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8호] 창문 없는 억압의 공간

창문 없는 억압의 공간

전주 선미촌집결지 도시재생 현장

2호점에 들어섰을 때 빛 한 점 들지 않는 검은 공간이 두려웠다. 불을 켰을 때 창문 없는 방이 굴속처럼 이어진 모양을 보고 숨이 막혔다. 그곳에서 누군가는 갇힌 줄도 모르고 갇혀, 24시간을 보냈다. 이 공간의 유일한 출구에는 감시자의 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2호점은 전시공간으로 바뀌었지만, 지금도 이와 유사한 공간에서 누군가는 일하며, 그 한 공간에서 입고 먹고 마시고 자며, 살아가고 있을 터였다. 빛 한 점 없이.


그녀들의 외딴방을 만나러 가는 길

지난 9월 14일(금) 대전 여성인권티움은 전주 선미촌집결지 도시재생 현장 방문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대전의 성매매, 인권문제, 도시재생에 관심 있는 공무원, 시민단체, 개인 등 40여 명이 이 여정에 함께했다. 
현장 방문은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송경숙 센터장이 선미촌에 대한 브리핑을 하면서 시작했다. 송경숙 센터장은 지금의 선미촌 도시재생 현장 변화 과정을 설명했다.  
“이곳은 한옥마을과 5분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2022년까지 문화예술공간을 점진적으로 넓혀 가며 폐공간을 매입하고 문화공간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선미촌은 공권력과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고 문화예술을 통해 도시재생을 추진하고 있다. 전주시는 3년 전부터 시티가든 조성, 업사이클센터 등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사업을 펼쳤다. 선미촌 내 성매매업소 다섯 개소를 매입, 예술인이 거주하거나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 전주 선미촌집결지는 옛 전주역 뒤편에 위치했다. 1970년대 70여 세대가 성매매 업소였으며 1980년대 80세대로 늘어났다. 1980년대 중반 호객 행위가 금지되며 현재의 유리방으로 변화했다. 2004년 성매매방지법 집행 이후 60여 개 업소 100~150명의 여성이 상주하는 것으로 파악되었으나, 최근 선미촌 정비를 위한 민관협의회 활동을 통해 30~35개 업소 40여 명으로 축소되었다. 2013년 25명의 관계자가 참여하는 선미촌 정비 민관거버넌스를 발족해 여성인권이 착취되는 공간에서 여성인권이 실현되는 공간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전주시가 매입한 선미촌 업소 다섯 곳을 시티가든과 기억공간으로 조성했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의 〈다시, 그리는 선미촌〉 안내 자료에서 발췌)
민관협의회를 결성하고, 시에서 건물을 매입하고 다채로운 활동을 벌이며 이 지역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는 선미촌을 변화시키기 위해 현장상담소를 개소하고 지역주민과 소통을 시도했다. 또한 선미촌 이야기를 수집하고, 선미촌의 기록과 기억을 위한 아카이브 작업을 진행했다. 
“선미촌은 기획된 공간입니다. 고통, 반성, 기억. 모두가 당사자성이 있습니다. 모두 성매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선미촌 여성자활지원조례 제정’으로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한 달에 100만 원씩 긴급생계비를 12개월 지원한다. 이를 통해 처음으로 내 방을 가지고, 자신의 건강을 돌보고, 원가족도 돌본다. 탈성매매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지원이다. 


