2020년까지 건설할 예정이며 자체예산 44억 원을 투입하는 사업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독립운동가 거리 홍보관은 예술과 낭만의 거리 활성화 방안 중 하나다”라고 말하며, “옛 충남도청 주변에는 역사적 자원이 많다. 도청사, 대전형무소, 영렬탑 등이 있다. 역사적 자원은 대전시에서 진행하는 다크투어리즘, 근대문화탐방과 연계가 가능하다. 주변을 연결할 충분한 자원이 있기 때문에 홍보관 건립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자원과 역사문화를 활용한 검토를 진행했다”라고 덧붙였다.
홍보관 건립 계획이 알려지면서 시끌시끌하다. 얼마 전, 이 거리에는 ‘이익과 관계없는 시민청문회를 열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이 걸렸다. 걸린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독립운동가 홍보관 건립사업을 두고 중구의회는 지난 9월 제215회 정례회본회의에서 ‘절차상 잘못과 중복성 예산낭비’라는 이유로 부결시켰다. 자치구가 5억 원 이상의 홍보관을 건립하려면 상급기관인 대전시 또는 중앙심사를 받아야하는데, 중구가 이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기에 홍보관이 들어설 부지가 몇 년 전에 중구청이 매각한 땅이다. 당시 약 3억 6천만 원에 매각한 땅을 다시 6억 7천만 원에 재매입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예산낭비라는 목소리도 있다.
홍보관 건립에 제동이 걸리자 대전국학원과 광복회 대전 중구지회, 전국상가연합회 대전시 지부 등은 조속한 사업 시행을 촉구하는 회견을 열기도 했다. 
중구청은 20억 원 이상 자체 재원으로 추진하는 신규 투자사업은 자체 심의만 거쳐도 무방하다는 조항을 들어 사업을 진행했다. 지난 10월 제216회 임시회에 계획안을 재상정했지만, 상임위 단계에서 부결됐다. 중구는 제217회 정례회에 다시 계획안을 제출했지만, 행정사무감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상급기관 지방재정투자심사를 거치기로 했다. 
  

같은 동네에 생긴 다른 길   

예술과 낭만의 거리가 여러 가지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예술과 낭만의 거리 바로 뒷길인 선화서로는 ‘선화단길’ 혹은 ‘선리단길’이라 불리며, 대전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중이다. 
이 거리는 불과 몇 년 전부터 창업이라는 새로운 길에 뛰어든 청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높아지는 임대료 등의 이유로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던 중 개발이 미진하고, 주변보다 시세가 저렴한 선화동은 청년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한 건물 너머 한 건물로 요즘 SNS에서 볼 수 있는 그야말로 ‘힙’한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섰다. 
평일 낮임에도 곳곳에는 사람이 많이 모여 시간을 보낸다. 각자 앉아 사진을 찍고, 수다를 떨기 바쁘다. 계절 탓인지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던 예술과 낭만의 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선화단길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은 “예술과 낭만의 거리와 선화단길은 사실 크게 연관이 없다. 가게를 열 때 이런 거리가 들어선다는 것이 도움은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는 정도지, 그 이유로 이곳에서 가게를 열진 않았다”라고 이야기했다.
독립운동가의 거리 홍보관 건립에 대해서는 “사실, 다들 잘 모르고 관심도 없을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독립운동가의 거리 홍보관이 들어서기로 예정된 자리


중구청은 독립운동가의 거리 홍보관을 통해 주민의 역사 의식을 높이고, 시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주변 자원을 연계해 거리 활성화를 위해 힘쓰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예술과 낭만의 거리 주변 상권을 주도하는 시민들의 이슈는 아닌 듯했다.   
예술과 낭만의 거리 활성화와 독립운동가의 거리 홍보관 건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주변 상권에서도 주목하지 않는 사업이 구도심 활성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섯 발자국만 걸어도 서로 다른 카페가 줄지어 보이는 현상이 긍정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이곳 역시 여느 다른 동네처럼 새로 문을 여는 가게도 있지만, 벌써 문을 닫은 가게도 있다. “이럴 거면 선화단길에 좋은 가로등이라도 하나 놔주는 게 낫지 않겠어?”라는 말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선화동 예술과 낭만의 거리’에 기획 단계에는 없었던 독립운동가 콘텐츠를 결합하고, 이 사업과는 무관하게 선화단길이 구축되는 현실은 지금 이 공간이 지닌 기대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 주는 듯하다.
공간에 인위적으로 색깔을 덧입히는 작업은 많은 자금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원하는 색깔을 입히는 것은 무척 힘들고 실패할 가능성이 큰일이라는 것은 많은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재까지 진행한 작업만 놓고 볼 때는 차량 속도를 낮추고 차보다는 보행자가 더 편한 공간을 만들려 한 노력이 엿보인다. 이 공간을 걷는 보행자가 일상적으로 어떤 풍광 어떤 이벤트와 마주하게 할지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고민해야 할 때다.


글 사진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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