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7호] 발 딛는 순간, 우리는 다수의 전태일이다

발 딛는 순간, 우리는 다수의 전태일이다

연극 <전태일 1948>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조금만 더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_전태일 열사 일기장 중에서

 


 

1.
연극에는 이렇다 할 시작이 없었다. 그게 이 연극의 매력이다.
특이하게도 이 연극은 두 장소, 원도심레츠와 구석으로부터에서 진행됐다. 연극을 보기 위해 찾은 원도심레츠 입구 계단 사이사이에 붙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맨 처음 연극 제목인 ‘전태일 1948’이 눈에 들어왔고, 이어 ‘들어오는 순간 당신은 관객이자 최고의 배우입니다’라는 글이 보였다. 그 문장은 원도심레츠를 찾은 우리를 한순간에 관객에서 배우로 탈바꿈시켰다. 관객이 연극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발 들이는 순간, 그 관객은 배우가 된다. 그러니 우리의 입장 자체가 연극 오프닝인 셈이다. 그렇게 오늘의 주인공 한 명 한 명이 무대에 올랐다.
우선 관객이자 배우인 사람들은 원도심레츠에 들어서서 준비된 음식을 먹는다.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탄생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음식으로, 전태일이 살아 있었다면 그가 받았을 고희연 생일상이다.
연극 <전태일 1948>은 올 스탠딩(All standing)으로, 공간을 이동하며 관람이 이루어진다. 또한 연출가 ‘아우구스토 보알’의 토론 연극 형식을 지역에서 처음 시도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보알 연극의 가장 큰 특징은 관객과 배우가 따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단을 오르며 마주했던 문장처럼, 우리는 모두 배우가 되어 연극에 참여하며 제시된 문제에 관해 직접 토론한다. 연극을 보러 온 지금 이 순간만큼, 우리는 다수의 전태일이다.
조금 있으면 본 공연을 시작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진행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 역시 대화를 나누느라 온갖 이야기가 한데 섞여 정신없다. 몇 분 지났을까, 한 진행자가 “단비야!”라고 외치며 택배가 왔다고 전한다.
“왜 이제 오셨어요. 이거 급한 건데. 여기 놔 주세요. 아니, 안 보이는 곳에 두세요, 여기요. 아 아니다, 그냥 아예 안 보이게 저 안으로요.”
택배 기사는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며, 그녀의 퉁명스런 말에 따라 무거운 박스를 이리저리 옮겼다.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는 금세 가라앉았다. 그녀는 보이지도 않는 구석으로 박아 놓을 박스를 굳이 택배 기사에게 급하다며 조급한 목소리로 짜증을 냈을까. 몇 마디 없었지만, 택배 기사에게 던진 말은 그래서 더 차갑고 날카로웠다.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에 상황은 끝났고, 진행자들은 다음 마당으로 넘어갈 순서라고 안내했다.
“공연이 시작될 예정이니, 관객 분들은 구석으로부터로 이동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굳이 따지자면, 본 공연은 구석으로부터에서 시작한다. 공연장으로 자리를 옮겨 달라는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원도심레츠 뒷문을 거쳐 옥상을 지나 구석으로부터로 들어섰다. 컴컴한 공간에 기타 연주 소리가 퍼지고 군데군데 짙은 주황색 불빛이 내려 앉아 있다.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이들은 모두 평화시장 봉제노동자다. 그들은 다락에서 유유자적하며 감시 중인 사장의 눈총을 받으며 아무 말 없이 일하고 있다.
“미싱 및 재단 보조와 시다들 12살에서 21살 여자 아홉 명. 미싱사 18살에서 25살 여자 세 명. 다락 높이 1.6m. 형광등, 창문 및 환풍 시설 없음. 건강 상태 폐병, 만성 위장병, 스트레스성 소화불량, 안질, 신경통, 류마티즘 환자 다수. 건강검진 받아 본 경험 대다수 없음. 받아 봄, 필름 없는 엑스레이 촬영.”
극 중 한 여공이 기술한 이곳 봉제공장 환경이다. 전태일을 포함한 공장 직원들은 책임져야 할 식솔이 많은 가장들이기에 사장의 횡포에도 군말 없이 일한다. 몸이 아픈 줄 알지만, 진통제 몇 알을 삼키며 밤새 일해 무리한 물량을 맞춘다.
암전이 되고, 곧이어 관객 등 뒤로 불이 켜진다.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관객은 뒤돌아 앉았고, 관객의 시선 끝에는 배우들이 서 있다. 이번엔 봉제노동자가 아닌 2018년, 현재 불합리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으로 서 있다. 이들 중에는 좀 전에 보았던 택배 기사도 있다. 이들은 번갈아 가며 각자의 고충을 토로한다.
계속해서 전태일이 살아 있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연극이 이어진다. 라이브로 연주되는 기타 선율, 느슨하다가도 격하게 치닫는 움직임을 극 속에 적절히 녹여낸다. 관객의 시선은 공간을 뛰어다니는 배우들의 움직임을 뒤쫓는다.
관객은 연극 도중 안내를 받아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군데군데에는 전태일 열사 일기장 속 구절들이 적혀 있고,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지하에는 글이 빼곡히 적힌 종이가 매달려 있고, 바닥에는 종이 뭉치가 한가득이다. 한 여공은 무엇인지 모를 쇠붙이를 열심히 갈고 있다. 스륵스륵, 느리고 정확한 템포로 들리던 소리는 전태일과 또 다른 여공의 격정적 몸부림과 함께 빨라진다. 귀를 찌르는 쇠붙이 소리가, 현실의 벽에 부딪힌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찢긴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들의 투쟁은 이어졌고, 전태일 열사가 가졌던, 그 뜨거움이 공간을 가득 데웠다. “어머니 꼭 이루어 주소서.” 그가 어머니를 향해 토해 낸 울부짖음은 간절함과 굳은 결단 같다. 하늘에 닿으려는 듯 천장 가까이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은 마치 하나의 불꽃이었다.

 

3.
뜨거운 감정이 끊임없이 올라오던 클라이막스가 지나고, 다시 현대로 돌아왔다. 과거 전태일은 사라지고, 현대의 전태일들이 남아 무대를 채워 연극을 마무리한다. 연극의 끝은 해피엔딩이다. 모두가 전보다 좋은 환경에서 일하게 됐다. 관객은 박수를 치며 함께 축하해 줬다.
극 중 현대의 전태일들은 개선된 근무환경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일하겠지만, 현실 속 전태일들은 모두가 그렇지는 못하다. 누군가는 여전히 부당한 근무환경에서 일하고 있고, 지켜야 할 것이 있어 그저 묵묵히 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1970년, 자신을 불사르며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던 평화시장의 재단사,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불씨가 되어 우리 가슴에 남았다. 시대를 거치며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쥐고 있던 많은 노동자는 또 다른 전태일이 되어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우리는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다수의 전태일로 남았다. 어쩌면 조금 다른 의미에서 우리는 전태일이라는 이름 하나로 그때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극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좀 전에 보았던 택배 기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뒷모습이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고객의 이유 없는 질타를 받으면서도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몇 번이고 짐을 옮기던 그였다. 그 택배 기사는 분명 배우였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바삐 움직이며 택배를 전달하고 있을 이들이 생각나 뒤숭숭한 저녁이었다.

 

 

 


글 사진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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