3호집 안의 방. 장근범 작가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1호부터 5호까지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주최, 전라북도 성평등기금 후원으로 9월 13일(목)부터 9월 21일(금)까지 선미촌 기억공간 외 네 곳에서 〈선미촌 리본 프로젝트Ⅱ〉 전시가 열렸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여덟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는 전주시가 매입한 1호~5호집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를 나와 선미촌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선미촌은 그저 한적한 거리처럼 보였지만 조금 걸어가니 유리방이 보였다. 유리 너머로 의자와 굽 높은 샌들, 간단한 집기들이 보였다. 여전히 영업 중인 유리방이었다. 이야기로만 듣던 공간들을 바라보며 걷는 기분이 묘했다. 
작년 6월 시에서 매입한 3호집은 선미촌 초입에 있다. 400평 규모의 큰 건물은 시비 40억원을 들여 구입했다. 3호집 1층에는 현장시청이 자리했다. 전주시는 현장시청을 중심으로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선미촌 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현장시청에서 시청 담당자의 브리핑을 들은 후 전시관람을 시작했다. 
3호집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 안쪽으로 들어섰다. 시에서 매입하기 전까지 성매매업소였던 곳이다. 좁은 복도를 따라 문들이 길게 마주한다. 그중 하나를 밀고 들어서자 작은 화장실과 방이 나온다. 장롱과 옷걸이, 작은 수납장이 놓여 있고 검은 시트를 붙인 창문은 삭막하다. 모든 방이 비슷한 구조다. 방 안에는 장근범 작가의 사진 작품과 하태운 작가의 조형물이 전시되고 있다. 작가들에게 미안하게도, 이전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공간이 워낙 압도적이라 작품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공주 모양 스티커가 붙어 있는 화장실 거울, 그리고 변기. 화장실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는 이상한 구조의 공간들. 
누군가 살고 있는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와 있는 듯 불편했다. 한 여자가 쓸쓸하고 외롭게, 그 텅 빈 방에 다리를 모아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게 아닐까 싶은. 
3호집에서 나와 그다음에 들른 곳은 기억공간이다. 기억공간은 오래된 성매매업소 건물이 허물어져 세 면의 벽체만 남은 것을 보존해 둔 장소였다. 벽이 다 드러난 좁은 공간에 옷걸이가 남아 있다. 나무 살로 된 여닫이 문짝이 이 공간의 오랜 역사를 보여 준다. 벽 너머로 오동나무 한 그루가 섰다. 아주 쓸쓸해진다. 그곳에 살고 일했을 수많은 여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선뜩하다. 여성이, 자기만의 방을 가지기란 이토록 요원한 일인가 한숨이 거꾸로 뱃속으로 가라앉는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이 공간이 아니라, 저 공간에 살았을 누군가들이다. 억압과 착취의 흔적이 이리도 떳떳하게 남았다. 
다음 방문한 곳은 2호집이다. 유리방에 붉은 의자가 놓였다. 유리방에서 복도를 거쳐 안으로 들어간다. 너무도 캄캄하다. 전시 중인 방의 불을 켜자 주변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에 다시 한번 더 놀란다. 거실을 중심으로 사방이 방이다. 창은 없다. 개미지옥이 파 놓은 굴 같다.

“생각해 보니까 선미촌뿐만 아니라 쌈리도 평택도 창문이 없었어. 문 닫고 방 안에서 담배를 피고 했는데 몰랐어. 환풍기도 없었어. 거기서 먹고 자고 다 했는데… 근데 몰랐어, 못 느꼈어…” * 《선미촌 리본-아카이브북》,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도서출판 학예사, 2017, 105쪽.

이미 모든 것이 사라졌으나, 누군가 채 빠져나가지 못한 채 봉인되어 있을 것만 같은 그 2호집의 방. 최은우 작가는 온통 하얀색으로 방 안을 칠했다. 장롱, 선반, 의자, 티브이. 하얀 침대 한쪽 벽에 그림이 걸려 있다. 출구가 없는 공간에 유일한 출구 같은 그 그림은 구멍 뚫린 숲으로도, 빛이 새어드는 빈 공간으로도 보인다. 그 작품의 이름은 〈곳〉이다. 이 방 같지 않은 방을 지나, 그들은 어느 ‘곳’에 이르기를 바랐을까. 순백으로 덮여진 이곳. 그들을 구겨서 이 구석으로 몰아넣은 그 억압이란 도대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인가. 

“그동안의 켜켜이 쌓인 ‘억압’의 기억과 흔적을 떠나보내고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공간의 기억과 억압의 상흔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최은우 작가의 〈작업 노트〉) 


기억공간


선택, 자유, 억압

2016년 티움이 조사한 대전의 성매매업소는 유천동 21개 업소, 중앙동 81개 업소 등이다. 특히 주점이 많은 유성 일대의 성매매업소는 그 수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성매매 업주들은 파이낸스사와 사채업자를 통해 선불금을 준다. 그리고 보증인을 세운다. 탈성매매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 이은하, 〈성매매특별법 있는데도 성매매 없어지지 않는 건〉, 《오마이뉴스》, 2017. 03. 02.
 각종 폭력과 착취의 고리에서 도저히 돈을 벌 수 없는 구조가 바로 성매매업이다. 이 덫에 걸려 이르는 곳이 성매매집결지이다. 세상과 단절되고 몸은 피폐해진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구석으로 내몰린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자활지원을, 사람들은 불법 행위자에게 혈세를 지원한다고 비난한다.
선미촌을 둘러본 후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일단 분위기 자체가 너무 우울했어요. 남성으로서 많은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방 옆에 하이힐 방치된 모습이… 너무 성매매 피해자들의 현실을 보여 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유리방 의자에 앉아 한참 창밖을 바라보는데… 이곳에 앉아 있었을 그 사람들에게, 이것이 정말로 원하는 일이었을까요?”
한 개인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일이라 하기에는 그 결과가 너무 가혹하다. 이 공간은 ‘억압’을, 그 억압 아래 놓인 한 개인의 일대기를 품고 있다.


글 사진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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